[특별기고] 기술의 속도보다 중요한 인문의 성찰
'인권 침해 등 윤리적 사고·책임 따라'
'빨리'보다 '멀리'가는 삶 대전환 필요'

한 파일럿이 말했다. 하늘에서 무지개를 보면 반원이 아니라 완전한 원형이라고. 실제 나도 그런 무지개를 본 적이 있다. 유럽으로 향하던 비행기 안에서였다. 현상은 우리가 어디에서 바라보느냐에 따라 그 모습을 달리한다.
현대 사회의 군중은 외롭다. 컨베이어 벨트가 발명된 이래, 우리는 '고독한 군중'이 되었다. 노동으로부터의 소외, 그리고 노동의 결과로부터의 소외. 군중은 마음속 심장의 나침반을 잃어버린 채, 귀에 달린 레이더만으로 타자의 평가에 적응하기 바쁘다. 이제 디지털과 인공지능(AI)의 격랑 속에서 사회적 문제는 더욱 복잡해졌다. 가짜 뉴스, 정보 격차, 인간 소외, 디지털 중독 등 이른바 '블랙 스마트' 현상으로 인간의 실존이 위협받고 있다.
특히 생성형 AI는 인문사회계 학생들의 일자리를 역습했다. 단순 사무직뿐만 아니라 은행원, 회계사, 변호사, 심지어 대학교육과 공공기관의 정책 영역까지 놀라운 속도로 침투하고 있다. 정부는 이에 발맞춰 2026년 AI 분야 예산만 10조 원 이상을 편성할 계획이다.
물론 기술적으로 세계와 치열하게 경쟁해야 한다. 하지만 그 기술이 만들어가는 사회 현상에도 반드시 주목해야 한다. AI의 위험성은 멀리 있지 않다. 알고리즘의 의사결정 영역에는 우리가 여전히 이해하지 못하는 블랙박스가 존재하며, 그로 인한 '책임의 공백'이 우려된다. 특히 AI의 학습 패턴은 데이터의 편향성을 확대·재생산하고 강화하는 속성이 있다. 허위·조작 정보에 대한 감시 비용도 날로 증가하고 있다.
국가와 대기업에 의한 정보 권력의 집중화는 공포스러울 정도다. 구글에서 보험을 한 번 검색했을 뿐인데, 페이스북이나 틱톡 등 모든 소셜 네트워크에 보험 광고가 따라붙는다. 알고리즘은 이미 내가 무엇을 희망하고 무엇을 찾는지 꿰뚫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부작용 때문에 AI와 휴머노이드 같은 첨단 기술 연구를 멈추자는 것이 아니다. 다만 우리 사회의 뒷모습을 보자는 것이다. 한국은 OECD 국가 중 자살률이 가장 높으며, 10대부터 40대에 이르기까지 사망 원인 1위가 자살이다. 삶의 만족도와 행복감 역시 최하위권을 기록하고 있다.
우리가 만들어가는 사회가 어떤 모습이기에 이런 결과가 나오는가? 정부는 'AI 세계 3대 강국' 진입을 위해 천문학적인 예산을 쏟아붓고 있지만, 정작 중요한 것을 놓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이제는 생산성과 경쟁력 강화라는 패러다임에서 벗어나야 한다. 경쟁에서 협력으로, 승자독식에서 약자 보호로, '빨리 가는 삶'에서 '멀리 가는 삶'으로의 대전환이 필요하다. 그러나 현재 인문사회계의 융합 인재 육성이나 연구개발(R&D)에 지원되는 예산은 국가 전체 R&D 예산의 고작 1.2% 남짓에 불과하다.
AI 시대는 이미 도래했다. 공공과 민간의 모든 조직에서 AI는 보조 도구를 넘어 의사결정의 인프라로 기능하기 시작했다. 생성형 지능과 결합된 휴머노이드는 생산 현장에 광범위하게 투입될 것이다. 고도의 지적 활동까지 AI가 수행하게 되면서 윤리적 사고와 책임의 문제는 더욱 증폭되고 있다. 초지능 AI가 인간의 통제를 벗어나 독자적인 목표를 추구할 때 발생하는 위협, 즉 인권 침해와 환경 파괴, 나아가 살상용 로봇의 등장과 사이버 공격은 인류의 생존을 위협하는 디스토피아적 시나리오다. 이러한 암울한 전망을 극복하는 것은 기술의 결함을 고치는 일이 아니라, 기술을 어떻게 관리하고 규제할 것인가라는 '사회적 선택'에 달려 있다.
아메리카 원주민들은 말을 타고 달리다 가끔 뒤를 돌아본다고 한다. 자신의 영혼이 너무 빠른 속도를 따라오지 못할까 봐 기다려 주는 것이다. 비행사이자 작가인 리처드 바크는 말했다. "길 잃은 자에게 별들은 방향을 알려주지만, 그 길을 찾는 건 오직 자신의 발걸음에 달려 있다."
지금 한국 사회 앞에 놓인 진짜 과제는 기술보다 철학이며, 도구보다 목적이다. 미국, 영국, 독일, 일본 등 선진국들이 국가 연구개발비의 약 10%를 인문사회 분야에 투자하는 이유는 그것이 기술의 폭주를 막고 사회적 방향을 제시하는 '성찰의 힘'임을 알기 때문이다. 우리에게도 지금, 영혼을 기다리는 멈춤과 성찰의 시간이 필요하다. 여영현 선문대 행정·공기업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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