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북 유화책·전작권·동맹 어젠다 충돌… 대전략 수립 시급 [심층기획-신국제질서, 한반도의 선택]

박수찬 2026. 2. 25. 06:03
음성재생 설정 이동 통신망에서 음성 재생 시 데이터 요금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글자 수 10,000자 초과 시 일부만 음성으로 제공합니다.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이재명정부의 안보 딜레마
9·19 복원 등 北과 관계 개선 추진
연합훈련 축소·비행금지구역 재설정
군사대비태세·전작권 전환 등에 영향
서해 美·中 전투기 대치 ‘동맹 시험대’
주한미군 역할 ‘中 견제’ 추가 가능성
韓, 전략적 유연성 등 동맹 현안 난제
핵잠 건조·원자력 협정 개정도 변수
美 정치적 상황 따라 협의 지연 우려
실무 협의 착수돼도 불신 해소 과제

‘딜레마(dilemma).’

12·3 비상계엄 사태의 후폭풍에서 조금씩 벗어나고 있는 이재명정부의 안보 전략에서 두드러지고 있는 요소다. 지난해 6월 출범한 이재명정부는 한국군 전시작전통제권 조기 전환, 동맹 현대화와 더불어 9·19 남북군사합의의 단계적·선제적 복원 등을 통한 남북관계 개선을 추진 중이다. 정부가 제시하는 어젠다들은 정책적 당위성이 충분하다. 하지만 각각의 어젠다를 한데 묶으면 전략적 딜레마를 겪을 위험이 커지는 상황이다. 동맹 현안과 대북 정책 분야에서 한국의 입지가 좁아지지 않도록 범정부 차원의 대전략 수립과 정책 조정이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해군 잠수함사령부 승조원들이 경남 진해시 해군 잠수함사령부에 정박된 잠수함 도산안창호함에서 연말 대비태세를 위해 출항 준비를 하고 있다.  진해=뉴시스
◆전작권·군사합의… 어젠다 충돌 우려

이재명정부는 한반도 긴장을 완화하고 북한과의 관계 개선을 도모하겠다는 입장이다. 지난해부터 대북 확성기 방송 중단 등을 통한 관계 개선을 시도했으나 북한이 냉담한 반응을 보이자, 9·19 군사합의 관련 조치를 비롯한 군사적 카드로 돌파구를 찾으려는 모양새다.

정동영 통일부 장관은 지난 18일 “군 당국과 협력해 우발적 충돌 방지와 군사적 신뢰 구축을 위해 비행금지구역 설정 등 9·19 군사합의 복원을 선제적으로 검토·추진하겠다”고 밝혔다. 다음달 실시될 한·미 연합 자유의 방패(FS) 연습과 관련, FS 기간 병력과 장비가 대규모로 이동하는 야외기동훈련의 조정도 거론됐다. 북한은 FS 연습을 ‘북침 연습’이라고 주장하며 강력히 반발해왔다. 북한이 예민해하는 사안에 대해 정부가 선제적으로 대응, 북한의 태도 변화를 이끌어내려는 것이라는 해석이다.

문제는 대북 유화책이 전작권 전환 가속화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이다. 국방부는 전작권 전환과 관련, 올해 11월에 열리는 제58차 한·미안보협의회의(SCM)에서 미래연합군사령부 완전운용능력(FOC) 검증을 완료한다는 방침이다. 이를 위해 3∼8월 한·미 연합훈련을 통한 공동 평가 등을 추진할 예정이다.

한국군이 전작권을 행사할 능력을 조기에 갖추려면, FS 기간 지휘소(CPX) 훈련에 적용되는 시나리오와 작전계획·지침 등이 각 제대 및 병과에서 제대로 작동하는지 야전에서 확인할 필요가 있다. 이는 현 정부 임기 내 한국군의 전작권 전환 작업 내실화 및 능력 향상과도 연결되어 있다. 국방부는 연합훈련에 대해 ‘연중 분산 실시’ 입장을 밝히고 있지만, FS 연습의 핵심인 지휘소 훈련 시나리오·작계 등과 연계해서 FS 연습 기간 고강도 야외기동훈련을 진행하는 것도 중요한 이유다. 지난해 3월 FS 연습 개시 당시 합참은 “연습 시나리오와 연계해 지·해·공, 사이버, 우주 등 전 영역에 걸쳐 연합 야외기동훈련을 확대 시행하며, 동맹의 상호운용성을 향상시키고 강화된 연합억제능력을 현시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비행금지구역 재설정을 포함한 9·19 군사합의 복원도 마찬가지다. 남북은 군사합의에서 휴전선 동부지역은 40㎞, 서부지역은 20㎞ 구간을 고정익항공기 비행금지구역으로 설정했다. 휴전선에서 10㎞ 구간을 회전익항공기 비행금지구역으로 하고, 동부지역 15㎞·서부지역 10㎞ 구간을 무인기 비행금지구역으로 설정했다.
육군 K-2 전차가 경기 여주시 남한강 일대에서 열린 한·미 연합 제병협동 도하훈련도중 부교로 강을 건너고 있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전작권 조기 전환을 실현하려면 한국군 감시·정찰 능력과 대화력전 태세 강화가 필수다. 북한이 휴전선 일대에서 수도권을 겨냥해 배치한 장사정포와 대구경 방사포를 면밀하게 추적·감시해서 유사시 제압하는 대화력전 전작권 전환의 핵심적 요소다. 이를 위해선 고도의 감시·정찰 작전 태세를 갖추고, 검증해야 한다. 기술적 특성이 서로 다른 정찰자산들은 운용범위와 시간 등에 차이가 있다. 정찰위성, 고고도 무인정찰기 등과 더불어 전방 부대 군단·사단급 무인정찰기가 지속적으로 담당 구역을 선회 비행하며 북한군 동향을 면밀히 추적·감시해야 정보 공백을 최소화할 수 있다. 각종 첨단 정찰장비를 지닌 미군도 니콜라스 마두로 베네수엘라 대통령 체포 작전 당시엔 RQ-170 무인정찰기를 적극 투입, 마두로의 일거수일투족을 추적한 바 있다.

비행금지구역 재설정을 포함한 9·19 군사합의 선제적 복원이 이뤄지면, 전방 부대의 무인정찰기 운용에 상당한 제약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 이는 휴전선 일대 군사대비태세와 정보수집에 영향을 미친다. 정부 소식통은 “9·19 합의 선제적 복원과 연합훈련 조정을 단행하면 전작권 전환과 군사대비태세 등에 영향을 줄 수 있고, 현상 유지를 선택하면 북한을 움직일 카드가 없는 셈”이라고 진단했다.

◆위협을 보는 동맹 시각차 우려

최근 발생한 주한미군 전투기와 중국 전투기의 대치 국면은 한·미 동맹의 시각차를 확대할 우려가 있다는 평가다.

지난 18일 주한미군 F-16 전투기 10여 대는 오산 기지를 출발해 서해상 공해 상공까지 비행했다가 중국 전투기와 한동안 대치했다. 주한미군은 훈련에 앞서 우리 군에 훈련 사실을 통보했으나 구체적인 비행 목적 등은 설명하지 않았다고 한다. 안규백 국방부 장관과 진영승 합참의장이 제이비어 브런슨 주한미군사령관에게 항의성 전화를 한 것으로 전해졌다.

주한미공군 오산 기지에서 미군 소속 F-16 전투기가 비행을 앞두고 지상에서 이동하고 있다. 미 공군 제공
문재인정부 시절에도 주한미군 정찰기가 우리 군에 사전 통보를 하지 않고 비행한 사례들이 있었다. 하지만 이번처럼 서해에서 미·중 공군기가 대치하고, 군 수뇌부가 주한미군사령관에 항의한 것은 매우 이례적이다. 군 소식통은 “미국 쪽에선 이번 사건과 관련, ‘단순 해프닝이 아닌 (동맹의) 향후 50년을 판단할 시험지’라는 말이 나온다”며 “과거에는 나온 적 없는 표현”이라고 전했다.

이는 대중국 견제에 초점을 맞추는 미국의 전략과 맞물려 주목된다. 미국은 지난달 공개한 새 국방전략(NDS)에서 중국 견제와 관련, “제1도련선(오키나와∼대만∼필리핀∼믈라카해협)을 따라 강력한 거부형 방어를 구축하고, 배치하며, 유지할 것”이라고 밝혔다.

주한미군이 주둔하는 한반도는 제1도련선 안에 있고, 북한·중국·대만과 가깝다. 새 NDS에 따르면 한반도는 북한 도발 억제를 넘어서서 중국을 견제할 공간이 될 수 있다. 브런슨 사령관이 지난해 12월 한 포럼에서 “동맹 현대화가 구호에 그쳐서는 안 된다. 한국은 단순히 한반도의 위협에 대응하는 존재가 아니다”라고 밝힌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는 평가다.

미국의 동북아 전략 초점이 북한에서 중국으로 이동하는 징후가 뚜렷해진 상황에서 주한미군 전력은 지금보다 더 큰 유연성을 갖게 될 수 있다. 북한 위협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한국으로선 미·중 갈등 구도 속에서 주한미군 전략적 유연성 등 동맹 현안을 둘러싸고 딜레마가 커질 가능성이 있다.

◆핵추진잠수함 건조 차질 없을까

한국의 핵잠 건조와 원자력 협정 개정도 변수가 될 가능성이 있다. 군 내부에선 오래전부터 일부 인원을 중심으로 핵잠 건조 관련 탐색·준비 작업이 은밀히 진행되어 왔다. 지난해 10월 한·미정상회담에서 이재명 대통령이 공개적으로 언급하고,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승인’의 뜻을 밝히면서 핵잠 사업이 수면 위로 올라왔다.

정부는 대미 실무협의와 정부 내 준비를 서둘러왔다. 11월 미국의 상·하원 선거(중간선거)에서 공화당이 패하면 트럼프 행정부의 정책 추진 동력이 떨어질 우려에서다. 따라서 11월 전에 핵잠 건조와 원자력협정 등의 협의를 속전속결로 진행, 불가역적 상황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정부 관계자들은 판단하고 있다. 이에 따라 국방부는 핵잠 건조에 대한 특별법 제정 및 대미 협상 준비를 진행하고 있다. 올해 안에 핵잠과 관련한 원칙과 건조계획, 비확산에 대한 입장 등을 포함한 ‘한국형 핵잠 기본계획’을 제시할 예정이다.

다만 미 연방대법원이 트럼프 대통령이 국제비상경제권한법(IEEPA)을 근거로 각국에 부과한 상호관세가 위법하다고 판결하면서 협의 일정이 늦어질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한·미는 이르면 이달 말 핵잠 도입과 원자력 및 조선 협력 등의 이행을 위한 실무 협의를 개시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관세 문제로 인해 트럼프 행정부에서 핵잠 등의 협의가 정책 우선순위에서 밀릴 가능성이 제기된다. 협의 착수가 계속 지연될 경우 정부의 구상에도 차질이 불가피하다.

한·미 간 실무 협의가 착수되어도 풀어야 할 과제는 적지 않다. 비핵 국가가 군사용으로 핵물질을 사용하는 것은 국제적인 논란을 초래할 수 있다. 정부가 핵잠 건조 등과 관련해 비확산 의지를 밝혔지만, 미국 등 국제사회의 불신을 완전히 해소할 수 있느냐는 우려는 여전히 남아있다. 전직 정부 당국자는 “과거에 한국에서 있었던 원자력 관련 이슈들 때문에 미국은 예전부터 핵 분야에 대해선 한국을 쉽게 믿지 않아왔다”고 전했다. 이와 관련해 정부가 국제원자력기구(IAEA) 등을 통해 핵잠과 민수용 원자로에 쓰일 핵연료가 핵무기로 전환되지 않는다는 것을 정치·외교·과학기술적 방법을 통해 국제사회에 확약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박수찬 기자 psc@segye.com

Copyright © 세계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