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金 팔러 오픈런" 엔비디아 8배 된 '골드' 랠리 끝은?
미국채 팔고 금 사는 중앙은행들

“금 팔러 포항에서 왔어요.”
체감온도가 영하 16도까지 떨어진 지난 1월 28일 아침 9시 종로 3가에 진풍경이 벌어졌다. 11시 문을 여는 금은방에 들어가기 위해 전날 지방에서 올라온 이들까지 줄을 서기 시작했다.
매장 폐점 시간은 오후 6시였지만 오전 10시 30분까지 줄을 서지 않은 사람은 발길을 돌려야 할 정도로 많은 사람이 몰렸다. 매서운 날씨에 핫팩마저 식어갔지만 사람들은 목도리와 패딩으로 무장 하고 묵묵히 자리를 지켰다.
경기도 의왕에서 왔다는 한 손님은 “이곳이 소셜미디어에서 워낙 유명한 금 ‘성지’이기도 하고 자투리 금이나 14k 금도 다른 곳보다 더 값을 잘 쳐주는 것으로 알아서 새벽부터 일어나서 왔다”고 말했다.

“셀 아메리카” 달러 힘 약해지자 빛나는 金

이날 금과 은은 동시에 사상 최고가를 달성했다. 지난해에만 65% 급등한 국제 금 가격은 사상 처음으로 온스당 5200달러를 넘어섰고 은 현물 가격도 1월 28일 온스당 113달러 선까지 올라서며 사상 최고치를 갈아치웠다.
금 값은 2년 사이 약 2.5배 뛰었고 은값은 같은 기간 5배 가깝게 치솟았다.
고공행진 했던 금과 은은 지난달 30일 '매파'로 알려진 케빈 워시 미중앙은행(Fed) 의장 지목으로, 완화적인 통화 정책 기대가 꺾이면서 귀금속 시장에서 차익 실현 매물이 대거 쏟아져나왔다. 여기에 마진콜 쇼크까지 겹치며 금과 은값이 1980년 이후 최고 낙폭을 기록했다.
이후 저가 매수세가 이어지며 다시 금값은 반등 5000달러선을 회복했다.
롤러코스터를 타던 금과 은값은 미국 연방대법원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상호 관세가 위법하다는 판결을 내리면서 다시 뛰었다. 미국의 관세 정책을 둘러싼 불확실성이 다시 커지면서 안전자산 수요가 몰린 것이다.
금의 글로벌 시가총액 규모는 현재 약 35조9000억 달러로 시가총액 세계 1위 기업인 엔비디아(약 4조 7000억 달러)의 8배에 육박한다.
금값이 폭등한 데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화폐가치가 하락하고 세계적으로 지정학적 긴장이 고조되는 상황에서 안전자산에 대한 수요가 급증했기 때문이다.
각국 중앙은행과 투자자들이 금을 사들였고 여기에 금 ETF로 인한 자금 유입까지 겹치면서 금값 상승세가 더욱 가속화했다.
무엇보다 4년래 최저 수준으로 떨어진 달러 약세가 ‘골드 랠리’의 직접적인 원인이 됐다는 분석이 나온다. 달러 시스템의 붕괴를 우려한 투자자들의 대응이라는 것이다.

달러와 금값은 통상 반대로 움직인다. 안전자산 내에서 서로를 대체하는 강력한 경쟁자이기 때문이다. 1971년 미국 정부가 금본위제(금태환)를 폐지한 이후 기축통화인 달러의 가치가 오르면 금의 가치가 떨어졌고 달러의 가치가 떨어지면 위험을 회피하려는 수요가 몰리면서 금값이 올랐다.
대표 기축통화인 달러의 화폐가치가 낮아질 경우 금이 실질 구매력을 지켜주는 수단인 대체적 안전자산 역할을 하면서 자금이 쏠린다.
또 금이 달러로 거래되는 만큼 달러 가치가 하락할 경우 다른 통화권 투자자에게 금이 상대적으로 낮은 가격으로 인식되는 효과도 있다.
ICE 선물거래소에서 주요 6개 통화에 대한 달러화 가치를 반영한 달러인덱스는 1년 간 8% 넘게 떨어졌다.

특히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약달러를 반기는 만큼 시장은 달러 약세가 올해도 이어질 것으로 보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대선 기간부터 강달러 시대를 끝내 미국의 수출 경쟁력을 높이는 한편 Fed의 독립성을 약화시키겠다고 공언해왔다. 당선 이후에도 꾸준히 제롬 파월 Fed 의장을 향해 공개적으로 금리인하를 압박해왔다.
여기에 더해 미국과 일본, 유럽 등 주요국이 확장적 재정정책을 추진하면서 글로벌 유동성 확대에 따른 금값의 고공행진은 당분간 지속될 전망이다. 유동성 확대는 결국 화폐가치의 추가 희석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각국 중앙은행도 ‘골드러시’

이 같은 배경 속에서 각국 중앙은행이나 투자자들이 미국 국채와 달러를 줄이는 ‘셀 아메리카’ 흐름이 나타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세계금위원회(WGC)의 존 리드 수석 전략가는 블룸버그통신과의 인터뷰에서 “초고액 자산가의 재산을 관리하는 기관인 패밀리오피스에서 특히 통화 가치 하락과 (미국) 국가 부채 리스크에 대한 논의가 매우 많다”며 “이런 기관들은 단기적 시세 차익보다 세대를 넘어서는 자산 보호를 최우선 순위에 둔다”고 설명했다.
각국 중앙은행도 달러화에 편중된 보유 자산 다변화 차원에서 최근 몇 년간 금 보유 비중을 늘려왔다. 골드만삭스는 올해 중앙은행들이 매달 약 60톤, 현재 시세로 100억 달러에 가까운 규모의 금을 매입할 것으로 예상한다. 이는 2022년 이전 평균치인 17톤을 크게 웃도는 수준이다.
공식적으로 세계 최대 금 매입국인 폴란드 중앙은행은 최근 150톤의 추가 매입 계획을 승인했다.
한때 미국채를 가장 많이 들고 있던 중국은 국채 보유량을 점점 줄이고 대신 금을 매수하고 있다. 2025년 11월 중국의 미 국채 보유량은 2013년 대비 절반으로 줄어든 6830억 달러까지 떨어졌다. 반면 전체 외환에서 금의 비중은 처음으로 9%를 돌파했다.
지정학적 불안도 위험자산 회피 심리를 자극하며 금과 은 가격 상승을 이끌었다.
시장에서 금은 “신뢰의 반대편에 있다”는 말이 나올 만큼 위험 회피 자산으로 통하고 있다. 예상치 못한 인플레이션, 시장의 급격한 하락, 지정학적 위험 급등에 대비한 회피 수단 역할을 해왔기 때문이다.
미국이 그린란드에 대한 야욕을 보이고, 이란에 대한 군사 개입을 시사하는 등 지정학적 불안이 끊이지 않고 있다. 이 과정에서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와의 갈등이 발생했고 독일과 이탈리아 등 유럽 각국의 정당 지도자들이 트럼프 대통령을 비판했다.
미국에 대한 불신이 깊어지자 세계 2위 금 보유국인 독일에서는 제1야당을 중심으로 미국에 보관 중인 막대한 금을 본국으로 회수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독일은 보유 중인 금 가운데 37%인 약 1236톤(1640억 유로)을 미국에 예치하고 있다.
금 ETF, 사상 최대 자금 유입

거시 환경과 위험회피 심리가 금에 대한 선호를 키우자 자본은 발빠르게 움직였다. 최근 금과 은 ETF로 대규모 자금이 유입되면서 금과 은 값은 더 가파르게 상승했다.
세계금협회(WGC) 데이터에 따르면 2025년 금 ETF는 북미 펀드를 중심으로 역대 최대 규모의 자금 유입을 기록하며 연간 유입액이 890억 달러(약 128조원)까지 급증했다. 전년 대비 114% 증가한 수치로 사상 최고치를 갈아 치웠다. 유입량을 톤 단위로 환산하면 총 801톤으로 2020년 이후 최대를 기록했다.
황병진 NH투자증권 애널리스트는 “Fed의 통화정책 완화 기조가 유지되는 한 금 가격은 온스당 5000달러를 넘어 연내 6000달러까지도 도달할 수 있다”고 말했다.
김영은 기자 kye0218@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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