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저작권, 방치한 문제 쌓였죠" 불법스캔 겪은 20년차 만화가의 경고
[AI가 지워선 안 될 사람들] ③ 디지털콘텐츠창작자협회장이 된 만화가 김동훈
'1등 만화' 그린 만화가가 생계 어려움 겪은 현실, 어디서부터 잘못돼왔나
[미디어오늘 정민경, 노지민, 김예리, 윤유경 기자]

온 세상이 AI가 불러올 장밋빛 미래를 말하는 동안, 한 쪽에선 'AI가 인간 일자리를 얼마나 대체할 것인가'를 묻는다. 효율화의 초점을 '비용'에 맞춘 논의는 당장 생존의 위협을 받는 노동자들의 현실을 가린다. AI는 오랜 시간 켜켜이 쌓인 구조적 문제를 터뜨리는 기폭제로도 작용하고 있다. 미디어오늘은 AI 대체 시도가 이뤄지고 있는 미디어·창작 분야의 종사자들을 직접 만나 이들의 현실과 우리 사회가 지워선 안 될 가치를 살펴본다. <편집자주>
지난 9일 서울 마포구의 한 작업실. 20년 차 만화가인 김동훈 작가는 새로운 웹툰 연재를 위한 작업에 한창이었다. 미디어오늘 취재진과 만난 그는 스크린에 펜을 대고 명암을 칠하는 중이었다. 왜 AI를 활용하지 않느냐 물으니 “아직은 제가 하는 게 마음이 편해요. 내 그림은 어쨌든 제가 그리는 게 훨씬 빠른 거 같아요”라는 답이 돌아왔다.
만화 '베리타스'로 2007년 만화대상 우수상을 수상하고, 만화 저작권 문제에 오래도록 관여해온 김동훈 작가는 현재 한국디지털콘텐츠창작자협회장을 맡고 있다. 2025년 설립된 이 협회에는 40여 명의 창작자들이 소속돼 있다. 김 작가가 AI 시대 창작자들이 처한 위기를 보며 느끼는 감정은 위기감보다는 기시감이다. 새로운 문제가 아니라, 만화 업계가 오래도록 주장했으나 홀대받아온 저작권 문제의 폭발이라 규정한다. 1990년대 대여 만화점, 불법 스캔본, 불법 웹툰 사이트에서 드러난 문제들이 쌓이고 쌓이다 'AI 시대'를 만나 폭발하게 됐다는 말이다.
“만화가 잘됐는데 생활도 힘들었어요. 그때부터 저작권 문제 와닿았죠”
만화가가 된 계기를 묻자, 그는 어린 시절 '허락받지 못한 낙서'부터 이야기를 꺼냈다. 그림 좀 그린다는 평가를 들었던 아이는 일본 만화 '드래곤볼'을 접한 후 매일 캐릭터를 그렸다. 꿈은 현장으로 이어졌다. 21살 만화 '짱'의 임재원 작가 문하생을 시작으로 '니나 잘해'의 조운학 작가, '신암행어사'의 양경일 작가 화실을 거쳤다. 2005년 만화 '베리타스'의 그림 작가로 데뷔했다. 그는 '베리타스'의 콘티를 본 후 “이거 가지고 내가 1등 못하면 나 만화 그만둬야겠다”고 생각했다. 연재는 대박이었다.
“반응이 좋았는데 여전히 생활이 어려웠어요. 출판사에서 '몇 년 만에 처음으로 독자에게 엽서 왔다'면서 담당자가 엽서를 전달해주던 순간을 기억하죠. 그런데 그 당시 만화 대여점이 중심인 유통 구조였고 불법 스캔본 유통도 흔했어요. 업계의 평판과 독자 반응이 있어도, 작가 생계는 해결되지 않았어요. 잡지에서 1등하는 만화인데 당시 한 달에 150만 원 정도 벌었던 거 같아요. 단행본이 넉 달에 한 번 나오면 좀 나았어요. 그때 조금 더 받아서 밀린 전기세 내고 그랬죠.”

장관상도 받은 히트작을 그리고도 생활은 나아지지 않았던 나날, 김 작가는 중증 우울증에 시달렸다. 김 작가는 이런 문제를 겪은 구조가 지금의 AI 저작권 논쟁과 무관하지 않다고 말한다.
“이미 그때부터 '저작권 침해'가 상당했죠. 많은 사람들이 다 보는데, 작가에게 수익이 돌아가지 않는 구조. 여기저기 다 잘 됐다고 하는데 정작 내 생활도 안 된다니. 진짜 만화를 더 이상 할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너무나 힘들었죠. 만화로는 먹고 살 수가 없는 거구나. 다들 문제라고 알고 있는데도 방치 당하는 거구나. 그럴 때쯤 일본에서 연락이 왔어요. 일본의 잡지가 한국 작가들을 섭외하던 참이었고 일본에서 3년 정도 활동하게 됐어요.”
당시 일본의 원고료는 한국과 체감이 완전히 달랐다. 한국에서 페이지당 3만 원을 받았던 시절에 비하면, 일본에서 받은 원고료는 대략 6~7배 였다. 신인 기준으로도 2배는 넘었다. 물론 일본에서도 모든 것이 좋진 않았다. “꽤 고생했어요. 언어의 문제도 있지만, 뭔가 작품에 제가 들어가 있다는 느낌이 안 들었어요. 지시 위주로 그림을 그린 느낌이 있었어요. 게다가 담당자가 자주 바뀌었고 힘든 점을 느끼고 있던 와중에 한국으로 돌아올 기회가 생겼죠.”
그렇게 한국으로 돌아왔고, 웹툰으로 다시 작업을 이어갔다. '베리타스'를 웹툰으로 옮기는 작업도 했다. 한국에 다시 돌아왔지만 불법사이트 문제는 여전히 해결되지 않았다. 정식 서비스가 끝나도 불법 사이트에 올라와 있는 경우도 많다고 한다. 실제 한국콘텐츠진흥원의 '2024 웹툰산업실태조사'에 따르면 K-웹툰의 연간 산업 규모가 2조 원을 넘어선 동시에, 불법 웹툰 시장 규모가 4465억 원에 달한다.

AI가 재편할 만화 제작 공정…웹툰 사업체와 창작자·독자 생각은 확연히 갈려
AI가 업계에 들어온 뒤에는 무엇이 달라졌을까. 그는 스스로의 제작에 AI를 쓰지는 않지만 제작의 일부는 AI가 대체할 수 있다고 봤다. 특히 일본 만화책을 '세로 스크롤'로 재편집하는 과정이나, 명암을 넣거나, 배경 작업을 할 때에는 활용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다만 만화는 컷이 많고, 클로즈업도 많고, 캐릭터가 연속적으로 등장하기에 아직까지는 채색 등을 맡기기에는 믿음직스럽지 않다. 정작 현장에서는 “'AI를 썼다'라고 명확하게 얘기하시는 분은 주변에 거의 없다”고 한다. 한국 만화계에서는 독자들의 반감이 아직 남아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2023년 네이버웹툰 도전만화에서 'AI 웹툰 보이콧' 게시물이 인기 순위 1위를 차지하며 네이버웹툰과 카카오웹툰, 웹툰 공모전에서 AI 그림 활용을 배제한 사건도 있었다. 해당 게시글 작성자는 “기술의 발전을 반대하는 것이 아니라 무단 도용과 복제, 짜깁기한 이미지, 훔친 그림의 상업적 이용·초상권 침해를 반대한다”고 했다. 당시 네이버웹툰 신작 '신과함께 돌아온 기사왕님'의 경우 AI를 활용했다는 의혹에 별점 테러가 이어졌다. 이에 웹툰 제작사인 블루라인 스튜디오가 후보정 작업에서 AI를 활용했다고 입장을 냈으나 이후 웹툰 업계에서는 AI를 활용하는 것이 사실상 금기시된 상황이다.
“독자들의 반감은 여전하지만 AI가 보조적 도구로서 기능을 할 수 있다면, 작업 시간을 많이 줄어들 수도 있으니 지금처럼 과노동 상태에서 필요할 수 있다고 봐요. 일본은 AI를 활용한 만화가 1등을 하기도 했대요.”
일본에선 일본 만화 플랫폼 중 하나인 코믹 시모야에서 AI로 제작한 성인 만화 '아내여, 나의 연인이 되어주지 않겠습니까?'가 종합 랭킹 1위를 차지했다. 또한 일본 전설의 만화 '아톰'을 만든 데즈카 오사무의 아들이 데즈카 오사무의 '블랙잭'을 AI로 부활시킨 사례가 있다. 데즈카 오사무의 과거 작품을 AI에 학습시켰고 일본 만화 잡지인 소년 챔프에서 연재됐다. 데즈카 오사무의 아들이 거장의 IP를 가지고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 외 일본 만화 대히트작 '원피스'를 제작한 일본 최대 애니메이션 제작사 토에이 역시 제작 전반에 AI 기술을 접목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다만 '대작 IP'를 가지고 있는 사업체들의 인식과, 창작자나 독자의 인식은 차이가 있다. 지난달 6일 발표된 한국문화광관연구원의 '웹툰산업 제작 구조 변화에 따른 정책방안 연구' 보고서에 따르면 웹툰 작가를 대상으로 설문한 결과 AI 기술 활용이 향후 창작 활동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한 응답이 56.0%에 달했다. 반면 AI 기술이 웹툰 작업 활동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본 응답은 23.7%에 그쳤다. 그러나 웹툰 사업체들의 AI 기술에 대한 인식은 반대였다. 웹툰 콘텐츠 제작사·플랫폼 등 사업체 대상 설문조사에서는 41.3%가 AI 기술이 창작환경에 긍정적인 변화를 가져올 것이라고 기대했고 부정적인 영향을 예상한 것은 37.3%였다.

장관상 받았으나 생계 힘들었던 만화가였기에…디지털콘텐츠창작자협회장됐다
김동훈 작가에게 AI가 만화가를 대체할 것이라 생각하냐고 물었다. “AI가 가져올 변화는 특정 업무의 소멸이라기보다 공정 자체의 완전한 재정립일 거예요. 문하생이 없어진다, 작가가 없어진다는 단순한 이야기는 아니에요. 만화 제작 시스템도, 작가의 일도 재편되겠죠. 지금 기준으로 어떤 작업이 없어질 거라고 얘기하기는 어려울 것 같아요.”
다만 AI 저작권 논쟁에 관한 질문에서 그는 단호해졌다. “학습데이터 관련 부분은 이미 끝난 것 아닌가 싶기도 해요. 예전부터 떠돌아다니던 좋은 그림들이 너무나 많죠. 그래서 언제부터의 학습을 규제를 할 것이냐는 어려운 문제로 가죠. 저작권의 개념부터 좀 다시 이야기해봐야될 것 같아요. 저작권을 '사후 70년'으로 묶어둔 현재 체계에도 근본적 의문이 들어요. 70년이 지난 작품들은 이미 학습 데이터로 넘쳐나요. 그래서 '작가님 그림 500만 원에 쓸게요' 이게 아니라 계속 그 콘텐츠에 대해서 수익 분배가 일어나는 구조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김 작가는 한국디지털콘텐츠창작자협회장으로서 지난달 15일 국가AI전략위원회에서 열린 '저작권 과제 관련 유관 협단체 간담회' 참석해 콘텐츠 산업은 지속적으로 수익을 얻는 구조이고, AI가 그 결과물을 사용한다면 보상 체계가 필요하며, 그걸 지키지 못하는 기업에는 '징벌 배상' 등을 고려하는 방안을 전달했다고 한다. AI전략위는 원 저작권자를 명확히 알 수 있는 분야에 대해서는 선사용 후보상이 아니라, 저작권자의 정당한 권리를 보장하며 해당 시장에서 합리적인 거래가 보다 활성화될 수 있도록 지원하겠다고 했다.

다행히 지난달 29일 국회를 통과한 저작권법 개정안에서는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의 권한과 의무가 강화되었으며 '긴급 차단' 제도가 도입될 예정이다. 저작권 침해가 명백하고 회복하기 어려운 피해가 예상될 경우 문체부 장관이 온라인서비스제공자에게 즉시 접속 차단을 명령할 수 있게된다. 또한 이번 개정안에는 최대 5배의 징벌적 손해배상제도와 저작권 침해범의 형사처벌 강화도 포함된다. '누누티비' 사태처럼 만화계 불법 유통 사이트 관련에도 발빠른 조치가 필요한 시점이다.
김 작가는 이미 10년 전부터 불법 유통에 대응하는 활동을 이이가고 있다. 단순한 정의감이 아니라, 시장 붕괴를 곁에서 본 사람의 공포였다.
“출판 만화 때 저작권이 침해당해 힘들었던 걸 겪었잖아요. 내가 좋아하는 만화를 이제 하지 못할까봐, 그 두려움이 기본적으로 깔려 있어요. 웹툰 불법 유통 사이트 문제가 커지면서 화가 많이 났죠. 현재 일본으로 귀화한 불법 유통 사이트 개설자 때문에 일본 소송은 저작권보호원의 바우처 지원을 받아 진행 중이고, 국내 소송도 병행 중이에요.”
AI 시대 '너도 대체될 거야'라는 소리를 들을 때 우울감을 어떻게 처리하는지 묻자 그는 이렇게 답했다. “제 그림은 어쨌든 저밖에 못 그리는 거니까. 제 그림을 그리려고 노력을 하죠. 결국 AI가 온다고 해도, 내 그림이 도용당한다고 해도 나는 계속 성장을 하려고 하죠. 내 그림을 성장시키는 건 내가 제일 빠를 수밖에 없잖아요. AI라는 씨앗은 이미 심어졌고 이제 엄청나게 커지겠죠.”
창작자인 그가 느끼는 두려움이란 '내가 너무나 사랑하는 만화계에 내가 필요없어질 수도 있다는 상황', '만화로 내가 먹고 살수 없게 되는 시점'이다. 창작자에게 저작권이 바로 '생계'인 이유다.
“AI와 저작권 문제는 결국 '내가 살아온 시간이 필요 없을 수도 있다'는 결론으로 우리를 몰아갈 수 있어요. 만화를 너무 좋아해 붙들고 왔는데, 만화에 내가 필요 없을 수도 있다니, 그게 너무너무 무서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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