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농민은 왜 개를 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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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Pop 데몬 헌터스 신드롬 등 한류의 위상이 지금 같지 않았던 약 20여 년 전, 연합왕국(United Kingdom, UK) 잉글랜드의 보수적인 남서부 은퇴자 마을로 시집가 보니 동화 속 마을 같은 그 동네 어디에도 아시아인은 한 명도 없었다.
그 후에도 산책 중 목줄을 빠져나가 양을 쫓았다가 다시 리드줄에 묶였지만 여전히 양을 향해 격하게 몸을 던지던 허스키, 산책 중 양을 쫓던 가정 반려견 코카푸, 집을 탈출해 임신한 양 22마리를 죽이고 다른 양 48마리를 상해한 XL 불리 두 마리 등 다수의 개들이 농장주에 의해 사살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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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Pop 데몬 헌터스 신드롬 등 한류의 위상이 지금 같지 않았던 약 20여 년 전, 연합왕국(United Kingdom, UK) 잉글랜드의 보수적인 남서부 은퇴자 마을로 시집가 보니 동화 속 마을 같은 그 동네 어디에도 아시아인은 한 명도 없었다. 그러나 좁은 동네 자동차 길에는 탐스러운 말들이 수시로 등장했고, 목초지에는 양떼와 함께 기가 막히게 양을 모는 쉽독(sheepdog), 보더 콜리가 있었다.
겨울철에는 새나 개가 수놓아진 실크 넥타이를 매고 어스 톤(earth tone)의 트위드 세트와 장화를 신은 채 고상하고 친근하게 행동하는, 완벽하게 훈련된 건독(gun dog) 래브라도 리트리버와 잉글리시 스프링거 스파니엘을 대동하여 꿩 사냥을 나가는 올드 머니 가문의 자제들도 볼 수 있었다. 저녁 식사에 초대되어 방문한 이웃들의 집에서는 어김없이 사람을 잘 따르는 코커 스파니엘, 카발리에 킹 찰스 스파니엘, 코카푸 등 가정 반려견(family dog, companion dog)들이 손님을 반겼다.
소위 '시고르자브종' 혹은 코리안 빌리지 독(Korean Village Dog, KVD)으로 칭해지는 경계심 많고 공격적인 백구, 황구를 주로 접했던 필자에게 영국의 개 '브리딩(breeding)과 견종(breed)'은 거대한 문화 충격 그 자체였다. 그들은 스팀 엔진만이 아니라 개마저도 원하는 기질과 능력으로 만들어 내고 있었다.
포식 행동 시퀀스 중 일부 단계(orient-eye-stalk-chase)를 과도하게 강화하고 나머지 단계(grab-bite-kill bite-dissect-consume)를 억제함으로써, 궁극적으로 '변형된 포식 행동 체계'를 가진 양몰이개 품종을 만들어 내는 식이었다. 그리고 그에 맞도록 각 견종별로 다르게 훈련시켰다. 영국의 개는 이렇게 인간을 위해 일하는 동물(working animal, working dog), 즉 사역견이면서 동시에 가족이자 팀의 일원이었다. 영국에서 개는 'Man's best friend'라고도 불린다.
그런데 이러한 영국의 농장주들이 개를 총으로 사살하는 경우가 있다. 바로 '가축 위해(livestock worrying)' 현장에서 자신의 양을 보호하기 위해서다. BBC 보도에 따르면 2016년까지 6년간 최소 305마리 이상의 개가 농장주에 의해 사살됐다. 그 후에도 산책 중 목줄을 빠져나가 양을 쫓았다가 다시 리드줄에 묶였지만 여전히 양을 향해 격하게 몸을 던지던 허스키, 산책 중 양을 쫓던 가정 반려견 코카푸, 집을 탈출해 임신한 양 22마리를 죽이고 다른 양 48마리를 상해한 XL 불리 두 마리 등 다수의 개들이 농장주에 의해 사살됐다. 이러한 사살 행위는 모두 정당한 것으로 인정됐다. 그럼에도 영국에서는 여전히 가축을 위협하는 개의 소유자 책임을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지속적으로 제기돼 왔다.
이에 영국 정부는 2026년 3월 18일부터 '개(가축보호) 개정법'(The Dogs (Protection of Livestock) (Amendment) Act 2025)을 시행한다. 1953년 이후 약 70년 만에 개정된 이번 법은 농민의 강화된 방어권과 반려견 소유자의 가중된 책임을 주요 내용으로 한다.
개가 가축을 직접 물거나 신체 접촉을 하지 않더라도, 가축들 사이에서 풀려 있거나 가축을 쫓는 행위만으로도 '위해 행위(worrying livestock)'에 해당하여 형사 처벌의 대상이 될 수 있음을 명확히 했다. 기존 1000파운드 수준이었던 벌금 상한선도 폐지되어 '무제한 벌금' 제도가 도입됐다. 또한 법원은 가해 견주의 개를 압류하거나 관리하는 데 드는 비용을 해당 견주에게 부담하도록 명령할 수 있게 됐다.
김한아 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