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톡까지 공유하는 ‘디지털 감금’…친밀관계 피해자 더 옥죈다”

“한국과 같은 초연결 사회에선 디지털 인프라가 돌봄과 보호라는 이름으로 친밀한 관계의 피해자를 더 쉽게 통제할 수 있는 조건을 만든다.”
지난 4일 오스트레일리아(호주) 멜버른에서 만난 배성신 모내시대 ‘젠더 및 가정폭력 예방센터’ 연구원은 “한국의 친밀한 파트너 대상 살인율은 호주보다 약 3배 높다”며 “그 배경엔 기술을 통한 통제가 훨씬 용이한 디지털 환경이 작용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배 연구원은 “한국의 경우 친밀한 관계에서 상시적으로 연결돼 있어야 한다는 기대가 강하다. 돌봄과 관심의 표현으로 위치나 비밀번호 공유가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진다”며 “통제가 집착이 아니라 사랑이나 책임으로 해석되기 쉽다”고 짚었다. 배 연구원은 대검찰청 양성평등전문관으로 현재 모내시대에서 박사 과정 연수 중이다. 배 연구원은 영국·호주 등에서 범죄화된 ‘강압적 통제’ 논의를 바탕으로 디지털 인프라가 어떻게 통제를 일상적으로 가하는지, 피해자가 왜 탈출하기 어려운 구조에 놓이는지 등을 분석해 이를 ‘디지털 감금’이라는 개념으로 설명했다. 해당 연구가 담긴 논문은 올해 하반기 국제 학술지를 통해 발표될 예정이다.
과거에는 홈캠이나 위치추적기 설치와 같은 비교적 노골적인 감시가 문제로 지적됐다면, 최근엔 ‘사랑해서’, ‘같이 쓰면 편하니까’ 등의 명분으로 메신저 대화 내역,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비밀번호, 배달·전자상거래 플랫폼 계정 등을 친밀한 관계에서 공유하도록 요구하는 양태가 늘고 있다는 게 배 연구원의 설명이다. 문제는 피해자가 이를 거부하거나, 도중에 그만두려고 할 때다. 가해자는 ‘처음엔 동의했잖아’, ‘사랑이 식었느냐’ 등의 말로 피해자의 거부를 배신으로 몰아가는 경우가 적지 않다고 한다.
배 연구원은 “(2015년부터 강압적 통제가 형사 처벌 대상이 된) 영국에서는 피해자가 처음 동의했더라도 그것이 점차 통제 수단으로 전환됐는지를 본다”며 “동의 여부보다 이로 인해 피해자의 일상에 중대한 부정적 영향이 발생했는지가 판단 기준”이라고 설명했다.
한국은 카카오톡 등 국민 대다수가 사용하는 ‘슈퍼 앱’이 있다는 점에서도 ‘강압적 통제’에 노출되기 쉽다. 배 연구원이 국내 젠더 기반 폭력 대응 단체 관계자 13명을 인터뷰한 결과, 친밀관계 폭력 피해자들은 상대를 차단하거나 삭제한 이후에도 재등장과 지속적 노출을 경험했다고 답했다. 예컨대 카카오톡에서 가해자를 차단한 이후 익명 기반 오픈채팅방에서 다시 마주치거나, 번호를 지웠는데도 지인과 번호가 공유돼 있어 친구추천 목록에 가해자가 다시 나타나기도 한다.
이외에도 영세 자영업자인 피해자가 가해자와 동업 관계로, 함께 사용하던 전자상거래·배달플랫폼 계정을 쉽게 분리할 수 없어 관계 단절이 사실상 불가능한 사례도 있었다. 배 연구원은 “슈퍼 앱에 의존하는 사회에선 피해자가 가해자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모든 연결을 끊는 등 극단적인 사회적 단절을 감수해야 한다”며 “통제가 기술을 통해 훨씬 은밀하고 지속적이면서 정당화되는 방식으로 작동한다”고 말했다.
배 연구원은 강압적 통제 개념이 사회적으로 충분히 논의되지 않은 상태에서 곧바로 처벌법을 도입하는 것은 오히려 위험할 수 있다고 조언했다. 그는 “강압적 통제를 사회적으로 이해하지 못한 채 형벌로만 접근하면 피해자를 발견하지 못하는 사각지대가 생길 수 있다”며 “기술 매개 강압적 통제를 젠더 폭력으로 인식하고 연구를 확대하는 한편, 플랫폼도 서비스를 설계하는 단계에서부터 기술이 어떻게 악용될 수 있는지를 고려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실제로 호주는 2022년부터 ‘온라인안전법’을 통해 플랫폼의 안전 설계 의무를 법제화했다. 플랫폼은 서비스 설계 단계에서 온라인상의 다양한 위험, 특히 이미지 기반 학대나 온라인 괴롭힘과 같은 젠더 기반 폭력과 연결될 수 있는 위험을 사전에 고려하도록 요구받는다. 배 연구원은 “플랫폼의 예방적 책임을 강화하는 동시에, 친밀한 관계에서의 폭력을 단일 사건이 아니라 일상의 변화와 누적된 통제의 과정으로 이해하려는 관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고나린 기자 m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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