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위스에서 스스로 떠난 엄마, 30분 더 붙잡고 싶었던 아빠
편집자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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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세포 전이와 극심한 통증
긴 고심과 망설임 속의 선택
존엄사에 대한 다양한 질문

올해 2월 6일(음력 12월 19일)은 엄마의 생일이었다. 아빠와 함께 백화점 식품관에 가서 엄마가 생전에 좋아했던 떡과 새우전, 옥돔과 딸기를 샀다. 2년 반 전 돌아가신 엄마의 생일잔치를 하기 위해.

엄마는 2023년 8월 3일, 한국이 아닌 스위스에서 삶을 마감했다. 돌아가신 방법도 우리에게는 아직 낯선 존엄사, 조력사망이라는 방식이었다. 나는 사랑했던 엄마와의 마지막 여정을 '오늘이 내일이면 좋겠다'라는 에세이에 담았다.
"오늘이 내일이면 좋겠다." 존엄사 전날 아침, 엄마가 숙소에서 건너편 취리히 호수를 바라보며 한 말이다. 하루라도 빨리 고통을 끝내고 싶은 간절한 염원이 담긴 단 한마디.
엄마는 말기 암 환자였다. 2009년 유방암 판정을 받고 수술과 항암치료를 받았지만, 11년 뒤 암세포가 뼈로 전이된 것이 확인됐다. 누구보다 치열하게 삶을 사랑했던 엄마도 '뼈마디를 칼로 콱콱 쑤시는 듯한 극심한 통증' 앞에서는 무너져 갔다. 위로, 폐로, 피부로 뻗어나가던 암세포는 급기야 하지마비로 이어졌다. 긴 고민과 망설임 끝에 엄마는 존엄사를 선택했다.

스위스 조력사망 기관인 디그니타스(Dignitas)에서 '그린라이트'(조력사망 허가)를 받기까지는 예상을 훨씬 넘는 엄격한 심사를 거쳐야 했다. 영문 의료 기록과 라이프 리포트, 자필 서명 편지. 서류를 제출할 때마다 보완 요청이 돌아왔다. 하나라도 미비하면 허가가 나지 않을까 봐, 마음이 타들어 갔다. 비용도 만만치 않았다. 회원 가입비, 연회비, 조력 사망을 위한 특별 회비까지만 해도 2,000만 원 정도 들었다. 여기에 항공료와 체류비가 더해졌다. 거동이 힘든 엄마와 고령의 아빠를 모시고 가야 했기에 스위스행 비행기는 비즈니스석으로 예약할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스위스의 높은 물가까지, 3박 5일의 일정에 들어간 총 비용은 4,000만 원이 넘었다. 엄마는 '외화 낭비'라고 했다.
엄마, 아빠, 나 셋이 함께 스위스로 향했다. 아픈 몸을 이끌고 8,770㎞, 무려 열세 시간을 날아가는 길은 험난했다. 병약 승객으로 탑승이 거부되면 모든 일정이 무너질 수도 있었다. 엄마는 곱게 화장하고 승무원들에게 웃으며 인사했다. 휠체어를 탄 채 좁은 기내 화장실을 이용하는 일 또한 고역이었다. 만일에 대비해 엄마는 성인용 기저귀를 차고 있었는데 착륙을 앞두고 화장실에 한 번 더 가고 싶은지 물었다. 엄마는 겸연쩍은 듯 "괜찮아, 조금 쌌어"라고 했다. 우리나라가 아닌 타국에서 존엄사하기 위해 엄마는 존엄이 훼손되는 모순을 감당해야 했다.
취리히에 도착해서도 긴장을 늦출 수 없었다. 엘리베이터가 없는 호텔에서 엄마는 직원의 등에 업혀 이동했다. 두 차례의 의사 면담에서는 제3자 개입이 없는 엄마의 의지가 분명한지 확인하고 또 확인했다. 혹시라도 불안해 보이면 의사가 처방을 거부할 수도 있는 상황. 그렇게 되면 우리는 다시 한국으로 돌아와야 했다. 엄마는 내내 의연했지만, 스스로 약을 마실 수 있는지 증명하기 위해 물컵을 든 손은 떨렸다.

무수한 역경이 있었지만, 작은 기적들에 힘입어 엄마는 마지막 소원을 이뤘다. 미리 인사하고 떠나고 싶다는 바람대로 아빠와 내게 사랑한다는 말을 남겼다. 긴 여정 끝에 맞은 마지막 순간만큼은 평온했다. 화장한 뒤 유골은 취리히 호수가 내려다보이는 작은 언덕에 뿌렸다. "절대 한국으로 가져오지 마. 아름다운 자연을 보며 훨훨 날아다니고 싶어." 엄마의 유언이었다. 우리는 엄마의 1주기와 2주기에 그 언덕을 다시 찾았다. 그곳에서 조용히 제사를 지냈다.
그럼에도 남은 가족의 마음은 그날에 머물러 있다. 나는 아직도 엄마를 떠나보낸 게 잘한 일인지 자문한다. 아빠는 "어디 한 군데라도 성해야 가지 말라 붙들고 늘어지지"라고 하면서도 "마지막 순간 30분만 더 있다 가라"고 말할 걸 후회한다. 그래서 우리는 엄마 없는 엄마의 생일을 축하하고 애도한다.

앞으로의 연재에서는 개인적 고백을 넘어 각 나라의 제도와 현실, 존엄사를 둘러싼 오해와 논쟁, 그리고 대중문화가 그려 온 존엄사의 모습 등을 짚어보려 한다. 나아가 돌봄의 선택지로 이 문제를 어떻게 바라볼 수 있을지 다룰 예정이다. 옳고 그름을 단정하기보다, 각자의 삶에 비추어 충분히 생각해 볼 수 있도록 질문을 던지고 싶다.

(www.hankookilbo.com/news/article/A2026020211070001227)
(www.hankookilbo.com/news/article/A2026011913160000993)
(www.hankookilbo.com/news/article/A2026010215490002815)
(www.hankookilbo.com/news/article/A2025121915280003680)
남유하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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