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용불량자 절반이 4050 가장… 경제 떠받칠 ‘허리’가 무너진다

지난 3일 오전 11시, 서울 중구 신용회복위원회 서민금융지원센터. 영하의 날씨에 10여 명이 굳은 표정으로 상담을 기다리고 있었다. 사람들이 빚을 제때 갚지 못해 원리금 상환을 일부 미뤄주는 채무 조정을 신청하거나, 법원에 회생이나 파산 등을 신청하기에 앞서 도움을 받고자 할때 이곳을 방문한다. 매일 평균 150여 명이 찾는다.
40대 자영업자 A씨는 채무 조정을 신청하기 위해 이날 방문했다. 하지만 지원이 어렵다는 말을 들었다. 그는 “살고 있는 조그만 아파트 때문에 채무 조정을 받지 못한다고 하더라”며 “매출은 바닥인데 빚은 매달 불어나니 더 이상 버틸 재간이 없다”고 했다.
고금리와 내수 부진이 장기화하면서 빚을 90일 이상 갚지 못한 ‘금융 채무 불이행자(옛 신용불량자)’가 작년 말 93만명을 넘어섰다. 올해 100만명을 넘을 것이란 전망도 등장하면서, 금융 취약 계층의 부실이 ‘뉴노멀(새로운 표준)’로 굳어지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40·50 남성 직격탄
한국신용정보원이 집계한 금융 채무 불이행자 추이에 따르면 우리나라 ‘경제 허리’ 계층의 붕괴가 심각하다. 작년 말 전체 연체자 중 40·50대 비율이 절반에 육박했다. 50대가 22만8235명(24.4%)으로 가장 많았고, 40대가 21만5479명(23.0%)으로 뒤를 이었다. 40·50대가 47.4%에 달한다. 경제 활동 인구 중 40·50대가 44%쯤인 것과 비교하면 비율이 더 높다.
특히 남성 가장의 타격이 컸다. 남성 금융 채무 불이행자는 64만3180명으로 여성(29만2621명)의 2배 이상이었다. 40·50대 남성이 30만6604명으로, 2021년(27만2842명)보다 3만명 넘게 늘었다. 제조업, 건설업 등 주력 산업이 침체에 빠진 데다, 자영업도 부진하면서 중장년 남성이 직격탄을 맞고 있는 것이다.
이날 파산 신청 상담을 받은 보험 설계사 김모(58)씨는 “경기 불황으로 고객의 보험 해약이 늘면서 보험사에 돌려줘야 할 수수료 등만 3000만원에 달했다”며 “앞으로도 빚이 불면 불었지 갚을 수는 없겠다는 생각에 파산을 생각했다”고 했다. 일용직 배모(63)씨는 “건강 악화로 일을 못 하게 되면서 200만원 남짓한 빚도 갚지 못할 뻔했는데, 그나마 채무 조정을 받아 40만원만 갚아도 된다”고 했다.

◇청년층 ‘빚투’ 청구서도
미래 세대인 청년층의 부실 속도도 가파르다. 2021년 8만2327명이었던 20대 금융 채무 불이행자는 지난해 10만3679명을 기록하며 사상 처음 10만명을 넘어섰다. 4년 새 26% 가까이 늘었다. 대학생 B(23)씨는 생활비 명목으로 2금융권에서 수백만 원을 빌렸다가 연체자가 됐다. B씨는 “취업 문턱을 넘기도 전에 신용불량자라는 낙인이 찍혀 막막하다”며 “요샌 아르바이트 자리 구하기도 하늘의 별 따기라, 채무 조정을 통해 원금을 감면받는 것만이 유일한 희망”이라고 말했다.
이정희 중앙대 경제학부 교수는 “과거 외환 위기나 코로나 시기에는 경기 반등과 함께 연체율이 해소되는 경향이 있었지만,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며 “자산 증식이 어려워진 청년층이 주식이나 코인 등에 무리하게 투자했다가 실패하거나, 생활비 대출조차 갚지 못해 장기 연체자로 전락하는 악순환이 이어지고 있다”고 했다. 구조적으로 신용불량자가 늘어날 위험이 크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급증하는 신용불량자 문제를 단순히 개인의 도덕적 해이로만 봐서는 안 된다고 경고한다. 이들이 경제 활동 인구에서 이탈할수록 국가 경제의 활력이 떨어진다는 것이다. 강성진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는 “빚 갚는 기간만 단순히 연장해 줄 게 아니라, 상환 역량을 갖춘 채무자들에게는 맞춤형 채무 조정을 지원하고 도저히 빚을 못 갚는 이들에게는 복지성 지원도 고려해야 한다”고 했다. 박정수 서강대 경제대학 교수는 “단순 재정 지원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문제로, 우리 경제에 대한 구조 개혁이 정말 필요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금융위원회 관계자는 “7년 이상 장기 연체 채권을 정리하는 ‘새도약기금’을 출범하고, 신용회복위원회를 통해 채무 조정 지원 방안 등을 마련해왔다”며 “금융권 대상으로 자체적인 채무 조정 프로그램을 확대하도록 독려하겠다”고 말했다.
Copyright © 조선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대마 흡연’ 래퍼 키스에이프 징역 1년 6개월 확정
- 농업 정책 전문가 “쌀값 하한 20만원 보장한 정부 약속, 쌀 시장 왜곡 키운다”
- 아이와 수영하다가…태국서 40대 한국인 남성 사망
- 바다 지키랬더니... 해상국립공원에 음식물쓰레기 버린 해경
- 롯데케미칼, 110만톤 규모 NCC 가동 중단...정부, 석화 재편 1호 사업 승인
- 김태희, 한남더힐 127억에 팔았다...7년 만에 85억 시세차익
- 北, 김정은 독자 우상화 가속 “기적의 시대 펼치는 천하제일 위인”
- 李대통령 “농지 매각 명령에 공산당 운운...이승만 대통령이 빨갱이 공산주의자냐”
- [속보] 코스피 사상 첫 6000 돌파, 5000달성 18거래일만
- “코스피, 4월 강세장 전 3월 조정 올 수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