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약왕의 은밀한 만남, 그 끝은 죽음
은신처서 연인 만나다 꼬리밟혀

중남미 최대 마약 범죄 조직인 멕시코의 ‘할리스코 신세대 카르텔(CJNG)’ 우두머리 네메시오 오세게라(60·일명 ‘엘 멘초’)가 22일 전쟁을 방불케 하는 군사작전으로 사살되면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의 중남미 마약 조직 소탕 작전이 탄력을 받게 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공권력을 농락하며 법망을 피해 다니던 오세게라는 연인과 은밀하게 만나다 꼬리가 밟히는 바람에 제거됐다는 정황이 드러나고 있다.
멕시코 정부는 23일 전날 멕시코군이 진행한 오세게라 제거 직전의 진행 경과를 일부 공개했다. CJNG는 미국 정부에 의해 ‘글로벌 테러 집단’으로 지정돼 있었고, 오세게라도 마약 밀매 및 범죄 조직 활동 등의 혐의로 미국 검찰에 기소된 상황이었기 때문에 미국·멕시코 정보 당국이 협업해 뒤를 쫓고 있었다. 그러나 오세게라는 당국의 수사망을 피해 요새 같은 은신처에 숨어 있었다. 그러다 지난 20일 남녀 한 쌍이 CJNG의 본거지인 할리스코주 소도시 타팔파의 한 건물로 향하는 모습이 포착되면서 뒤가 밟히기 시작했다.
멕시코 당국은 이들의 신원을 특정하지 않았지만, 다수의 멕시코 언론은 “여성은 오세게라의 여러 연인 중 한 명인 과달루페 모레노 카리요, 남성은 카리요가 신뢰하는 측근”이라고 보도했다. 이 일대는 아름다운 소나무 숲이 우거져 ‘마법의 마을’로 불리며 매주 5000여 명이 찾을 만큼 풍광이 좋고 호젓했다. CIA(미 중앙정보국)가 제공한 드론을 은밀히 띄우고, 현지인들을 포섭해 축적해 놓은 휴민트(인적 정보)를 활용해 양국 정보 당국은 이 건물을 오세게라의 은신처로 특정했다.
하룻밤이 지난 뒤 카리요는 건물을 빠져나갔지만, 오세게라는 경호원의 보호를 받으며 여전히 머무르고 있다는 사실이 확인됐다. 이 정보는 클라우디아 셰인바움 멕시코 대통령에게 즉각 보고됐다. 멕시코 정부는 넉 달도 남지 않은 북중미 월드컵을 앞두고 이 문제를 조기에 해결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22일 새벽 본거지 타팔파로 멕시코군 병력이 이 일대로 집결했다. 최정예 특수부대를 주축으로 헬리콥터 6대 등 군용기도 투입됐다. 무장 조직원들이 발포했지만 군의 화력이 더 강했다. 오세게라와 측근들은 인근 숲속으로 도주했고, 수풀 속에서 총격전이 발생했다. 약 5시간의 교전 끝에 오세게라와 그의 경호원 두 명이 총상을 입었고 병원 이송 중 모두 사망했다. 그의 부하 8명도 총격전으로 사망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멕시코와 미국 정보 당국이 오세게라와 연인의 비밀스러운 밀회 공간까지 추적한 끝에 작전이 성공했다”고 전했다.
결과적으로 대어를 낚는 미끼 역할을 하게 된 카리요는 신상이 거의 알려진 것은 없다. 다만 오세게라의 전 배우자이자 CJNG의 자금·법률 부문 총책이었던 로살린다 곤살레스 발렌시아가 경찰에 체포된 직후인 2021년 11월부터 오세게라와 급격히 가까워졌다고 알려졌다.
멕시코에서 정보 당국이 종적을 감춘 범죄 조직 두목의 뒤를 쫓기 위해 가족이나 연인의 뒤를 쫓는 방법을 사용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2015년 멕시코 마약 카르텔 ‘성전 기사단’의 두목 ‘라 투타’는 여자 친구가 그의 49세 생일을 축하하기 위해 초콜릿 케이크를 보내는 정황이 당국에 포착되면서 덜미를 잡혔다.
이번 작전이 종료된 뒤 멕시코와의 협업을 높이 평가하는 미국 정부 당국자들의 발언이 잇따랐다. 캐롤라인 레빗 백악관 대변인은 X에 “엘 멘초(오세게라)는 미국으로 펜타닐 밀반입을 주도하는 핵심 인물로 멕시코와 미국 당국의 최우선 표적이었다”며 “트럼프 대통령이 미국과의 합동 작전을 성공적으로 수행한 멕시코군을 높이 평가하고 감사를 전했다”고 썼다. 로널드 존슨 멕시코 주재 미국대사도 X에 셰인바움 대통령에게 대한 감사 메시지를 올리고 “이번 작전에서 멕시코 측이 보여준 용기와 신속한 조치에 경의를 표한다.” 멕시코군은 “멕시코 국민의 자랑”이라며 “미국은 멕시코와 굳건히 함께할 것”이라고 했다. 다만 멕시코군 측 인명 피해도 적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멕시코 정부에 따르면 군사 작전과 직후 벌어진 소요 사태 등으로 62명이 사망했는데 이 중 최소 25명이 군 병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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