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전된 도시는 일종의 정신병동 아닐까… 높은 규범이 병 만든다

박진성 기자 2026. 2. 25. 0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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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쾌적한 사회…’ 저자 구마시로 도루
“길 깨끗하지만 더 예민… ADHD 급증”
日 정신과 의사의 현대사회 진단 화제

도시는 계속 발전한다. 시민들은 교통 신호를 지킨다. 길에 함부로 쓰레기를 버리는 사람도 적어졌다. 하지만 사람들은 예민해지고 병들어 간다. 왜일까.

일본 서점인들이 한 해 최고의 인문서를 선정하는 ‘기노쿠니야 인문대상’(2021) 수상작 ‘쾌적한 사회의 불쾌함’(생각지도)을 쓴 일본 정신과 전문의 구마시로 도루는 “이 사회에 규범이 많아지고 엄격해졌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규범이 사회를 발전시켰지만 정신질환·저출생 등 다양한 부작용을 만들었다고 본다. 정신의학 학술대회 참석차 한국을 찾은 그를 지난 6일 서울 건국대병원에서 만났다.

세상은 쾌적한데 왜 이렇게 아픈 사람이 많을까. 최근 서울 건국대병원에서 만난 일본 정신과 전문의 구마시로 도루는 현대인을 억누르는 ‘불쾌함’의 원인으로 규범을 꼽았다./고운호 기자

-규범이 많아졌다는 게 무슨 뜻인가.

“살아가며 지켜야 할 것이 많다. 50년 전과 비교해 사람들은 예의 바르고 비폭력적으로 변했다. 식당 종업원의 서비스 질도 높아졌다. 동시에 사람들은 예의 바르고, 비폭력적이며, 질 높은 인간이 될 것을 은연중에 요구받게 된다. 점점 기준이 높아지는 것이다. 일본뿐만 아니라 한국도 마찬가지다. 급격한 산업화와 근대화를 맞은 동아시아적 특징이다. 도시 공간만 봐도 느낄 수 있다.”

-예를 들면?

“사람은 공간의 영향을 받아 행동한다. 정신병원마다 설계가 비슷한 이유다. 그런데 도쿄 도심도 정신과 병동처럼 기능한다. 시부야 스크램블 교차로, 아침의 신주쿠역 등 높은 인구 밀도가 규범에 맞게 일사분란하지 않으면 교차로와 역이 멈춘다. 쾌적한 이 도시를 유지하기 위해 모두 스스로 의식하지 못하는 자기 규제를 하고 있다.”

-높아진 규범은 어떤 문제를 만드나.

“규범에 대한 압력으로 스트레스와 불안이 커진다. 더 많은 것을 질병으로 취급하게 된다. 과거엔 조금 특이한 사람이었을 이들이 ADHD 환자 등으로 분류된다. 높아진 기준에 맞지 않는 이들은 교정 대상이 되는 것이다. 어린아이라고 예외도 없다. 규범을 지키지 못하고 울거나 폐를 끼치면 배척당한다.”

-아이들의 삶도 다른가.

“과거엔 백화점에서 아이를 찾는 방송이 나왔지만 이젠 듣기 어렵다. 마트에서 과자를 사달라며 울던 소리도 없다. 뛰고 소리 질러야 하는 아이들이 얌전해야만 하는 것이다. 반대로 미성년자의 범죄는 줄고 있지만 학대·학교 폭력 신고 건수는 두려울 만큼 가파르게 늘고 있다. ‘질서에 적합한 인간’으로 만들어지는 과정이다.”

쾌적한 사회의 불쾌함/생각지도

-일에도 영향이 있나.

“과거 일터엔 성차별과 폭력도 있었지만 그런 점들이 오늘날 개선됐다. 대신 필요한 능력이 많아졌다. 예전처럼 야근을 못 시키는 대신 집중된 생산성을 보여줘야 한다. 서비스업 요구 역량도 친절·언어 능력 등 다양하다. 이젠 묵묵히 일하던 공장조차 소통 능력이 중요해졌다. 일터 사람들의 수준이 높아질수록 맞추지 못하는 사람이 생기기 마련이다. 직장에 적응하지 못하는 사람은 더욱 두드러지게 됐다. 건강의 의미도 달라졌다.”

-건강의 의미가 어떻게 됐나.

“이제 건강은 의무다. 개인의 삶의 질과 자유를 위해서가 아니라 자본 증대와 조직을 위해서다. 구글·애플 등의 건강 관리 기기와 앱에 갇혀 산다. 어떤 측면에서는 정신 건강을 조금 희생해 신체 건강을 올리는 것으로도 볼 수 있다. 1900년대와 달리 건강을 염려하지 않고 살다 죽기란 어려워졌다. 2019년 일본 금융청이 은퇴한 65세 부부가 30년간 무직으로 살려면 연금 외 2000만엔이 필요하다는 보고서를 발표했을 때 전 사회적으로 불안에 휩싸였다."

-저출생도 이와 관련이 있다고?

“일본과 한국 같은 동아시아적 저출생에 해당되는 이야기다. 우리는 도시의 안전함·쾌적함과 인간의 불쾌함·저출생 등을 교환했다. 분명 육아 환경은 꾸준히 좋아지고 있다. 하지만 아이를 낳기 위한 출발선이 점점 멀어지고 있다. 젊은이들은 자녀 양육의 기쁨은 체험해 본 적 없지만 양육의 고통은 점점 눈에 많이 보이게 된다."

-출발선이 멀어진다는 뜻은?

“규범이 엄격해지다 보니 아이를 키우기 위해 이른바 ‘필수’로 해야 하는 것들이 너무 많다. 한국은 비싼 영어 유치원도 가야 한다. 일본은 한국보다는 온건한 편이지만 도쿄를 비롯한 수도권의 교육열은 마찬가지다. 도쿄도 어린이집 대기 문제가 심각하다. 육아의 각종 비즈니스 영역이 생겼고 비용은 점점 높아진다. 아이를 키우기 위해 필요한 것들을 충족하려니 도시로 몰린다. 집값도 오른다. 일본 속담에 “부모가 없어도 자식은 자란다”라는 말이 있었지만 이젠 그럴 수 없게 됐다. 나의 풍요와 아이 양육을 맞교환하는 갈등에 빠졌다.”

-어떻게 해야 하나.

“개인의 차원에서는 높은 규범을 조금 내려놓고 사는 것이 도움이 될 수 있다. 하지만 사회 전체적으로 규범을 되돌려 놓는 건 불가능하다. 규범을 충족하기 위한 비용이라도 낮춰야 한다. 프랑스 사회학자 부르디외도 일찍이 부르주아 계급으로 진입하고 싶은 사람은 아이를 줄인다는 현상을 포착했다. 아이를 제물로 풍요를 얻은 것이다. 서울, 도쿄 같은 대도시 일극 집중을 해소해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다른 지역에서도 낮은 집값과 비용으로 아이를 키울 환경이 갖춰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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