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사일언] 내가 선택한다는 착각

베튤 준불·배우 겸 작가 2026. 2. 25. 0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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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달 전에 장을 보다가 동네에 새로 문을 연 공동 구매 전문점을 알게 되었다. 오픈 카톡방에 공동 구매 품목이 올라오면 예약 주문을 하고 해당 입고일에 가게에서 픽업을 하는 시스템으로 운영되는 곳이었다. 식품부터 화장품, 생활용품은 물론 육아용품이나 반려동물 용품까지 다양한 품목이 하루에도 수십 개씩 업로드된다.

좋아하는 반찬거리나 필요한 물건이 올라오면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다. 일이 바빠 집안일을 틈틈이 쪼개서 하던 어느 날, 정신을 차려 보니 냉동실에 공구한 반찬거리가 가득했다. 문득 내가 먹을 음식조차 내가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지난 연말부터 함께 작업한 배우 언니는 시간이 날 때마다 배달 일을 한다고 했다. 이런저런 궁금증을 묻다가 한 동료가 “사람들은 뭐 많이 시켜 먹어?”라는 원초적인 질문을 했다. 언니는 고민 없이 답했다. “그날 할인 쿠폰을 뿌린 가게에서 많이 시켜 먹어.” 스스로 먹을 음식조차 스스로 선택하지 못하는 인류가 나뿐만은 아니었다.

작은 선택들이 모여 삶이 된다. 그런데 크고 작은 순간의 선택을 얼마나 내 스스로 하고 있는지 생각해보면 내 삶이 온전히 나의 것인지 의심스럽다. 예컨대 나는 카메라 기능이 이토록 좋은 비싼 휴대전화가 필요 없다. 휴대전화를 10년 만에 바꿔야 하는 피치 못할 상황이 생겨서 알아보다, 100만원을 훨씬 웃도는 가격에 적잖이 놀랐다. 이 안에 내 삶을 실제로 윤택하게 해줄 기능이 얼마나 들어 있을지 알 수 없었지만, 별다른 선택지는 없었다.

결국 우리는 매일 무언가를 고른다고 생각하지만, 그 선택지들은 이미 누군가에 의해 정리되어 있다. 할인 쿠폰, 알고리즘, 유행 혹은 광고가 미리 걸러 낸 것들 사이에서 나는 스스로 선택한다고 착각할 뿐이다. 삶의 주인이라기보다 ‘소비자 1’의 역할에 충실하다고나 할까. 냉동실에 쌓인 찬거리들처럼 내 삶도 온전히 내 취향만은 아닌 것들로 채워지고 있는 것은 아닐까. 오늘도 무엇을 살지 고민하면서, 정작 무엇을 원했는지는 묻지 못한 채 하루를 넘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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