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없는 영웅의 귀환...‘국가 역사 정책’으로 확장해야

이나경 기자 2026. 2. 24. 2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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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문화재단, ‘한말 경기도 무명의병의 실태와 기억의 재구성’ 학술 심포지엄
연구 성과 등 ‘등재 학술지’ 게재 예정...지역 사료 명료·세부화 기준 마련 숙제
기록 소실에 극히 일부만 기억 지적...기존 산발적 의거 인식 재검토해야
교육·전시·콘텐츠 등 순환 구조 필요...전국 단위 연구 네트워크 구축 필수

경기지역 의병 전쟁에 참여한 12만 7천여 명의 존재가 실증 조사로 확인되며 ‘무명의병’을 독립운동사의 주체로 복원해야 한다는 논의가 본격화됐다.

경기문화재단은 24일 수원화성박물관에서 ‘한말 경기도 무명의병의 실태와 기억의 재구성’을 주제로 학술심포지엄을 열고 31개 시군 실태조사 성과를 공개했다.

이번 행사는 ‘경기도 무명의병 기억과 지원에 관한 조례’ 제정(2024년)을 계기로 추진된 연구 성과를 등재 학술지 게재 이전 단계에서 공개 검토하는 자리이자, 무명의병 기억 사업을 학문적으로 정리하는 첫 공식 공론장으로 마련됐다. 향후 교육 콘텐츠와 전시·창작 등으로 확장해 정책 영역으로 연결하기 위한 방향도 함께 논의됐다.

■ “무명의병은 잊힌 98%…시민이 또 다른 주체”

24일 오후 수원화성박물관에서 '한말 경기도 무명의병의 실태와 기억의 재구성'을 주제로 열린 경기도 무명의병 학술심포지엄에서 강진갑 무명의병포럼대표, 이준식 전 독립기념관장 등 참석자들이 파이팅을 외치고 있다. 문화공간 미쁨 제공


주제발표에 앞서 경기도·경기문화재단의 ‘경기도 한말 무명의병 실태조사 및 기념사업 중장기 계획’ 성과(2024~2025년)에 관한 경과보고가 이뤄졌다. 1895년부터 1910년까지 경기지역 의병 활동을 대상으로 문헌 50여 종을 교차 분석해 활동 사례 1천373건과 의병 인명 659명을 확인한 과정이 소개됐다. 성격이 다른 사료를 대조하고 다섯 차례의 자문을 거쳐 전투와 활동 근거를 확정한 연구 방식은 이후 발표된 전투 횟수와 참전 규모 산출의 학술적 토대를 제시했다. 사업을 수행한 (사)역사문화콘텐츠연구원은 이를 바탕으로 지난해 6월 ▲제1권 ‘콘텐츠 조사 활용 및 기념사업 중장기계획 수립’ ▲제2권 ‘한말 경기도 무명의병 실태조사’ 두 권의 보고서를 제출했다.

이어진 주제발표에서는 2024년 기념사업 중장기계획 수립을 이끈 강진갑 무명의병포럼 대표 및 실태조사 보고서를 바탕으로 한 연구자들의 경기 지역별 심화연구 발표로 진행됐다.

강진갑 대표는 “오늘 자리는 무명의병을 어떻게 기억하고 공유할지 방향을 논의하는 자리”라며 “청중이 아닌 또 다른 주체인 시민에게 연구의 경과를 전하는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그는 전국 의병 14만여 명 가운데 서훈자가 2천700여 명에 불과한 현실을 언급하며 “무명의병은 잊힌 98%의 역사”라고 강조했다. 이어 “경기도에서 출발한 무명의병 기억 운동이 3년 만에 지역을 넘어서 국회와 전국으로 확산된 배경은 시민과 학계에 지방자치단체와 경기일보를 중심으로 한 언론 등 ‘민(시민)+학(학술)+관(지방자치단체)+언(신문)’의 성공 사례로 특히 시민이 주체가 된 점이 의미가 남다르다”고 평가했다.

중장기 계획으로는 31개 시군 협력 조사 체계를 통한 전투지·참전 인물 DB 구축, 학술 총서 발간과 디지털 아카이브 조성, 교과 과정과 연계한 교육 프로그램 개발, 청소년 체험형 역사 콘텐츠 제작, 문화예술 창작 지원, 기념일 제정과 기념공간 조성 등이 제안됐다. 그는 “연구 성과가 교육과 전시, 콘텐츠로 순환하는 구조를 만들어야 공적 기억으로 자리 잡을 수 있다”며 민·학·관·언 협력 모델을 지속 가능한 기억 체계의 기반으로 제시했다.

■ 전투 783회·참전 12만명…의병 전쟁의 재인식

24일 오후 수원화성박물관에서 열린 ‘한말 경기도 무명의명의 실태와 기억의 재구성’을 주제로 한 학술심포지엄에서 청중들이 연구자의 발표에 집중하고 있다. 윤원규기자


심철기 한남대 학술연구교수는 실태조사 현황과 사료 검토를 통해 경기지역 의병 전투가 783회, 참전 인원이 12만 7천675명으로 확인됐다고 밝혔다. 일본군 ‘조선폭도토벌지’에 기록된 수치의 18배에 달하는 규모다.

심 교수는 일본군 토벌 기록과 지방 문헌, 독립운동 관련 데이터를 교차 분석해 중복 전투를 정리하고 전투지 좌표를 지도화하는 방식으로 수치를 산출했다. 이러한 연구 방법은 기존 일본군 기록 중심 통계가 1906년 이후 활동만을 포착하고 있다는 한계를 보완한 것으로, 의병 전쟁이 경기도 전역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전개된 조직적 전쟁이었다는 점을 보여준다.

이어진 권역별 연구에서는 실태조사를 중심으로 의병 전쟁의 전개 양상이 지역 조건에 따라 달랐다는 점이 구체적으로 제시됐다.

최보영 용인대 교수는 경기 북부지역에 관한 연구성과를 바탕으로 기존 3개 구분을 ▲포천·양주권 ▲개성권 ▲파주권 ▲강화권의 4개 권역으로 나눴다. 그는 경기 북부지역 의병 참여 인원이 연인원 6만 2천710명으로 당시 경기 인구의 9.3%에 달했다는 점을 제시하며 포천·양주권을 13도 창의군 결성의 거점으로 지목했다. 개성권은 정예 소수 부대가 일본군 통치 기관을 타격하는 방식으로, 파주권은 대규모 전투와 게릴라전이 혼합된 형태로 전개됐다. 강화권은 섬을 배후로 한 항쟁이 특징적으로 나타났다.

그는 또 보급과 정보 전달을 담당한 농민·보부상·승려와 여성·아동 등을 ‘무명의 조력자’로 규정하며 의병 전쟁을 전 계층이 참여한 총력전으로 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조성운 역사아카이브연구소장은 경기 동부지역 사례를 통해 생활권 단위 인적 네트워크와 은신·보급 체계가 결합된 의병 활동의 구조를 분석하며 ‘지역 공동체 기반의 집단적 항쟁’이라는 성격을 강조했다. 이계형 국민대 교수는 서·남부지역 의병이 해상과 내륙 거점을 연계해 활동한 전투 양상을 제시하며 “지리적 조건에 따라 형성된 거점형 항쟁 구조가 경기 의병 전쟁의 또 다른 특징”이라고 설명했다.

■ “공공 역사 관점에서 제도화 이뤄야”

‘한말 경기도 무명의명의 실태와 기억의 재구성’ 학술심포지엄에서 최보영 용인대 교수가 주제발표를 진행하고 있다. 이나경기자


이어지는 종합토론에서는 좌장 김도형 역사문화콘텐츠연구원 연구위원의 진행으로 앞선 다섯 연구자의 주제발표에 관한 연구자간 상호토론 및 청중과 함께하는 종합토론이 이어졌다.

이준식 전 독립기념관장은 단종을 주인공으로 한 영화 ‘왕과 사는 남자’의 흥행을 사례로 무명의병 연구를 ‘공공 역사’와 정책 영역으로 확장하기 위한 과제를 제시했다. 그는 “대중의 해석까지 아우르는 것이 공공 역사”라며 “무명의병 기억이 시민 참여형 역사 서술로 이어져야 한다”고 말했다.

특히 경기도 사례를 ‘지역에서 시작된 기억의 국가화 가능성’으로 평가하면서도 “국가 차원의 기념 공간 조성 등 구체적 정책 모델로 발전시키기 위한 추가 논의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김채운 강원대 국학연구소 연구원은 전투 단위 설정 기준의 정교화를, 김항기 독립기념관 연구위원은 군·면 단위 미시사 연구와 서훈 기준 재검토 필요성을 제기했다. 조원기 여주박물관 학예연구사는 전투지 탐방로와 시민 해설사 양성 등 체감형 역사 콘텐츠 구축을 제안했다.

이날 김호동 광복회 경기도지부장은 축사를 통해 “기록되지 않은 희생이 대한민국의 뿌리”라며 “무명의병 연구는 우리 역사의 빈 공간을 채우는 작업”이라고 말했다.

한편 이번 심포지엄에서 공개된 연구 결과들은 올 하반기 등재 학술지에 게재될 예정이다. ‘경기도 무명의병 연구 성과’의 학술화가 본격적으로 이뤄지는 셈이다.

이나경 기자 greennforest21@kyeong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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