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왕이 된 박지훈, 600만의 선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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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먼센스] 영화 <왕과 사는 남자>(이하 <왕사남>)가 베일을 벗으며 그룹 '워너원' 출신 배우 박지훈이 그가 지닌 연기 스펙트럼이 어디까지 넓어질 수 있는지 증명했다. <왕사남>은 강물에 버려진 단종의 시신을 영월호장 엄흥도가 수습했다는 역사서의 짤막한 기록에서 출발한 작품으로, 폐위된 단종 이홍위(박지훈 분)가 강원도 영월의 유배지로 떠나 마을 촌장 엄흥도(유해진 분)의 인간적인 보살핌을 받으며 인생의 마지막 시기를 보내는 이야기를 그린다.
극에서 박지훈은 어린 나이에 감당하기 힘든 시련을 겪고 삶의 의지를 잃은 이홍위가 백성이자 이웃인 마을 사람들과 교감하며 굳건한 의지를 찾아가는 과정을 뚝심 있게 그린다. 그 결과 <왕사남>은 개봉 20일 만에 600만 관객을 넘겼다. 이는 2012년 1232만 관객을 동원한 영화 <광해, 왕이 된 남자>와 같은 속도로 600만 관객을 달성한 것으로, <범죄도시4>(2024) 이후로 2년 만에 1000만 관객을 돌파하는 영화가 나올 수 있을지 기대감이 커지고 있다.

박지훈은 심도 있는 연기로 흥행을 견인했다. 영화의 짜임새가 엉성하다는 언론과 평단의 호불호에도 불구하고 그는 극 후반부 휘몰아치는 감정을 밀도 높은 연기로 표현하며 관객을 이끌고 간다. 관객 후기에는 "박지훈의 눈빛이 서사"라는 말이 심심치 않게 보이며, 영화를 보는 내내 그가 아이돌 출신이라는 꼬리표는 보이지 않는다.
흥행과 함께 <왕사남>은 '온라인 성지순례' 바이럴과 함께 하나의 트렌드를 형성하고 있다. <왕사남> 속 인물의 묘역을 방문해 리뷰를 남기는 것. 관객들은 단종의 무덤과 세조의 왕릉을 찾는가 하면 지도 앱과 플랫폼을 통해 세조와 한명회의 무덤을 찾아가 감정을 쏟아낸다. 한국 영화계에 오랜만에 기분 좋은 흥행세가 이어지는 가운데, <왕사남>의 주역 박지훈을 만났다. .

장항준 감독에게 제안을 받고 고민했다고 들었다.
단종을 연기하는 자체가 죄송스럽고 마음이 무거웠다. 나는 내 연기에 대해 의심이 많은 편이다. 때문에 스크린에 나의 감정을 고스란히 담아낼 수 있을지 걱정됐다. 유해진 선배님과 함께 하는 장면이 많은데, 선배님이 주는 에너지와 동등한 시너지를 낼 수 있을지 고민됐다.
그러다 어떻게 출연을 결심했나?
부담감에 시달리던 중 감독님과 네 번째 미팅을 가졌다. 그때 감독님이 "지훈아, 단종은 너여야만 해"라고 얘기해 주셨다. 그 말을 듣고 집에 가면서 창밖을 보는데 영화 한 편이 끝난 것처럼 감독님의 말이 맴돌았다. "내가 해볼 수 있지 않을까? 감독님을 믿고 도전해 봐도 되지 않을까? 내가 에너지를 못 낼 이유가 뭐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15kg 감량했다고.
내가 첫 번째로 이뤄야 할 목표였다. 대본 분석은 다음 문제였다. 피폐함을 넘어 피골이 상접한 느낌을 주고 싶어서 될 수 있는 데까지 빼보자고 생각했다. 모든 의지를 잃어 아무것도 하기 싫은 듯한 사람처럼 보이려고 두 달 반 동안 하루에 사과 한 쪽만 먹으면서 버텼다. 실제로 방 안에 틀어박혀서 대본만 보며 피폐하게 지냈다. 촬영 때는 입술이나 목소리도 버석하게 말라 있었으면 해서 물도 최대한 마시지 않았다.

극에서 먹는 장면이 꽤 나온다.
당시 몸이 이미 한계여서 카메라 앞에서 음식을 삼키는 게 쉽지 않았다. 먹으면 속이 울렁거렸고 자꾸 게워냈다. 하루는 다슬기국을 먹는 장면을 찍는데 몸에 염분이 들어오니까 기분이 좋아지더라. 정말 행복했다.(웃음) 촬영 중이 아니었다면 국에 고봉밥을 먹었을 것이다.
박지훈의 단종은 기존의 사극과 다른 모습이다.
대본을 읽으며 감독님이 나약하지 않은 단종을 그리고 싶다는 것을 느꼈다. 단종이 비굴하지 않고, 비극처럼 극이 끝나지 않게 글을 쓴 게 보여서 놀랐다. 또 유배지의 마을 사람들과 친분을 쌓으며, 점점 범의 눈이 되어가는 단종을 보며 "그래, 이분은 역시 왕이었다"라고 생각했다. 정통성을 지닌 단종이 왕위를 이었다면 역사가 바뀌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했다.
그래서 목소리 톤에 많은 신경을 썼다고 들었다.
내가 단종이라면 금성대군(이준혁 분)에게 서찰을 보내며 나로 인해 사랑하는 사람을 잃고 싶지 않다는 걸 느꼈을 것 같다. 또 태산(김민 분)이 누워 있는 모습을 보는 순간이 싫었을 것 같다. 나로 인해 사람을 잃어가는 모습을 마주했을 때 어떻게 호통을 쳤을지 신경 썼다. 여러 번 다른 형태로 촬영했다. 어린애처럼 소리를 지른다든지 굵직한 발성으로 내보는 방법도 시도했다.

첫 촬영이 한명회(유지태 분)와 마주하는 장면이었다고.
단종이 가진 두려움과 긴장이 고스란히 드러나야 하는 장면이었다. 선배님이 주는 에너지가 무서울 정도로 강렬했다. 실제로 감독님께 무서워서 한명회를 못 보겠다고 했더니, 감독님이 "편한 대로, 마음 가는 대로 해"라고 하셨다. 그 말을 듣고 촬영에 대한 긴장감을 내려놓았다. 목소리나 근육이 떨리는 건 의도가 아니라 정말 무서움을 느껴서 나온 것이다. 체중이 감량되어 있는 상태라 근육이 떨리는 게 더 잘 보인 것 같다. 나도 배우로서 하나를 더 배우는 시간이었다.
극에서 금성대군이 단종의 가슴에 불을 지피는 캐릭터로 역할한다.
단종과 금성대군의 유배지가 달라서 촬영이 한 번도 겹치지 않았다. 만나는 장면은 없었지만 하나의 목표를 향해 달려간다는 에너지가 잘 맞았다고 생각한다. VIP 시사회 때 선배님께 인사를 드릴 수 있어서 좋았다.
특히 눈빛 연기가 인상적이다. 눈물 맺힌 눈이 극 후반부의 감정을 극대화했다는 평이다.
사실 특별히 신경 쓴 건 없고 인물에 몰입하니 자연스럽게 표현됐던 것 같다. 대본을 보면서 감정을 디테일하게 잡아갔는데, 단종의 슬픔 안에는 깊은 고독함이 담겨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가족도 없이 홀로 유배를 떠나는 마음, 세상과 단절돼 낭떠러지에 서 있는 듯한 무기력한 슬픔을 표현하려고 했다.

단종은 극에서 무기력한 상태에서 분노, 희망, 슬픔을 겪는다. 엄흥도 역의 유해진이 옆에서 감정을 이끌어줬다. 현장에서 관계는 어땠나?
영화 속 관계처럼 선배님과 관계가 자연스럽게 쌓였다. 내가 일부러 다가가거나 관계를 만들려고 애쓴 게 아니라 강가를 걸으면서 산책도 하고 촬영장 오르내리면서 선배님들이랑 이야기 나누다 보니까 자연스럽게 감정이 쌓였다. 마지막에는 결국 에너지가 터져 나온 것 같다.
유해진은 박지훈의 에너지에 놀랐다고 하더라.
나 역시 선배님의 에너지에 매 순간 놀랐다. 나는 촬영 내내 선배님이 주신 에너지를 받아서 잘 돌려드려야겠다는 생각밖에 없었다. 선배님이 "연기는 기브 앤 테이크(주고받는 거)"라고 하셔서 그 부분을 잘 지키려고 했다. 그 덕에 후반부에 에너지가 폭발하는 장면이 나온 것 같다. 다행스럽고 감사한 마음이다.
단종과 엄흥도가 마지막으로 대화를 나누는 장면이 감정의 클라이맥스다. 유해진 또한 인터뷰 때 해당 장면을 촬영한 당시를 떠올리며 눈시울을 붉혔다.
현장이 엄청 고요했다. 그날따라 선배님이 나를 쳐다보지 않았는데, 속으로 "나를 보면 감정이 깨지시겠다"라는 생각이 들어서 방해되지 않도록 최대한 멀리서 기다렸다. 리허설이 시작되고 선배님이 방문을 열면서 들어오시는데 울음이 터졌다. 오랜만에 보는 아버지의 모습 같아서 가슴이 아플 정도로 눈물을 흘렸다. 선배님과 이런 호흡을 나눌 수 있다는 게 감격스러워 감정이 북받치기도 했다. 배우로서 최고의 순간이었다.

장항준 감독과 호흡은 어땠나?
처음엔 현장에서 어떤 분일지 궁금했는데 방송에서 본 것과 다른 결이었다. 배우의 표현을 존중했다. 디렉션을 주실 때도 왜 그런지 납득가게 설명했고, 현장에서 말씀이 많은 편은 아니라 카리스마도 있었다. 개인적으로 "거장 감독님이구나"라고 생각했다.
대중에겐 2017년 Mnet 서바이벌 오디션 <프로듀스 101> 시즌2의 기억이 선명하다. 하지만 데뷔는 2006년 아역 배우로 했다.
어렸을 때 "나도 TV에 나오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서 연기학원에 다녔다. 학원을 졸업하고 아역 배우로 활동하는데 연기가 재밌었다. 주변에 카메라 울렁증이 있는 친구들도 있었는데 나는 다행히 카메라와 친했다.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 새로운 호흡을 배우며 작품을 찍는 게 즐거웠다.
그렇게 연기에 흠뻑 빠져 지냈나?
중학교 때까지는 연기에 미쳐 있었다. 국립전통예술중학교에서 연기를 배우며 같은 과 친구들이랑 연극 작품을 올리기도 했다. 우연한 계기로 팝핀에 빠지면서 춤을 시작했는데, 춤이랑 연기를 같이 할 수 있는 아이돌이 되고 싶어서 고등학생 때부터 연습생 생활을 했다.

<프로듀스 101> 출연 당시를 생각하면 타고난 아이돌이다.
본능적으로 카메라에 반응한다.(웃음) 카메라 앞에서 순간순간 나도 몰랐던 끼가 나온다. '워너원'으로 활동할 때 MBTI가 ENFP였는데, 지금은 INFP다. 당시엔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걸 좋아했는데 솔로 활동을 하다 보니 혼자 있는 시간의 소중함을 알게 됐다. 자연스럽게 성격이 변했다.
가수 박지훈의 모습을 기다리는 팬들도 많다.
중심은 연기지만 앨범을 내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아이돌 박지훈의 팬분들이 있으니까 가수로도 활동하고 싶다. '워너원' 멤버들과 모여 리얼리티 예능을 찍을 것 같다. 기다려준 팬들에게 작은 선물 같은 시간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 비록 군대나 중국에 있는 멤버들은 참석하지 못했지만 가능한 멤버들이 최대한 모였다. 민현이 형이랑 성운이 형이 중심이 되어 노력해 줘서 고맙다.
<약한영웅>의 연시은이나 <왕사남>의 이홍위는 침착한 캐릭터다. 또래 배우들처럼 밝은 캐릭터에 대한 갈증은 없나?
생각해 보니 캐릭터가 비슷하다. 한번은 "얘는 되게 슬프고 혼자 동떨어져 있는 캐릭터가 잘 어울린다"는 글을 봤는데, 그때 "내가 진짜 이런 캐릭터만 잘 어울릴까?"라는 궁금증이 생기더라. 앞으로 더 다양한 역할을 경험해 보고 싶다.
박지훈에게 <왕사남>은 어떤 작품인가?
훌륭한 선배님들로부터 많이 얻어가는 작품. 그 이상의 값어치는 없다고 생각한다. 흥행 여부를 떠나서 이 작품을 하면서 사랑하는 사람들을 얻어서 만족한다.
김지은 기자 a051903@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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