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0일 관세는 가교일뿐"…트럼프, 진짜 칼날 '301조'로 통상 압박 재점화
USTR, 디지털·농산물 301조 조사 예고…'조사 착수'만으로도 협상 압박

(세종=뉴스1) 김승준 기자 = 미 대법원의 상호관세 위법 판결로 관세 정책에 급제동이 걸린 미국 트럼프 행정부가 24일(한국시간) 오후 2시를 기해 무역법 122조에 따른 '150일 한시적 글로벌 관세 10%' 체제에 전격 돌입했다.
이번 조치는 트럼프 행정부가 향후 본격적인 관세 조치로 예고한 무역법 301조 조사를 위한 '시간 벌기용 가교' 성격이 짙다.
301조는 관세 외에도 수입 제한 등 광범위한 보복 수단을 포함하는 데다, 조사 착수 자체만으로도 상대국의 양보를 압박할 수 있는 강력한 협상 카드로 평가된다. 이에 따라 실제 관세 부과 여부와 무관하게 글로벌 교역 불확실성은 한층 확대될 전망이다.
위법 판결 정면돌파…'150일 가교' 뒤에 숨긴 301조 카드
미국은 국제비상경제권한법(IEEPA)에 근거한 상호관세가 위법이라는 판결이 나오자, 무역법 122조에 따른 글로벌 관세 부과로 방향을 틀었다.
무역법 122조는 무역수지 불균형 등 긴급 상황에 대응하기 위한 한시적 조항으로, 관세 조치는 150일까지만 유지할 수 있고 이후 연장하려면 의회의 동의를 받아야 한다. 이 때문에 122조는 구조적 관세 체계라기보다 301조 등 후속 조치를 위한 임시적·전환적 수단이라는 해석이 지배적이다.
실제 스콧 베선트 미 재무장관은 지난 22일(현지시간) CNN 인터뷰에서 "무역법 122조는 영구적 조치라기보다는 일종의 가교"라며 "무역법 301조 등에 따른 조사가 완료되면 더는 122조가 필요하지 않게 될 수 있다"고 밝혔다.
이는 트럼프 행정부가 150일의 유예 기간 동안 보다 지속 가능한 관세 부과 근거를 마련하겠다는 구상으로 읽힌다.
그 대안으로 거론되는 것이 무역법 301조다. 301조는 외국의 조치가 부당·불합리하거나 차별적이라고 미국무역대표부(USTR)가 판단할 경우, 대통령이 관세 인상, 양허 철회, 수입 제한 등 광범위한 대응 조치를 취할 수 있도록 한 통상법 조항이다.
관세 외에도 다양한 형태의 제재가 가능해 재량 범위가 넓고, 세계무역기구(WTO) 분쟁 절차와 병행하거나 이를 우회하는 수단으로 활용돼 왔다.

조사 착수만으로도 협상 압박…'속도전' 가능성도 변수
트럼프 1기 행정부는 301조를 적극적으로 운용했다. 오바마 행정부 8년간 3건에 그쳤던 301조 조사는 1기 트럼프 행정부에서 6차례로 늘었다. 중국의 지식재산권·기술이전 문제, 유럽연합(EU)의 민항기 보조금, 프랑스 디지털서비스세(DST), 10개국 디지털세, 베트남 환율 및 목재 문제 등이 조사 대상에 올랐다.
과거 사례를 보면 301조 조사는 개시부터 대통령 보고, 관세 부과까지 통상 6개월에서 1년 이상이 소요됐다. 중국 대상 301조 조사의 경우 개시 후 200일을 넘겨 대통령에게 보고됐고, 실제 관세 부과까지는 300일 이상 걸렸다. 프랑스 디지털세와 EU 항공기 보조금 사례 역시 조사 개시 후 수개월이 지나서야 후속 조치가 이뤄졌다. 10개국 디지털세 조사도 최종 관세 결정까지 약 1년이 걸렸다.
이 같은 전례를 고려하면 122조에 따른 150일 한시 관세가 유지되는 기간 안에 301조 조사와 후속 조치를 모두 마무리하기는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는 전망이 우세하다. 특히 301조는 이해관계자 의견 수렴, 공청회, 보고서 작성 등 절차적 요건을 거쳐야 해 물리적 시간이 필요하다.
다만 실제 관세 부과까지 시간이 걸리더라도, 301조는 조사 개시 자체만으로도 상당한 통상 압박 효과를 낼 수 있다는 점에서 단순히 '기간 문제'로만 보기는 어렵다는 분석도 나온다.
트럼프 2기 행정부가 관세 관련 행정 조치 속도를 1기 때보다 눈에 띄게 앞당기고 있는 점도 주목해야 할 부분이다. 국가 안보 위협 여부를 판단해 조치를 취하는 무역확장법 232조의 경우, 1기 행정부에서는 철강·알루미늄 조사에 약 240일, 자동차·부품 조사에 약 270일이 소요됐다. 반면 2기 행정부에서는 구리 대상 232조 조사가 140여 일 만에 종료되고 25% 관세 부과까지 이어지는 등 집행 속도가 단축됐다.
232조와 301조는 법적 성격과 절차가 다르지만, 행정부가 관세 정책을 신속히 추진하려는 기조가 확인된 만큼 301조 조사 역시 과거보다 속도가 빨라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관측이 나온다.
디지털·의약품·쌀 전방위 정조준…한국 통상 리스크 부각
301조 조사가 실제 관세 부과 여부와 무관하게 조사 착수 자체만으로도 협상 압박 수단이 될 것이란 관측은 과거 사례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현재 중국에 대한 301조 관세만 유지되고 있고, EU 항공기 보조금, 디지털세, 베트남 환율·목재 문제 등은 양자·다자 협의 과정에서 일정 부분 합의에 이르며 관세가 전면 발효되지 않거나 유예된 바 있다. 조사 개시와 관세 예고만으로도 상당한 통상 압박 효과를 냈다는 평가가 적지 않다.
향후 조사 대상 역시 주목된다. USTR은 301조 조사를 통해 주요 무역국의 의약품 가격 책정 관행, 미국 기술 기업 및 디지털 상품·서비스에 대한 차별, 디지털 서비스세, 쌀 및 기타 농산물 무역 관행 등을 다룰 것으로 예상된다고 밝혔다.
특히 디지털·의약품·농산물 분야는 한국에도 민감한 사안으로, 통상 리스크가 현실화할 가능성에 대한 경계감이 커지고 있다.
송영관 한국개발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트럼프 1기 행정부에서 301조 조사는 활용까지 1년가량 걸린 사례들도 있으나 최근 움직임을 보면 조사 속도가 빨라질 가능성을 무시할 수 없다"며 "연말 예정된 미국 중간선거 전에 구체적 조치가 나오기에는 시간상 제약이 있을 수 있으나, 조사 착수만으로도 충분한 압박 수단이 될 수 있어 통상 환경 불확실성은 장기간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seungjun241@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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