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간안내]맹자의 눈으로 건너는 ‘여순의 밤’
‘아픈 여자들’ 통해 국가폭력 후유증 조명
유족 채록 경험 녹여낸 세대 간 트라우마 기록

1948년 여순사건의 상처를 문학으로 기록해 온 정미경 작가가 두 번째 소설집 '맹자야 제발 덕분에(문학들)'를 펴냈다.
이번 작품은 지난 2022년 첫 소설집 '공마당'으로 제3회 부마항쟁문학상을 수상한 이후 3년 만의 신작이다.
정 작가는 순천대학교 10·19여순연구소에서 5년째 유족들의 증언을 채록·정리해 왔다. 직·간접적으로 만난 유족만 600여 명에 이른다. 그는 첫 소설집을 낸 이후 "피해자와 후손들의 고통을 세상에 알려야 한다는 소명 의식에 사로잡혀 한동안 소설의 문법을 외면했다"고 고백한다. "유족분들이 한 분 두 분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접하며 빚을 진 듯한 기분에 사로잡혔다"는 '작가의 말'은 이번 소설집이 단순한 창작이 아니라 빚 갚음의 기록임을 드러낸다.

이번 작품집에서 두드러지는 인물군은 '아픈 여자들'이다. 우울과 섭식장애, 가출 등 신경증적 증상을 겪는 이들은 개인적 결함이 아닌 국가폭력이 남긴 집단적 트라우마의 결과로 제시된다.
어머니의 반복적 가출과 그 돌봄을 떠안은 딸들의 서사는 과거의 사건이 세대를 넘어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를 통해 역사는 끝나지 않았고, 상처 또한 소멸되지 않는다는 메시지가 작품 전반을 관통한다.
표제작 '맹자야 제발 덕분에'는 특히 강렬하다. 군인과 산사람, 태극기와 인공기 사이에서 생존을 모색해야 했던 시대 속에서 어린 맹자는 공포에 굴복하지 않는다. 산사람들에 의해 인민위원장이 된 아버지가 국군에 의해 총살되고, 작은아버지마저 억울한 죽음을 맞은 뒤에도 맹자는 마을을 지키기 위해 뛰어다닌다.
가부장적 질서와 공포가 지배하는 상황에서도 울거나 숨지 않는다. 오히려 보고, 듣고, 기억하는 맹자는 단순한 피해자가 아니라 '증언자의 원형'에 가깝다. 이데올로기나 권력에 포획되지 않은 채 사건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려는 태도는 "과연 객관적 증언은 가능한가"라는 작가의 오랜 질문에 대한 하나의 응답처럼 읽힌다. 소설 말미 맹자가 '붓'을 물려받는 장면은 젠더와 이념을 넘어 역사를 기록할 미래의 화자를 상징한다.
'맹자야 제발 덕분에'는 국가폭력과 가족의 해체, 여성에게 전가된 돌봄의 역사를 응시하며 "너무나 개인적이어서 정치적일 수밖에 없는 이야기"를 오늘의 독자 앞에 내놓는다.
한편 전남 순천 출신인 정 작가는 2004년 지역 신춘문예로 등단했으며 국립순천대학교 국어교육과에서 문학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현재는 국립순천대학교 국어교육과 강사이자 10·19연구소 편집위원장, 광주전남작가회의·순천작가회의 회원으로 활동 중이다.
/윤태민 기자 ytm@namdo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