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프링클러 없는 은마아파트, 10대 사망···이사 닷새 만에 참변

백민정 기자 2026. 2. 24. 16: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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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프링클러 의무 설치 전 준공·소화설비 제각각
1명 숨지고 3명 부상···“경보 삐 소리 금방 꺼져”
“재개발만 보고 버티며 살아왔는데, 새삼 무섭다”
1명이 사망하고 3명이 다친 서울 강남구 대치동 은마아파트 화재현장에서 26일 현장 감식이 이뤄지고 있다. 이준헌 기자

서울 강남구 대치동 은마아파트에서 화재가 발생해 10대 여성이 숨지고 3명이 다쳤다. 1979년 준공된 은마아파트는 스프링클러 설치 의무 대상이 아니다. 불이 난 세대엔 스프링클러가 없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노후 아파트의 화재 안전 문제가 다시 도마에 올랐다.

24일 경찰과 소방당국에 따르면 이날 오전 6시18분쯤 은마아파트 25동 8층에서 불이 났다. 불이 난 세대에는 어머니와 두 딸이 머물고 있었다. 이들은 새 학기를 앞두고 이사온 지 닷새가 채 되지 않았던 것으로 전해졌다.

큰딸(17)은 끝내 빠져나오지 못하고 베란다 쪽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어머니와 막내딸은 얼굴 등에 화상을 입고 구조돼 생명에는 지장이 없는 것으로 전해졌다. 위층 주민 한 명도 연기를 마셔 병원에 옮겨졌다.

이날 오전 찾은 화재 현장은 사고의 여파가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불이 난 세대 내부는 까맣게 탔고, 인접한 세대와 위층까지 검은 그을음이 번지고 유리창이 깨져 있었다. 아파트 복도와 우체통 주변에는 대피 당시 사용된 것으로 보이는 물에 젖은 수건들이 널브러져 있었다. 검댕이 묻은 손으로 분주히 오가는 주민들의 모습도 눈에 띄었다.

26일 새벽 서울 강남구 대치동 은마아파트에서 발생한 화재 당시 모습. 주민 제공

화재 당시 아파트 주민 70여명은 화재 경보와 안내 방송을 듣고 스스로 대피했다. 같은 층에 사는 주민 이자윤씨(45)는 “주민들과 대피해 단지 앞 공터에서 기다리고 있는데, 소방대원에 의해 구조돼 나온 어머니가 ‘한 명을 못 구했다’고 울부짖는 걸 봤다”며 “남성분이 주저앉아 엄청 우셨는데, 아마 아버지인 것 같았다”고 당시 상황을 전했다. 단지 내 상가에서 공부방을 운영하는 황모씨(51)는 “아파트 익명 커뮤니티에 ‘사망한 학생이 어제까지 같이 공부를 하던 아이였다’는 글이 올라왔다”며 “학군 때문에 이사 온 가족이 많은데 너무 안타깝다”고 말했다.

불이 난 세대 위층에 사는 주민 박모씨(79)는 통장과 집문서 등 귀중품만 급하게 챙겨 나왔다. 박씨의 손에 검은 그을음이 가득하다. 백민정 기자

화재 피해가 컸던 이유로는 아파트의 노후화 및 화재 안전시설 미비가 지목된다. 은마아파트는 스프링클러 설치 의무화 이전에 지어져 세대별로 소화설비 설치가 제각각이다. 불이 난 세대에도 스프링클러는 없었다. 위층에 사는 박모씨(79)는 “(스프링클러가) 없으니 작동할 리도 없지 않냐”며 “물은 한 방울도 떨어지지 않았다”고 말했다.

현행 소방법상 아파트 전층 스프링클러 설치 의무는 2005년 이후 신축 건물부터 적용돼, 이 아파트 같은 노후 아파트는 안전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아래층 주민 김모씨(56)는 “재개발만 보고 버티며 살아왔는데, 스프링클러도 없다는 사실이 새삼 무섭다”며 “당장 이사갈 수도 없어 불안하다”고 말했다.

화재 경보가 제대로 울리지 않았다는 증언도 나왔다. 3층 주민 김서윤양(15)은 “삐 소리가 나긴 했지만 금방 꺼졌고, 방문을 닫은 상태에서는 거의 들리지 않았다”며 “다른 주민이 소화전을 계속 눌러준 덕에 그나마 (경보를) 들을 수 있었다”고 했다.

26일 새벽 서울 강남구 대치동 은마아파트에서 발생한 화재로 1명이 숨지고 3명이 다쳤다. 이준헌 기자

경찰과 소방당국은 발화 지점을 거실과 주방 인근으로 추정하고 있다. 현재까지 범죄 혐의점은 발견되지 않았다. 당국은 합동 감식을 통해 정확한 화재 원인과 피해 규모를 조사하고 있다.

백민정 기자 mj100@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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