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쿠바 의사 금지’ 압박에 반발한 이탈리아···왜 쿠바 의료진이 필수가 됐나

이탈리아 남부 칼라브리아가 쿠바 의료진 문제를 둘러싸고 미국과 각을 세우고 있다. 미국이 쿠바의 해외 의료 파견을 노동력 착취로 규정하자 중남미 등 국가들이 이에 호응하고 있지만, 칼라브리아는 만성적 의료 인력난을 이유로 “쿠바 의사는 필수”라는 입장이다.
24일(현지시간) 보도에 따르면 로베르토 오키우토 칼라브리아 주지사는 마이크 해머 주쿠바 미국 대사 대리와 면담 후 성명을 통해 “쿠바 의료진은 지역 병원과 응급실 운영에 필수적”이라고 밝혔다. 이는 쿠바 의료진 채용을 중단하라는 미국 정부의 기조에 사실상 반박한 것이다. 다만 오키우토 주지사는 올해 추가 채용 계획에 대해서는 “재검토하겠다”고 밝혔다.
쿠바는 의료와 교육을 무상 제공하는 체제를 기반으로 국가 차원의 의료진 양성을 해왔다. 최근까지 50만명에 육박하는 쿠바 의사가 160여개국에 다녀왔거나, 현재 의료활동을 하는 것으로 추산된다. 해외 의료 파견은 쿠바의 주요 외화 수입원 가운데 하나다. 파견 의료진이 받는 급여 비율이 수용국이 지급하는 비용의 30%에 못 미친다는 점에서 ‘의사 수출’이 국가 주도의 외화벌이 수단으로 전락했다는 비판이 제기돼 왔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는 쿠바 정부의 ‘주변국으로의 의료진 파견’을 노동력 착취라고 비판하면서 지난해 관련 프로그램과 연관된 것으로 추정되는 쿠바 관리들을 제재했다. 해머 대사 대리의 칼라브리아 방문 역시 쿠바의 수익성 높은 해외 의료 파견 사업을 축소하려는 미국의 외교적 노력의 일환으로 해석된다고 블룸버그통신은 보도했다. 칼라브리아는 2023년 쿠바와 협정을 체결해 약 500명의 의료진을 도입한 상태다.
이탈리아의 1인당 국내총생산(GDP)은 쿠바보다 4~5배 높은 수준이다. 그런데도 상대적으로 소득 수준이 낮고 국가 통제가 강한 쿠바의 의료 인력에 공공 의료를 의존하는 현실은 역설적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쿠바 의료진의 해외 파견은 그동안 중남미와 아프리카 국가들에 집중돼 왔다. 그러나 미국의 발표 이후 과테말라가 쿠바 의료진 파견 프로그램을 단계적으로 종료하기로 했으며, 다른 중남미 국가들 역시 양국 관계 설정을 조정하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이 같은 흐름 속에서 칼라브리아의 ‘저항’은 이탈리아 의료 시스템의 구조적 문제를 드러낸다는 분석이다.
이탈리아는 전통적으로 자국 의료 인력을 양성해 왔지만 낮은 급여와 열악한 근무 환경, 코로나19 대유행 기간의 ‘번아웃’ 여파가 겹치면서 의료 인력난이 구조화됐다. 2020년 기준 전국 응급의학 전문의 공석의 절반 가까이가 채워지지 못한 것으로 집계됐다. 2019년부터 2021년 사이 약 2만1000명의 의사와 1만7000명의 간호사가 주로 유럽과 중동 걸프 국가로 떠난 것으로 알려졌다. 더 높은 급여와 나은 근무 조건이 주요 요인으로 꼽힌다. 지난해 한 조사에서는 이탈리아 의료진의 40%가 해외 이주를 고려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프랑스·독일·벨기에 등은 높은 보수를 제공하고 있으며, 국경을 맞댄 스위스의 경우는 임금 수준이 두 배 이상 차이 나는 것으로 전해졌다.
오키우토 주지사는 앞서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알바니아 의사들에게도 접근했지만, 독일이 훨씬 더 많은 보수를 제시한다며 응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그는 칼라브리아는 이탈리아 내에서도 경제 여건이 취약한 지역으로 경쟁력 있는 급여와 근무 조건을 제시하기 어렵다는 점을 인정하면서 쿠바 의료진 의존도가 높을 수밖에 없는 구조라고 설명했다.
박은경 기자 yama@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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