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블러-맞춤 신발, 맞춤 인생

기호일보 2026. 2. 24. 1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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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의 인생을 살고 싶은가? SNS를 들여다보면 나를 뺀 다른 모든 사람들은 화려하게 즐기며, 행복한 삶을 사는 드라마의 주인공처럼 보인다.

신발 한 켤레만 바꿔 신으면 삶도 바뀔 수 있다니 얼마나 매혹적인가.

타인의 삶을 이해하는 것과 타인의 권리를 대신 행사하는 것은 다른 문제다.

처음에는 "다른 사람이 되어 보고 싶은 욕망"을 유쾌하게 건드리고, 이어 "타인의 무게를 이해하는 법"을 보여 주며 끝내 "그 삶에 개입할 권리까지 가질 수 있는가"라는 질문을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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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형 동국대 강사
타인의 인생을 살고 싶은가? SNS를 들여다보면 나를 뺀 다른 모든 사람들은 화려하게 즐기며, 행복한 삶을 사는 드라마의 주인공처럼 보인다. 여행지의 햇빛, 근사한 식탁, 환하게 웃는 얼굴들. 그런데 막상 내 삶을 돌아보면 반복되는 일상과 계산서, 해결되지 않은 문제들뿐이다. 어째서 세상은 늘 타인을 중심으로 흘러가는 것처럼 보일까! 이 질문은 자연스럽게 오늘 소개하는 영화 'The Cobbler', 구두수선공 이야기로 이어진다.

뉴욕의 낡은 구두 수선 가게를 지키는 맥스는 하루 종일 남의 신발을 고치지만 정작 자신의 삶은 제자리걸음인 인물이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오래된 재봉틀로 수선한 신발을 신는 순간 그 신발의 주인이 되는 기이한 능력을 얻게 된다. 타인의 신발을 신으면 타인의 얼굴과 신분, 환경을 그대로 살아낼 수 있다. 영화는 이 설정을 한동안 가볍고 유쾌하게 활용한다. 맥스는 부유한 고객이 되어 고급 레스토랑을 경험하고, 잘생긴 남자의 얼굴로 데이트를 시도하며, 평소 감히 넘볼 수 없던 세계를 잠시 맛본다. 판타지 코미디의 리듬은 빠르고 경쾌하다. "한 번쯤 다른 사람이 되어 보고 싶다"는 은밀한 욕망을 영화는 솔직하게 인정해 준다. 신발 한 켤레만 바꿔 신으면 삶도 바뀔 수 있다니 얼마나 매혹적인가.

하지만 이 유쾌함은 점차 깊은 성찰로 방향을 바꾼다. 맥스는 타인의 삶이 결코 겉보기처럼 단순하지 않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화려해 보이던 인물에게도 두려움과 외로움이 있고 거칠어 보이던 이웃에게도 사연이 있다. 신발의 닳은 모양처럼, 각자의 삶은 저마다의 무게를 지니고 있다. 영화는 이 지점에서 따뜻해진다. 타인의 신발을 신는 행위는 단순한 도피가 아니라 그 사람의 고통과 무게를 체감하는 공감의 통로가 된다.

그리고 후반부, 이야기는 미묘한 회색지대로 들어선다. 맥스는 범죄자의 신분을 이용해 그의 자금을 빼앗는다. 영화는 이를 공동체를 지키기 위한 선택처럼 배치한다. 게다가 후반에 드러나는 '증조할아버지 때부터 이어진 구두 갤러리'는 이 능력이 우연이 아니라 가문의 유산임을 암시한다. 마치 이 집안이 오래전부터 비공식적 균형자 역할을 해온 것처럼 말이다. 그러나 바로 그 지점에서 질문은 다시 날카로워진다. 타인의 삶을 이해하는 것과 타인의 권리를 대신 행사하는 것은 다른 문제다. 범죄자의 검은 돈이라 해도 개인이 사적으로 환수하는 행위는 법적 정의와는 거리가 있다. 영화는 로빈 후드식 서사로 정서적 납득을 유도하지만 엄밀한 윤리의 잣대 위에 올려두면 공감이 정의로 확장되는 순간 그것은 동시에 위험한 권력이 될 수도 있음을 시사한다.

영화 '코블러'는 완벽히 정교한 윤리 드라마는 아니다. 대신 따뜻한 우화에 가깝다. 처음에는 "다른 사람이 되어 보고 싶은 욕망"을 유쾌하게 건드리고, 이어 "타인의 무게를 이해하는 법"을 보여 주며 끝내 "그 삶에 개입할 권리까지 가질 수 있는가"라는 질문을 남긴다. 우리는 SNS 속 타인의 인생을 부러워한다. 그러나 막상 그 신발을 직접 신어 보면 그 안에는 우리가 알지 못했던 통증과 상처가 숨어 있을지도 모른다. 영화는 말한다. 타인의 신발을 잠시 신어 보는 일은 우리를 성장시킬 수 있다. 다만 그 신발로 어디까지 걸어갈 것인지는 또 다른 문제다. 결국 우리는 다시 자신의 신발로 돌아와야 한다. 화려하지 않아도, 완벽하지 않아도, 내 발의 보폭에 가장 잘 맞는 삶으로. 그곳에서 비로소 나만의 진짜 행보를 시작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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