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00회 넘게 이어질 거라고 상상도 못해”···30년 넘게 멈추지 않은 평화의 기도

박경은 기자 2026. 2. 24. 1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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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8년 5월 한국 주교로는 처음으로 사목 목적으로 평양을 방문한 최창무 주교(가운데)가 평양 장충성당에서 미사를 봉헌하고 있다. 천주교서울대교구 제공
지난 10일 서울 명동성당에서 열린 1500회 ‘민족의 화해와 일치를 위한 미사’ 에 참석한 정동영 통일부장관, 조반니 가스파리 주한 교황대사, 정순택 대주교, 최창무 대주교(앞줄 왼쪽에서 두번째부터) 등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천주교 서울대교구 제공

“1500회 넘게 이어질 것이라고는 상상하지 못했지요. 지금까지 끈기있게 이어가는 모습이 대견하고 고맙기도 하고 격세지감도 느낍니다. 31년전과 비교했을 때 오히려 국내외 사정은 역주행한 것 같아 안타깝지요.”

지난 20일 전화를 통해 전달된 노사제의 목소리는 나직하고 담담했다. 지난 31년 동안 세상은 롤러코스터를 탔다. 남북관계는 냉온탕을 반복했고 국제정세와 인류의 삶은 한 치 앞을 내다보기 힘든 격변의 소용돌이에 휩싸여 있다. 그런 중에도 이 땅의 평화를 구하는 기도는 중단되지 않고 이어졌다. 매주 화요일 오후 7시면 서울 명동성당에서 열리는 ‘민족의 화해와 일치를 위한 미사’다. 1995년 3월7일 김수환 추기경의 집전으로 시작된 이 미사는 지난 10일 1500회를 맞았다. 코로나 팬데믹 기간을 제외하고는 한차례도 멈추지 않았다. 올해 아흔을 맞은 최창무 대주교는 당시 천주교 서울대교구 초대 민족화해위원장을 맡아 4년간 이 미사의 초석을 다졌다.

“1995년은 광복과 분단 50년이 되던 해였습니다. 그 해 첫 미사 때 김수환 추기경님께서 50년이 지나도록 우리 현실이 그대로라는 점에 대해 안타까움과 역사적 책임감을 이야기하셨어요. 추기경님을 보좌하는 사회 담당 주교로서 분단의 현실을 어떻게 극복할지 고민했지요. 그렇게 시작된 것이 서울대교구 민족화해위원회(이하 민화위)였습니다.”

증오를 사랑으로, 불화를 화해로, 분단을 일치로 이끌자는 목표로 그해 3월1일 민족화해위원회가 출범했다. 일주일 뒤 첫 미사의 불꽃이 지펴졌고, 5개월 뒤인 8월15일 미사때부터는 서울 명동성당과 평양 장충성당에서 같은 기도문이 울려퍼지기 시작했다. “주님, 저를 당신의 도구로 써 주소서. 미움이 있는 곳에 사랑을, 다툼이 있는 곳에 용서를, 분열이 있는 곳에 일치를...”. 북한의 천주교 공식기구인 조선카톨릭협회와 프란치스코 성인의 ‘평화를 구하는 기도’를 같은 시간에 봉헌하기로 합의한데 따른 결실이었다. 1998년 5월 최 대주교는 한국 주교로는 처음으로 사목 목적으로 평양을 방문했다.

평화의 결실이 손에 잡힐듯한 순간도 있었지만 고통과 위기의 파도는 끊임없이 들이닥쳤다. “미사가 시작된 이듬해(1996년)였어요. 북한에서 동해안에 잠수함을 보낸 사건이 있었습니다. 마침 그때 언론인들과 함께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는데 다들 ‘저런 상대와 무슨 대화를 하느냐’고 부정적 의견 일색이었어요. 그렇지만 그럴수록 더 대화해야 했지요.”

교계에서는 한동안 ‘진짜 신자’ 논란도 이어졌다. 공산주의자들은 진짜 신자가 아니다, 가짜 신자들을 만나서 속으면 안된다는 반발과 질문들. 이에 대해 “그러면 당신은 진짜 신자입니까. 하느님을 찾고자 하는 사람의 마음을 우리가 예단할 수 있습니까?”하고 되묻던 최 대주교의 ‘현답’은 지금도 교계에서 회자되고 있다.

매주 미사에 참여하는 신자들은 평균적으로 150명 안팎이다. 20년 넘게 이 미사를 위해 반주를 해 온 신자도 있고 30년 동안 꾸준히 미사에 참여해 온 이들도 있다. 마지막 평양교구장이었던 홍용호 주교(1950년에 처형된 것으로 추정)의 증손자 이재득씨도 그 중 한명이다. 현재 민화위 부위원장을 맡고 있는 정수용 신부는 매번 미사가 끝난 뒤 북한이나 한반도 정세와 관련한 뉴스를 정리해 신자들에게 전한다. 정 신부는 “세상과 동떨어지지 않은, 우리가 발 딛고 사는 현실을 이해하고 구체적으로 기도하기 위해서”라고 설명한다. 그는 이어 “남북간 화해와 평화는 정권의 정책과 방향에 따라 엄청난 영향을 받으며 롤러코스터를 타왔지만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기도를 계속하는 것 밖에 없다”면서 “무관심이 고착화되고 혐오가 늘어난 현실적 어려움이 있지만 결국 한반도 화해와 평화는 더 많은 사람들이 참여하고 관심을 가질 때 가능하다”고 강조했다.

1500회 미사가 끝이 아니다. 설연휴인 지난 17일 화요일, 24일 화요일에도 민족의 화해와 일치를 위한 미사는 열렸고 앞으로도 매주 이어진다. 최 대주교는 “우리는 앞일을 모르지만 우리의 본분은 계속해야 한다”면서 “다른 길이 없어요. 무력으로는 사람의 마음을 못 얻습니다. 용서의 은혜를 구하며 내 빈 손을 상대에게 내미는 용기를 가졌으면 좋겠습니다”고 당부했다.

1995년 3월7일 김수환 추기경의 집전으로 열렸던 첫번째 ‘민족의 화해와 일치를 위한 미사’. 천주교서울대교구 제공
1996년 8월 서울 명동 가톨릭 회관에서 열린 민족화해위원회 현판식에서 최창무 주교(가운데)와 봉두완 민족화해학교 공동대표(왼쪽)가 현판을 가린 막을 치우며 웃고 있다. 천주교 서울대교구 제공

박경은 선임기자 king@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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