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식 직전 축제 통해 ‘음식의 감사함’ 가슴 깊이 새겨 비만 주사에 익숙한 세대는 ‘참는다’는 의미 알까 ?[정주영이 만난 ‘세상의 식탁’]

설 연휴 후 체중계에 올라서려면 용기가 필요하다. 명절 음식을 준비하면서 맛보고, 오랜만에 만난 이들과 술잔을 나누고, 가족의 권유를 거절하지 못한 결과는 늘 예상을 상회하기 때문이다. 이미 살이 포동하게 올랐는데도 얼굴이 반쪽이 됐다며 연휴 내내 쉴 새 없이 음식을 내어오시는 할머니의 사랑은 대개 칼로리와 함께 온다.
다이어트를 결심하며 고대 로마의 귀족을 떠올린다. 더 많이 먹기 위해 구토를 자처했던 그들과 배불리 먹고 뒤늦게 살을 빼겠다고 발버둥 치는 우리 사이에 본질적 차이가 있을까. 지구 반대편에선 오늘도 식량부족으로 아이들이 굶주리는데, 우리는 과식 후유증을 걱정한다. 식탐에 제어장치가 필요하다.
인류는 오랫동안 과잉과 절제 사이를 오가며 균형을 모색해왔다. 기독교의 사순절(Lent)은 그 대표적 사례다. 부활절을 앞둔 40일 동안 신자들은 육식을 멀리하며 욕망을 다루는 훈련을 했다. 흥미로운 점은 사순절 직전에 등장하는 축제들이다.
축제의 대명사로 꼽히는 브라질 리우의 ‘카니발(Carni Vale·고기여 안녕)’은 금욕의 긴 터널에 진입하기 전 벌이는 육식의 뜨거운 향연이다. 미국 뉴올리언스의 ‘마르디 그라(Mardi Gras·기름진 화요일)’에는 설탕과 버터를 쏟아부은 화려한 ‘킹케이크’를 나누고 흥겨운 재즈 퍼레이드를 즐긴다. 다가올 참회의 시간을 잊게 할 만큼 달콤하다. 영국과 북미에선 이날을 ‘팬케이크 데이’라 부르며 산더미 같은 팬케이크를 굽고, 폴란드에선 ‘뚱뚱한 목요일(Tłusty Czwartek)’이라 명명하며 튀긴 도넛 ‘폰츠키’를 한계치까지 섭취한다. 냉장 기술이 없던 시절 상하기 쉬운 유제품을 미리 소진하려던 고육지책이었겠지만, 절제를 앞두고 더 탐욕스러워지는 인간 심리가 고스란히 드러난다.
이슬람의 라마단도 결은 다르지 않다. 한 달간의 단식으로 인내와 감사를 익히는 이 엄격한 의식조차, 금기의 시간 전후로 펼쳐지는 축제에서는 억눌렸던 본능의 해방감을 한껏 극대화하며 분출된다.
왜일까? 인류는 왜 금식 전에 폭식하고 절제 전에 탐닉을 허락하는 걸까?
답은 의외로 간단하다. 부재를 통해 존재의 가치를 깨닫기 때문이다. 제한 없는 풍요는 감각을 무디게 만든다. 다이어트를 해본 사람들은 알 것이다. 며칠간의 절식 끝에 마주한 한 술의 밥이 얼마나 경이로운지 말이다. 물론 그 달콤함 때문에 다이어트를 포기하게 되지만. 사순절의 진짜 의미는 단순히 욕망을 참는 것이 아니라, 억제된 뒤에야 비로소 복원되는 ‘먹는다는 것의 감사함’을 되찾는 데 있다.

그런데 요즘은 그 방정식이 흔들리고 있다. 위고비, 마운자로 등과 같은 비만 치료제가 등장하면서 ‘참는다’는 행위 자체가 선택지에서 빠지고 있다. 수천 년간 인류가 종교와 철학으로 다뤄온 인내의 문제를 이제는 주사 한 방이 대신한다. 이건 분명 혁신이다. 하지만 의문이 남는다. 억제의 경험 없이 풍요만 누리는 세대에게, 사순절은 어떤 의미로 남을까. 참지 않아도 되는 시대에, 우리는 음식의 감사함을 어디서 배우게 될까.
남은 명절음식을 어떻게 처리할지 고민하며, 체중계 앞에 선 채로 오늘도 다짐한다. 다음엔 좀 적게 준비해야지, 그리고 좀 덜 먹어야지. 내년 설에도 똑같이 말할 걸 안다. 그래도 괜찮다. 음식 앞에서 인간이 얼마나 무력한지, 그리고 그 무력함이 얼마나 인간적인지를 증명하는 의식일 테니까.
서울대 웰니스융합센터 책임연구원
사순절은 유럽의 식문화를 뒤바꾼 결정적 계기였다. 탐욕을 상징하는 ‘뜨거운 피’의 육식은 금지됐지만, ‘차가운 피’를 가진 생선은 허용됐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강요된 식단은 현대 유럽인들에게 묘한 후유증을 남겼다. 억지로 먹었던 음식이라는 인식이 뿌리내리며 생선을 기피하거나 하등하게 여기는 문화가 형성됐다. 영어에서 ‘피시(fishy)’는 의심스럽거나 수상한 상황을 표현하고, “생선과 손님은 사흘이면 냄새가 난다”는 속담이 생긴 것도 이런 부정적 인식의 산물이다. 반면 프랑스에서는 “사순절의 생선처럼 찾아온다”는 표현도 있다. 절묘한 때에 나타난 구세주라는 긍정적인 뜻이다. 혐오와 환대 사이, 사순절의 생선은 여전히 유럽인의 무의식 속을 헤엄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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