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있는 이야기] 곰탕, 우직한 ‘농촌형 고기’에 시간·정성 더하다

관리자 2026. 2. 24.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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밸런스 게임을 해보자.

농촌형 고기는 다르다.

농촌형 고기는 질길 수밖에 없다.

곰탕은 단순히 오래 끓인 국물이 아니라 농촌형 고기의 조리 철학이 집약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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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있는 이야기] 곰탕
굵은 근섬유·촘촘한 콜라겐
오래 끓이면 육즙 가득 진국
단백질·철·아연 등 영양 풍부
쇠고기 풍미 담백하게 우러나
할머니 손맛 추억하며 ‘한그릇’
경기 성남시 분당구 판교동 ‘평양식당’의 곰탕은 6시간 동안 끓여 맛이 깊고 진하다.

밸런스 게임을 해보자. 스테이크와 곰탕 중에 어떤 음식이 더 좋은가. 내 선택은 단연 곰탕이다. 이유가 있다. 세계적인 요리과학자 해럴드 맥기는 고기를 두 갈래로 나눈다. 도시형 고기와 농촌형 고기. 이런 분류는 단순히 사육 방식의 차이를 넘어 동물을 바라보는 철학과 맛을 대하는 태도의 차이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도시형 고기는 오로지 고기를 먹기 위해 동물을 사육하는 체계에서 나온다. 잘 먹이고 활동을 줄이고, 어린 나이에 도축해 연하고 순하며 기름진 살코기를 얻는다. 역사적으로는 귀족과 도시 엘리트만 누릴 수 있던 전유물이었다. 그들에게 부드러움은 곧 권력이었다.

농촌형 고기는 다르다. 동물을 생의 동반자로 여기며 그들을 고유한 가치대로 키우는 과정에서 얻어진다. 황소는 밭을 갈기 위해, 암소는 우유를 얻기 위해 키웠다. 고기는 그 동물이 더이상 본래의 역할을 할 수 없게 됐을 때 얻는 것이었다. 살아 있는 동안 이미 충분히 가치를 다한 존재의 마지막 쓰임새였다.

‘평양식당’의 냉면 속 삶은 고기.

농촌형 고기는 질길 수밖에 없다. 평생 일하며 단련된 근섬유는 굵고, 콜라겐의 교차 결합은 촘촘하다. 지방은 적다. 대신 맛은 깊고 풍부하다. 오랜 세월 살면서 다양한 풍미를 더하는 물질이 배어들기 때문이다. 부드러움은 부족할지 몰라도 ‘고기다움’은 진하다.

인류는 이 질긴 고기를 맛있게 먹으려고 오래 익히는 조리법을 발명했다. 핵심은 온도와 시간이다. 오랜 시간 끓여내면 단단한 결합조직이 풀리고 젤라틴으로 변한다. 그러면서 고기는 부드러워지고 국물은 깊은 감칠맛을 뿜어낸다. 이 방식은 선사시대부터 19세기까지 인류가 고기를 다루는 보편적인 방법이었다. 곰탕은 그 정점에 있는 음식이다. 사골·양지·사태는 모두 오래 끓여야 제맛이 나는 부위들이다. 여러 시간 가열을 거쳐야 국물이 우러난다. 곰탕은 단순히 오래 끓인 국물이 아니라 농촌형 고기의 조리 철학이 집약된 것이다.

삶은 고기는 구운 고기보다 건강 면에서도 유리하다. 고기를 굽는 과정에서 생겨나는 부산물(HCA·PAH) 논란에서 자유롭기 때문이다. 이들 물질은 주로 직화나 건열 조리에서 생겨난다. 삶을 때는 온도가 100℃를 넘지 않아 부산물이 크게 줄어든다. 영양학적으로도 곰탕의 가치는 스테이크와 동등하다. 단백질·철·아연이 풍부할 뿐만 아니라 육즙이 빠져나가 맛이 줄어들까 걱정할 일도 없다. 쇠고기의 맛과 영양 성분이 국물에 담겨서다. 위로 뜬 기름을 걷으면 훨씬 담백하며 속도 편하다. 장시간 조리로 결합조직이 풀린 덕분이다.

그저 주장만이 아니라 정말로 그렇다는 걸 확인할 수 있는 곳이 있다. 판교의 ‘평양식당’이다. 젊은 주인장이 혼자 운영하는 작은 점포다. 국내산 쇠고기로 6시간 고기를 가득 넣고 국물을 낸다. 기름을 걷은 맑은 국물이지만 감칠맛이 진하다. ‘진국’이란 말은 이런 국물을 맛보고 만든 게 아닌가 싶을 정도다. 흔히 황소를 우직하다고 하지만 이 국물을 맛볼 때마다 나는 주인장이 참 우직하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추억하는 할머니의 손맛은 결국 시간과 정성이 아니었을까. 거기에 젊은 요리사의 자신감마저 깃든 한그릇을 먹고 나면 기분 좋아진다.

정재훈 약사·푸드라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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