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에 시달린 차나무 왕은 흙이 되지 못하고 미라가 됐다 [서영수의 명산명차]

서영수 영화감독 2026. 2. 24. 07: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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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화) 1,200세 차나무 블루스
고6대차산을 대표하는 1,200년 묵은 차수왕

고6대차산을 대표하는 이우에서 동북향으로 5.5㎞ 이동하면 뤄쉐이동落水洞 마을 표지석이 나타난다. 뤄쉐이동에는 1,200살 된 차나무가 있다. 정부에서 지정한 고6대차산의 유일한 공식 고차수였다. 이우 일대를 상징하는 차수왕茶樹王을 보려고 탐방객이 시나브로 찾아왔다. 예전에는 다른 유명 차 생산지를 오가며 그냥 스쳐 지나치던 마을이었다. 입소문을 탄 차수왕 덕분에 뤄쉐이동은 차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성지'로 떴다. 덩달아 마을에서 만든 차 가격도 치솟았다. 줄곧 사용해 오던 '이우정산'이라는 광범위한 이름을 버리고 마을 이름 '뤄쉐이동'으로 보이차를 판매하기 시작했다. 대박이었다.

주변 왜화된 차밭.

2011년부터 올해까지 필자도 해마다 뤄쉐이동을 찾았다. 허술한 관리 탓에 차수왕은 노쇠에 가속도가 붙어 나날이 늙고 볼품없는 몰골로 변해갔다. 급기야 지난 2017년 8월 22일 지방정부는 "뤄쉐이동 차수왕이 사망했다"고 공식 발표했다. 고6대차산 주민은 물론 보이차 애호가에게 '차수왕 사망'은 충격이었다. 중국을 넘어 해외까지 이름이 알려진 차수왕의 사망 원인 분석과 사후 보존 처리를 위해 식물학자와 차 산업 관계자들이 조사와 연구를 시작했다. 마을의 주가를 높여 준 차나무의 사망이 몰고 올 부정적 여파에 전전긍긍하던 주민들은 뒤늦은 여론의 관심에 "사후약방문"이라며 안타까워했다.

차수왕을 고사시킨 야생벌.

탐방객들에 몸살 앓던 차수왕

음모론도 있었다. '뤄쉐이동을 시기한 다른 마을 사람들이 해코지를 했다'는 의혹이 일었다. 하지만 풍문은 근거 없는 낭설이었다. 2000년대부터 불어온 보이차 열풍에 차수왕은 인기를 얻을수록 시달림도 커졌다. 사시사철 밤낮없이 순례자처럼 찾아오는 탐방객들로 몸살을 앓기 시작했다. 심산유곡까지 힘들게 찾아온 보상 심리를 충족하고 싶은 일부 방문객은 나무 위에 올라가 인증 샷을 찍어댔다. 보는 것만으론 부족했던 일부 사람들은 철봉처럼 가지에 매달려 턱걸이를 해댔다. 무단으로 찻잎을 채취하는 것도 모자라 나무껍질을 벗기고 가지를 꺾어 가기도 했다. 사람들의 무도한 위력 앞에 뿌리가 송두리째 흔들리며 몸서리치던 차수왕은 헐벗은 나무가 되어 초췌해졌다.

왜화됐지만, 밀식재배를 벗어나 자연림 속에서 재배되는 차나무.

외지인의 시달림으로부터 뤄쉐이동 차수왕을 보호하기 위해 지방정부는 2011년 사방 3m 둘레에 철망으로 울타리를 쳤다. 철망 설치와 '보호수'라는 팻말이 차수왕이 사망할 때까지 취한 가시적 조치의 전부였다. 무허가 접근을 원천적으로 차단하고 먼발치에서 볼 수 있도록 철저히 통제한 3,200년 된 최고령 차나무 금수차존과 비교하면 차수왕의 철망은 보호라고 하기엔 너무 한가한 조치였다. 차수왕을 가두어 놓고 방치한 셈이었다.

일찍 발견된 덕분에 800살이란 비교적 젊은 나이에도 차수왕으로 공인받은 난눠산 차수왕.

나이 800년에서 뻥튀기 돼 1,200년으로

뤄쉐이동 차수왕은 인공 재배된 차나무였다. 밑동 둘레가 1.27m로 수령에 비해 굵지 않았다. 하지만 신장이 12.6m로 훤칠하고 가지 둘레는 6m로 수려했었다. 1970년대부터 국가 지침으로 실시한 왜화倭化(채취 작업의 편리함과 생산성을 높이려고 사람 키 높이를 넘기지 않도록 차나무 주간과 가지를 인위적으로 자르는 행위) 작업을 피해 간 덕분에 차수왕이 될 수 있었다. 처음 발굴 당시 수령 800여 년으로 추정되었던 차수왕은 2010년부터 매년 초고속으로 나이를 먹기 시작해 1,200년까지 올라갔다. 지역민들이 차수왕 나이를 터무니없이 올리는 이유는 차 업계에서 차수왕이 갖는 상징적 의미가 크기 때문이다.

고가에 굳이 구매할 이유 없는 황편차.

뤄쉐이동 차수왕이 유명세를 타고 돈이 되는 것을 벤치마킹한 다른 마을에서도 차수왕 발굴 열풍이 불었다. 차산과 계곡마다 저마다의 차수왕이 나타났다. 이우정산이라는 두리뭉실한 이름 대신 차산을 세분화해 마을 이름을 차산지로 정하는 것이 '국룰'이 됐다. 마을을 대표하는 오래된 차나무의 존재는 새로 태어난 독립 상표를 돋보이기 위한 필수조건이 됐다. 그 지역 차수왕을 기준으로 그 일대의 차나무 수령을 가늠하는 관행이 생겼기 때문이다. 따라서 마을 입장에선 믿거나 말거나 차수왕의 나이를 고무줄처럼 늘여 앞다퉈 상향 조정했다.

수시로 몰려와 차산을 휘감는 운무.

최후의 일격을 가한 야생벌

뤄쉐이동도 차수왕 경쟁에서 다른 마을에 뒤지기 싫었다. 4년 만에 400년을 '타임 슬립'한 뤄쉐이동 차수왕은 조기 사망했다. 차수왕을 죽음에 이르게 한 원인이 사람의 일탈행위만은 아니었다. 비탈진 급경사면에서 서식하던 차수왕은 빗물로 흙이 씻겨 내려가며 뿌리가 드러났다. 노령과 토양유실로 영양분을 빨아들이기 힘들어졌다. 하지만 자력으로 서 있기도 힘든 차수왕을 위한 별다른 보호조치는 없었다. 하릴없이 지나치던 마을에서 일부러 찾아오는 마을로 환골탈태 시켜준 차수왕에 대한 배려 없이 달콤한 과실만 따 먹은 셈이었다.

실제 수령은 800여 년이지만 천년고차수로 용인되는 표석.

차수왕에게 최후의 일격을 날린 것은 야생벌이었다. 말라 가는 차나무에 작은 구멍을 내고 들어간 야생벌이 왕성하게 번식했다. 자연과 자연의 전쟁, 나무와 벌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던 지방정부와 주민은 손쓸 시기를 놓쳤다. 야생벌은 차수왕의 몸통 내부를 완전히 공동화해 고사枯死시켰다. 특정한 희생양 없이 차수왕의 사망 원인은 누적된 인재와 자연재해로 결론지어졌다.

미라가 된 후 순례 행렬은 더 많아졌다.

사망 아닌 '서거'

죽은 차수왕 사후 처리를 놓고 한바탕 갑론을박이 오갔다. 주민들과 지방정부가 합의해 내린 결론은 뤄쉐이동 차수왕의 '사망'을 '서거'라는 단어로 격상하기로 했다. 서거한 차수왕의 나이는 800년 남짓으로 원위치시켰다. 그 대신 이미 세워둔 '천년 고차수' 표지석은 수정 없이 그대로 존치하기로 했다. 차수왕을 숭배의 대상으로 모셨던 사람들과 탐방객을 계속 유치하기 위한 특별 조치가 마련됐다. 서거한 차수왕을 방부처리해서 투명한 보호벽과 지붕을 만들어 살아 있던 원위치에 영구 보존하기로 했다.

사람들의 지나친 사랑과 유명세로 유명을 달리한 뤄쉐이동 차수왕은 죽어서도 흙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생존했던 자리에 선 채로 '미라'가 됐다. 살아생전 누려보지 못한 지붕 있는 집안에 거하며 사람에게 헌신하는 볼거리로 전락했다. 인간이 자연에 저지르는 비극과 희극의 경계를 보는 것 같았다. 차나무 사망 사건은 자연을 인간 위주의 이기적 시야로만 보거나 탐욕으로 대하면 언제든 어디서나 발생할 수 있다는 사례를 보여 줬다.

바쁜 어른들 틈에 외딴섬이 된 아이.

차수왕 덕분에 부촌이 된 뤄쉐이동은 행정구역상 마헤이짜이麻黑寨에 속한다. 이우에서 제일 잘 나가는 차 산지로 일찍부터 인정받아 온 마헤이짜이로 가는 길목에 있었지만, 차수왕으로 알려지기 전까지는 목적지가 아닌 경유지로도 들르는 사람이 거의 없었던 깡촌이었다. 불과 4㎞ 떨어진 이웃 동네인 마헤이짜이의 그늘에 살아야 했던 뤄쉐이동의 원래 이름은 만뤄曼落였다. 두 이름 모두 특수한 마을 지형에서 유래한다.

보이차 경연대회 최우수상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여 있는 뤄쉐이동은 커다란 솥단지 바닥처럼 낮은 지대에 주거지가 형성돼 있다. 마을 한가운데에는 식수로 사용하는 커다란 우물이 있다. 계단으로 내려갈 수 있게 만들어진 우물 바닥에 커다란 구멍이 있어 지하수로를 통해 인근 하천으로 물이 자연 방류된다. 마을 촌장은 "1년 내내 매일 비가 쏟아져도 절대로 범람하지 않을 것"이라고 호언장담했다. 일곱 선녀가 달밤에 물놀이를 하러 내려온다는 전설이 깃든 '물 빠지는 넓은 구멍이 있는 곳'이 뤄쉐이동이다.

차상들이 담벼락에 걸어놓은 현수막.

해발 1.463m인 뤄쉐이동은 연평균 17℃로 온화하다. 연평균 강수량도 1,950mm 정도로 풍부해 차나무 성장에 좋은 환경을 갖고 있다. 1명의 먀오苗족을 제외하고 모두 이.족으로 구성된 소수민족 마을이다. 23가구에 사는 94명 주민 모두가 생계를 차에 의존하고 있는 전형적인 차산 마을이다. 차수왕에 편승해 뒤늦게 알려진 뤄쉐이동 보이차는 우월한 생태환경에서 서식하는 고차수로 만든 부드러운 감칠맛과 섬세한 향을 갖춘 보이차로 사랑받고 있다. 보이차 경연대회에서 최우수상을 거머쥐기도 했다.

죽은 제갈공명처럼 아직도 위세 떨치는 차수왕

10여 년째 얼굴을 익힌 지인의 집에 사전 약속 없이 불쑥 들렀다. 꽃에 시선이 꽂혔다. 행운을 부른다는 금전수가 울타리에 활짝 피어 있었다. 마니아를 위한 전통 보이차를 가내수공업 형태로 만들고 있었다. 1차 가공된 모차毛茶에서 황편黃片과 이물질을 골라내기에 여념이 없는 엄마 옆에서 치대던 차농의 어린 딸이 살갑게 달려 나왔다. 반년 사이에 훌쩍 커버린 아이는 사람이 마냥 반갑다. 차산에서 가장 귀한 꽃 중의 꽃, 아이들은 바쁜 어른들 틈에 외딴섬이 되어 있었다.

지인의 아내가 골라내는 황편은 상품 가치가 없어 예전에는 버려지던 하급품이었다. 보이차가 귀한 몸이 되면서 계륵 같았던 황편마저 따로 모아 차로 팔아도 되는 시절이 됐다. 황편의 우수성과 특수함을 과장하는 미사여구에 현혹되어 고가에 구매할 이유가 없는 차가 '황편차'다. 제조 공정에서 생산 기준에 미달된 찻잎과 푸석푸석하게 쇤 잎을 가공한 것이 황편의 본색이기 때문이다.

지인의 집 주변 담벼락은 차상들이 걸어놓은 현수막이 어지럽게 붙어 있었다. 상당수 차상은 뤄쉐이동에서 고가의 차를 수매하는 것이 아니었다. 집주인에게 사례비를 주고 담을 광고판으로 사용할 뿐이었다. 낡은 오토바이를 타고 다녔던 지인은 럭셔리 SUV 레인지로버를 몰고 나타났다. 1,200년 묵은 뤄쉐이동 차수왕은 비록 서거했어도 죽은 제갈공명처럼 아직은 효력이 있어 보였다.

월간산 2월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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