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배란 없다…트럼프에게 중간선거는 ‘승리’ 혹은 ‘부정선거’

한겨레 2026. 2. 24. 05:06
음성재생 설정 이동 통신망에서 음성 재생 시 데이터 요금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글자 수 10,000자 초과 시 일부만 음성으로 제공합니다.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김동석의 트럼프 2.0 읽기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18일 워싱턴 백악관에서 발언하고 있다. AP 연합뉴스

지난해 1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백악관으로 돌아온 뒤 가장 먼저 취한 조처는 2021년 1월6일 의사당 폭동 사태에 연루된 1500명 이상을 사면한 일이다. 이들은 조 바이든 전 대통령 대선 승리는 부정선거의 결과라는 트럼프의 주장에 동조해 폭동을 일으켰던 골수 지지자들이다. 곧이어 그는 바이든이 승리했던 2020년 11월 대선 당시 조지아, 애리조나에서 개표 결과를 뒤집으려고 앞장섰던 자를 백악관 선거안보고문으로 끌어들였다.

트럼프는 지난해 8월15일 알래스카에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을 만났다. 우크라이나 전쟁 종전에 대해 푸틴과 정상회담을 한 뒤 트럼프가 백악관 출입기자들에게 꺼낸 말은 2020년 미국 대선에 관한 푸틴의 발언이었다. 트럼프에 따르면, 푸틴은 “당신의 2020년 선거는 우편투표 때문에 조작됐다”며 트럼프의 부정선거 주장에 동조했다. 푸틴은 트럼프에게 “2020년 대선에서 당신이 승리했다면 수많은 사람이 죽어가는 전쟁도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며칠 뒤인 8월22일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트럼프를 만났다. 젤렌스키가 “러시아와 전쟁 중이고 계엄령 아래에서는 선거를 치르지 않겠다”고 하자, 트럼프는 “전쟁 중에는 선거를 할 수 없다는 말인가”라며 부러움을 감추지 않았다. 트럼프가 이어서 “그러면 3년 반 뒤에 우리도 누군가와 전쟁을 하게 되면 더 이상 선거(대선)는 없다는 뜻인가. 와 그것참 좋네”라고 하자, 주위 사람들이 매우 놀라면서 웃고 말았다.

이런 장면들은 트럼프의 머릿속에서 올해 중간선거와 다음 대선에서 승리하지 못한다면, 아예 선거를 무효화하려는 생각이 맴돌고 있을 가능성을 시사한다. 그런데 최근 트럼프에게 불리한 정치적 신호들이 쌓이면서, 중간선거 결과를 ‘바꾸려는’ 트럼프 진영의 시도가 훨씬 노골화하고 있다.

지난해 11월 뉴저지와 버지니아 주지사 선거에서 트럼프의 적극적 지지와 후원을 받은 공화당 후보가 참패한 것은 트럼프에게 강력한 경고가 됐다. 2024년 대선에서 카멀라 해리스 민주당 대선 후보에게 트럼프가 근소한 차이로 졌던 주에서 2배 이상의 격차가 벌어지며 패했기 때문이다. 공화당의 연방 하원 의석을 5석 더 늘리려고 텍사스에서 추진한 게리맨더링에 맞불을 놓은 민주당의 캘리포니아 선거구 조정안 투표에서도 지난 대선 때보다 표 차이가 더 벌어졌다. 지난달 31일에는 1960년대 이후 공화당 후보가 한번도 패한 적 없는 텍사스 주의회 상원 보궐선거에서 트럼프가 내세운 공화당 후보가 대패했다. 대표적인 ‘마가’(MAGA: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지역에서 불과 1년 사이에 민심이 최소 31%포인트 공화당에서 민주당으로 이동한 것이다. 트럼프가 밀어붙인 관세정책과 이민정책에 대한 유권자의 반응이 싸늘해지고, 마가 지지층에 균열이 생기고 있다는 경고음이 곳곳에서 울리고 있다.

새해 벽두부터 트럼프는 선거 관련 무지막지한 발언과 행동들을 쏟아내고 있다. 지난 2일 트럼프 대통령이 마가 진영의 대표적인 팟캐스터인 댄 본지노와 전화 인터뷰를 했다. 트럼프는 이 자리에서 “선거가 끔찍하게 치러지는 지역에 연방정부가 관여해야 한다”며 ‘선거 국유화’를 주장했다. 특히 공화당이 최소 15곳의 투표를 장악해야 한다고 구체적으로 언급했다.

연방수사국은 이 발언 일주일 전께인 1월28일 조지아주 풀턴 카운티의 선거 사무소를 급습해 2020년 대선 투표용지, 투표기계 기록, 개표 과정 영상 등을 모두 압수했다. 풀턴 카운티는 2020년 대선 당시 트럼프가 선거 결과를 뒤집으려 했던 격렬한 싸움의 중심지였고, ‘진정한 승자는 트럼프’라는 거짓말이 생겨난 곳이다. 당시 대통령이었던 트럼프는 공화당 소속 조지아주 국무장관 브래드 래펀스퍼거에게 전화를 걸어 바이든을 이길 수 있도록 ‘표를 찾아달라’고 요청했다가 거절당했다. 조지아주가 이후 여러 차례 조사를 벌여 선거 조작은 근거가 없다는 결론을 냈고, 트럼프의 모든 법정 다툼은 이미 실패로 돌아갔는데도, 이를 다시 끄집어낸 것이다.

지난해 8월22일 미국 워싱턴에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의 회담 중 젤렌스키 대통령이 웃고 있다. AFP 연합뉴스

권력을 잃을까 봐 불안해진 트럼프, 지지율이 떨어진 이유를 이해하지 못하는 트럼프는 공화당이 하원이나 상원을 잃거나 두곳 모두에서 패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오는 11월 중간선거가 필요 없다는 취지의 발언까지 거침없이 하고 있다. 이달 초 공화당 의원들이 모인 자리에서 그는 “‘선거를 취소해야 한다’고 말하지는 않겠다. 왜냐하면 ‘트럼프는 선거 취소를 원한다. 그는 독재자다’라는 가짜뉴스가 쏟아질 테니까”라고 말했다. 하지만 직후 로이터와의 인터뷰에서 “공화당이 너무나 성공적이어서 선거 자체가 필요 없다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백악관 대변인은 대통령이 농담으로 “우스꽝스럽게 말한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그린란드를 장악하려는 시도도 처음에는 트럼프의 ‘농담’으로 시작됐다.

트럼프가 중간선거를 두려워하는 것은 당연하다. 중간선거는 ‘트럼프 시대’의 지속 여부를 결정짓는 중요한 분기점이다. 민주당이 하원 다수당 지위를 되찾을 가능성이 크고, 그렇게 되면 민주당은 곧바로 트럼프의 권위주의적 정책들을 저지하고 탄핵도 추진할 수 있다. 트럼프는 탄핵에 대해 극도의 혐오 반응을 보여왔다. 최근에는 공화당 의원들이 모인 자리에서 만약 선거에서 패할 경우 자신이 다시 탄핵당할 것이라고 공개 경고했다. 민주당이 상원에서까지 탄핵을 통과시키기에는 표가 부족하겠지만, 하원이 탄핵 결의만 추진해도 대통령의 권력이 얼마나 흔들리는지 그는 이미 두번이나 경험했다. 의회의 탄핵 시도는 트럼프 제국과 그의 비즈니스의 몰락을 예고한다.

점점 더 많은 뉴스 분석가, 정치 평론가, 오피니언 리더들이 올해 중간선거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하원 다수석 확보를 위해 행정적·사법적 수단을 총동원할 수 있다고 경고하고 있다. 나아가 이들 중 상당수는 트럼프의 배후에 더 큰 그림이 있다고 본다. 미국이 유지해온 현대 복지국가 체제, 지난 70년간 흑인 민권운동과 각종 사회운동을 통해 이뤄낸 민주국가 체제를 무너뜨리려는 ‘마가 엘리트들’의 의도가 있다는 것이다. 마가 엘리트들은 6 대 3으로 보수 우위인 연방대법원과 반트럼프 세력이 숙청된 공화당을 기본 동력으로 그것을 해내려 하고 있다.

트럼프는 중간선거를 향해 움직이고 있다. 상원에서의 통과는 아직 불투명하지만 지난 11일 연방 하원은 투표에서 시민권자(유권자)임을 확인하도록 하는 미국 유권자 자격 보호법(SAVE America Act)을 통과시켰다. 시민권자임을 증명할 신분증에는 출생증명서와 여권이 있다. 출생증명서는 태어난 병원에 찾아가야 받을 수 있고, 여권은 해외 출입을 하는 사람에 한해서 갖추게 되는 증명서다. 이 두 증명서를 즉시 확보할 수 없는 유권자는 주로 민주당 지역에 있으며 무려 2100만여명에 이를 것으로 추정된다. 또한 결혼으로 성이 바뀐 수천만명의 여성들은 출생증명서와 현재 신분증의 이름이 달라서 투표권이 박탈될 수도 있다.

트럼프는 선거구 조정, 우편투표 금지, 신분증 확인, 연방요원 투표소 파견 등을 총동원하면 중간선거에서 승산이 있다고 판단하고 움직이는 모양새다. 얼마 전 ‘애틀랜틱’은 이런 시나리오를 보도했다. 중간선거 당일 밤, 예상대로 공화당은 상원 다수당 지위를 유지하지만 하원은 아직 결과가 확정되지 않은 의석이 많고, 트럼프에게 불리한 상황이다. 이때 트럼프가 카메라 앞에 서서 ‘중대 발표’를 한다. “우리는 하원에서 승리했지만 앞으로 며칠 안에 다른 세력들이 2020년처럼 하원도 훔치려 할 것입니다.” 이 시점에서 선거 상황은 혼란으로 향하게 된다는 내용이다.

트럼프에게 중간선거는 ‘이미 승리한 선거’다. 자신이 지면 ‘부정선거’이고 그런 상황에서 현직 대통령으로서 취할 권한은 얼마든지 있다. 2020년 대선 당시에는 트럼프 권력 내부에 그래도 부정선거 음모론에 반기를 든 마이크 펜스 같은 인물이 있었다. 이제 트럼프 주위에는 충성심으로 똘똘 뭉친 이들만 남았다.

미주한인유권자연대(KAGC) 대표

Copyright © 한겨레신문사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