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국현의 과학기술 유행어 도감] [4] 프롬 스크래치(From scratch)

땅에 ‘스크래치’한 출발선, 거기부터 시작하기. 맨땅에서 시작했기에 오롯이 내 성취라는 자부심이 담긴 단어다. 요리에서도 쓰이는데 ‘흑백 요리사’에서 묵묵히 원재료부터 반죽해 나가던 그 명장면에 어울린다.
1년 전 이맘때 엔비디아의 주가는 대폭락했다. 중국이 서방의 저작권을 비웃듯 자유롭게 수집한 원재료와 서방보다 알뜰살뜰한 레시피로 기발한 ‘프롬 스크래치’ 요리를 만들어 누구나 퍼갈 수 있게 공개했다. 맛도 미제 못지않았다. 딥시크 쇼크다. 점점 폐쇄적으로 되어가던 미국과 달리, 중국의 개방적 AI 기술은 세계로 밀려들었다. 아이러니다.
우리도 그렇게 프롬 스크래치한 자주적 주권(소버린) 기술을 탐내게 되었고, 국가대표 AI 선발전이 진행 중이다. 하지만 “누구네는 프롬 스크래치가 아니다”는 폭로전이 줄곧 이어졌다. 각자가 생각하는 프롬 스크래치의 정의가 달랐다.
레시피(설계)는 중국제라도 신토불이 재료(데이터)로 처음 끓여봤으니 프롬 스크래치라 하고, 중국제 소스(모듈)는 토핑되었지만 검증된 외부 모듈을 활용하는 방식이 일반적이니 괜찮다고도 한다. 중국제로 면발(실행 코드)을 뽑아도 반죽(학습)은 내가 했으니 프롬 스크래치라고도 한다.
중요한 건 출발선의 앞뒤가 아니라 방향이다. “아, 이렇게 하면 되는구나!”라며 따라 달릴 만한 독자적 방향성을 천하에 내보일 수 있다면 세금을 쓸 가치가 있을 것이다. 프롬 스크래치는 자기계발까지 문화적으로 확산해 ‘효율적이지는 않아도 처음부터 시작하는 진정성’을 강조하는 단어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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