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오래된 결핍

예뻐지려는 것은 여자의 본능이다. 미모는 성공과 실패를 좌우하기도 한다. 여성의 강점과 같은 감성적 능력, 그리고 소통과 부드러움에 세련된 패션, 인품마저 고결하다면 세상사 백전백승이다.
어머니가 거울 앞에 앉아 화장을 하신다. 저승꽃 핀 얼굴에 분을 바른다고 감출 수 있나. 구순을 훌쩍 넘기고 가끔 치매 증상도 찾아 들어 현실보다는 과거에 집착하는 일이 잦아진 요즘, 아침마다 거울 앞에 앉는 일은 거르지 않으신다. 아직도 어머니에게는 예뻐지고 싶은 여자의 본능이 살아있는가 보다.
예쁜 엄마와 달리 나는 참 못생겼다. 엄마 닮아 예쁘다는 소리를 들은 적이 없다. 아버지를 닮았다면 피부라도 희었을 텐데 그도 저도 아니다 보니 분명 어디선가 주워 왔을 것이라 여겼다. 그래선지 철들기 시작하면서 열등감에 주눅이 들었다. 친구들은 모두 예뻐 보였다. 누가 뭐라 하는 사람도 없는데 자꾸 움츠러들었다. 소심해지니 앞에 나서는 일도 망설여지고 자존감도 낮아졌다. 당연하게 앞날의 희망찬 꿈도 함께 움츠러들었다. 그렇게 10대를 지나 20대 중반을 훌쩍 넘어섰다. 못생겼다는 걸 증명이라도 하듯 주변의 친구들은 20대 중반에 모두 결혼하고 아이까지 낳고 잘 사는데 나는 30대를 코앞에 두고도 결혼하지 못하고 부모님의 애를 태웠다. 그러던 어느 날 저녁, 밥상 앞에서 심각한 표정으로 아버지께 청을 했다. 오 남매 중 제일 못생겼으니 당연히 아버지가 책임을 져야 한다며 성형 수술비를 달라고 했다. 그 당시에 나는 쌍꺼풀 수술밖에 아는 게 없었다. 이미 한쪽에는 쌍꺼풀이 있었고 한쪽은 희미한 선만 있어 피곤하면 생기고 편안하면 없어지고는 해서 굳이 수술해야 할 이유도 없었다. 아버지는 식사를 멈춘 채 빙그레 웃으며 딸의 얼굴을 가만히 바라보셨다.
"나는 네가 다섯 중에 제일 이쁘기만 한데 왜 수술을 해서 망치려고 해, 내가 보기에는 고칠 데가 한 곳도 없어, 얼른 밥이나 먹자" 섭섭하기는 했어도 처음으로 아버지가 예쁘다는데 할 말이 없었다. 그 후로 나는 그냥 생긴 대로 살자고 포기는 했으나 이쁘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아쉬움이 마음 한쪽에 자리하고 있었다.
예나 지금이나 내 얼굴을 논하자면 딱히 할 말이 없다. 얼굴에 칼 댄 적 없으니 나름 개성적이라 스스로 위로해도 한군데 맘에 드는 구석이 없는 건 확실하다. 게다가 겉보기엔 조용해 보이나 웬만한 일에는 끄덕하지 않는 강인함이 속에 도사리고 있어 누군가 잘못 건드리면 본전 찾기 힘들다. 이쁘지도 않으면서 세상사에 두려울 게 없으니 무슨 배짱인가. 수없이 넘어지고 깨지면서 내 삶에 길을 내느라 뻔뻔하게 배짱만 늘었는지, 아니면 이쁘다는 아버지의 말을 아직도 믿고 있는 것인지 모르겠다.
살아보니 미모를 타고났어도 세상사 백전백승을 할 만큼 완벽한 사람을 본 적 없다. 만들어진 수많은 얼굴 속에서, 세상에서 하나뿐인 얼굴로 나답게 나이 들어가는 것도 나쁘지 않다. 푸르던 날 열망하던 여자의 본능은 시나브로 사라져 가도 지금은 젊은 날처럼 주눅이 들어 의기소침할 일 없어 편안하다. 화장기 없는 얼굴이어도 누가 뭐라 하는 사람 없으니 더욱 좋다.
과거는 철 지난 유행처럼 촌스럽다. 그러나 그 시절이 내 삶에 가장 강한 희망의 순간이었다고 한다면 과한 표현일까. 결국 내 안의 결핍을 없애는 것에서 행복은 시작된다는 것임을 오랜 세월이 흘러 깨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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