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의 향기] 모래밥
송연숙 2026. 2. 23. 18:50
저녁 어둠이 맨손으로 허겁지겁 고봉밥을 퍼먹고 있다
고기를 가져오라 소리치며
숟가락으로 밥상을 탁탁친다
접시가 깨졌다
자식의 목을 잘라 먹고
한쪽 팔을 아이스크림처럼 핥아먹는 사투르누스
그 허기와 광기가 몰아치는 저녁 어둠 앞에서
안절부절못하는 아버지는
헛기침으로 대답을 대신하신다
초등학생인 내가 아침을 굶고 등교했던 날
아버지는 밥솥 가득 모래를 부어 놓으셨다한다
- 아무도 밥을 먹지 못한다
아이가 돌아올 때까지
가족들에게 엄포를 놓으셨다 한다
밥 먹었니, 밥 한번 먹자가 인사였던 시대
밥은 아버지의 사랑 방정식이었다.
밥 굶기지 않는다, 때리지 않는다, 일 시키지 않는다
무언의 규칙으로
어미 잃은 우리를 지켜주던 아버지
밥솥 가득 모래밥을 지으셨던 거다
모래알 씹는 것 같다는 아버지를 위해
모래알에 섞일 몇 가지 반찬을 만들어 집을 나선다
삶의 온갖 욕망이 다 사라진 후
마지막까지 남아 있는 저녁노을의 식욕
사투르누스의 입가에선 핏방울이 떨어진다
핏방울 같은 노을이 눈동자에 번진다
다만,
우리를,
우리의 밥을,
불쌍히 여기소서
다만,
우리를,
우리의 밥을,
불쌍히 여기소서

송연숙 시인
2016년 월간 '시와표현' 시, 신인상
2019년 '강원일보', '국민일보' 신춘문예 당선
수상 '한국서정시문학상', '모덤포엠 평론 신인상'
시집 '측백나무 울타리' 외
Copyright © 저작권자 © 중부일보 -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