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왕과 사는 남자’

"나는 이제 어디로 갑니까…"
계유정난 이후, 어린 왕 이홍위(단종)는 왕위에서 쫓겨나 청령포로 유배된다. 영화 '왕과 사는 남자'는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그 곁을 지켜본 한 인물의 상상력을 더해 이야기를 풀어낸다.
강원도 영월 산골 마을의 촌장 엄흥도는 마을의 생계를 위해 청령포를 유배지로 유치하려 애쓴다. 그러나 그곳에 도착한 이는 권력의 상징인 수염도 없는 모든 것을 빼앗긴 소년 왕이었다.
촌장은 유배지를 관리하는 책임자로서 단종을 감시해야 하는 위치에 선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며 그는 깨닫는다.
왕위에 있을 때의'왕'이 아니라, 삶의 의지를 잃은 한 인간을 마주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힘과 권력은 사라졌지만, 인간의 존엄은 사라지지 않았다. 영화는 묻는다. 권력 곁에 설 것인가, 아니면 인간 곁에 설 것인가? 이 시대의 권력은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가?
역사는 종종 승자의 기록으로 남는다. 그러나 진짜 역사는 패자의 눈물 속에 남는다. 단종의 비극은 권력이 공평과 정의를 잃을 때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를 보여준다.
오늘의 시대 역시 다르지 않다. 권력은 소수의 영광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다수의 삶을 지키기 위해 존재해야 한다. 권력은 위에서 군림하는 힘이 아니라, 아래를 살피는 책임이다.
영국의 사상가 존 액턴은 "권력은 부패하기 쉽고, 절대 권력은 절대 부패한다"고 말했다. 권력이 통제받지 않을 때, 정의는 흔들린다. 반대로 권력이 자신을 낮출 때, 사회는 건강해진다.
약자 곁에 서는 용기 있는 사람이 그립다. 영화 속 촌장은 처음에는 생계를 위해 권력의 흐름을 따르지만, 결국 한 인간의 고통 앞에서 마음이 움직인다. 그는'왕의 감시자'에서'인간의 동반자'로 변해간다. 권력층에 기대는 것이 아니라 진솔하게 살아가는 사람다운 세상을 택한다.
찰스 디킨스의 에는 이런 구절이 있다."가장 어두운 시대에도 인간의 빛은 꺼지지 않는다."약자 편에 선다는 것은 거창한 행동이 아니라, 인간의 빛을 지키는 일이다.
독일의 신학자 디트리히 본회퍼는 나치 정권에 저항하며 이렇게 말했다.
"침묵은 악을 돕는 것이다."이 시대의 지도자는 박수 치는 사람들 사이에 서 있는 이가 아니라, 고통받는 사람들 곁에 서 있는 사람이어야 한다. 영화를 보면서 인간적인 눈물이 났다. 문득 오늘 우리가 배워야 할 교훈이 생각났다.
첫째, 권력은 자리보다 책임이다.
높은 자리에 있을수록 더 낮은 곳을 보아야 한다. 청령포는 지금도 존재한다.
권력은 인간을 지우기 위해 존재하지 않는다. 지도자의 첫 번째 덕목은 공감이다.
약자 곁에 서는 선택이 결국 역사를 만든다. 공감 없는 권력은 폭력이 되기 쉽다.
그러나 공감 있는 권력은 위로가 되고 보호가 된다.
둘째, 아부가 아닌 정의를 선택하라.
역사는 권력자보다 정의로운 선택을 한 사람을 더 기억한다. 아브라함 링컨은 이런 말을 남겼다."나는 옳은 편에 서는 것이 아니라, 옳은 편이 되기 위해 서 있다." 중요한 것은 내가 어디에 서 있느냐보다 내가 누구의 아픔을 보고 움직이느냐이다.
셋째, 인간의 존엄은 어떤 상황에서도 지워지지 않는다.
단종은 왕위를 잃었지만, 인간의 가치는 잃지 않았다.
영화는 과거를 다루지만 질문은 현재를 향한다. "나는 어디에 서 있을 것인가?" 공감 없는 권력은 폭력이 되기 쉽다. 그러나 공감 있는 권력은 보호가 된다.〈왕과 사는 남자〉는 단종의 비극을 통해 오늘을 비추는 거울이 된다.
권력의 곁에 서는 사람은 많지만, 약자의 곁에 서는 사람은 드물다.
그러나 역사는 후자를 기억한다. 이 물음은 단종의 질문이면서 동시에 우리 시대의 질문이다. 권력은 어디로 가야 하는가. 지도자는 누구를 바라보아야 하는가. 답은 언제나 분명하다. 권력은 민중을 살피고, 정의로운 사회를 만드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
오늘 우리 사회에서 '청령포'에 서 있는 사람은 누구일까? 청령포는 단종이 권력을 잃고 홀로 고립된 장소다. 권력은 사라졌고, 목소리는 작아졌고, 존재는 점점 지워져 간다.
오늘의 청령포는 특정한 지명이 아니다. 그것은 사회적 고립과 상실과 배제의 자리다. 경제적 어려움 속에 홀로 버티는 자영업자, 사회구조 속에서 소외된 노인과 장애인, 경쟁에서 밀려난 청년, 말할 기회를 잃은 약자들, 여론 속에서 쉽게 낙인찍히는 사람들, 청령포는 '힘이 없는 자리' 서러움의 자리다. 그러나 바로 그 자리에 인간의 존엄이 시험대에 오른다. 역사는 왕궁이 아니라 유배지에서 인간의 진짜 얼굴을 보여주었다. 오늘도 마찬가지이다. 우리가 외면하는 자리, 바로 거기가 오늘의 청령포가 아닐까?
김기포 포항명성교회 담임목사
Copyright © 경북도민일보 | www.hidomin.com | 바른신문, 용기있는 지방언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