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경영인에게 맡긴다더니…“신동국, 대표 권한 부당침해”
저가원료 사용 등 경영 간섭 논란
임직원들 ‘사퇴 촉구’ 피켓시위도
박재현 대표 “압박 느껴” 호소문
신 회장측은 “왜곡된 주장” 해명

가족 간 경영권 분쟁을 끝낸 뒤 안정을 찾은 듯해 보였던 한미약품그룹이 이번에는 최대주주와 전문경영인 간 내홍이 불거졌다. 박재현 한미약품 대표는 대주주인 신동국 한양정밀 회장이 대표이사의 권한 행사를 부당하게 막았다며 전 직원을 대상으로 호소했다. 신 회장은 한미사이언스 대주주이지만 이사회에서 기타비상무이사 역할만 맡고 있어 대주주의 전횡을 막자는 취지가 담긴 상법 개정안과 정면으로 배치된다는 비판이 나온다.

23일 투자은행(IB) 업계에 따르면 박 대표는 20일 임직원을 대상으로 한 입장문을 통해 “제약 산업의 본질을 바탕으로 책임 있는 조언과 논의가 이뤄지기를 특정 대주주께 직간접적으로 요청드려왔다”며 “그러나 그러한 노력들이 저에 대한 비난으로 돌아오고 또 온전하게 부여된 저의 대표로서의 권한 행사에 압박을 느끼는 그런 상황”이라고 했다. 특정 대주주는 신 회장을 의미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그러면서 박 대표는 “한 기업에서 대주주가 갖는 의미와 영향력이 크다는 점을 잘 알고 있다”면서 “그러나 그보다 앞서 지켜야 할 가치가 분명히 존재한다고 믿는다”고 했다. 이어 그는 “제가 할 수 있는 권한 안에서 한미가 한미다운 정체성을 지키고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책임을 다해나갈 것”이라고 덧붙였다.
신 회장은 박 대표의 권한 행사를 번번이 가로막은 것으로 알려졌다. 대표적으로 신 회장은 지난해 박 대표에게 원료 의약품을 저가 제품으로 교체하라는 지시를 내린 것으로 전해졌다. 박 대표는 검증되지 않은 저가 원료 의약품을 사용할 수 없다는 취지로 신 회장의 지시에 반대했다. 박 대표가 거부하자 신 회장은 측근을 통해 원료 의약품 교체를 강제로 추진한 것으로 알려졌다.

경영 개입 정황은 성 비위 문제에서 드러나기도 했다. 박 대표가 위원회를 통해 객관적으로 내린 의사 결정에 대해 신 회장이 비토한 것으로 전해졌다. 최근 불거진 임원 A 씨의 성 문제도 박 대표가 징계위원회를 통해 처분했지만 A 씨는 “신 회장이 복귀하라고 했다”는 취지로 주변에 언급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미약품의 한 관계자는 “신 회장 측근들이 박 대표의 지시 사항을 따르지 않는 것에 대해 ‘신 회장이 괜찮다고 했다’고 줄곧 언급했다”고 말했다.
신 회장은 지주사인 한미사이언스의 지분 23.38%를 보유하고 있으며 한미사이언스와 한미약품의 기타비상무이사다. 2024년 모녀와 아들 간 경영권 분쟁이 발생하면서 지분 약 10%를 보유했던 신 회장이 분쟁 종식의 키맨으로 떠올랐고, 주주 간 계약을 통해 모녀 측의 지분을 인수한 결과다. 당시 신 회장과 송영숙 회장, 임주현 부회장 등은 주주 간 계약을 맺고 전문경영인에게 경영을 일임하는 선진 지배구조를 구축하기로 한 바 있다.
한미약품 임직원들은 이날 본사 로비에서 신 회장이 오너처럼 독단적으로 경영에 관여하고 있다며 사퇴를 촉구하는 피켓 시위를 열었다. 또 피해자와 구성원에 대한 공식 사과와 경영 간섭 중단을 요구하는 성명서를 내고 이사회 차원의 견제 장치 마련을 촉구했다.
한미약품 기타비상무이사인 신 회장의 이 같은 경영 개입은 개정된 상법 취지에 어긋난다는 지적이 나온다. 지난해 개정된 상법은 감사위원 선임 시 최대주주와 특수관계인의 의결권을 3%로 제한하고 집중투표제 활성화를 통해 대주주의 일방적 경영을 견제하기 위한 장치들을 도입했다. 특정 대주주의 전횡을 막고 소유와 경영을 분리하자는 취지다. IB 업계의 한 관계자는 “주주로서 직접 경영에 참여하면서 전문경영인의 권한을 침해하는 것은 불법적 요소가 있다”며 “스스로 사내이사로 직함을 갖고 책임을 지면서 경영에 참여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신 회장 측은 이와 관련해 “경영 간섭은 박 대표의 왜곡된 주장”이라고 밝혔다.
김병준 기자 econ_jun@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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