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법’ 판결? “전 세계에 15%”…트럼프 압박이 韓에 미치는 영향은

정윤성 기자 2026. 2. 23. 17: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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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법’ 판결에도 ‘15% 보편 관세’ 압박…트럼프式 관세 정치 계속
3500억 달러 투자에도 변수 가능성…李 정부 통상 불확실성 여전

(시사저널=정윤성 기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 20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DC 백악관에서 미 연방대법원의 상호관세 위법 판결에 대해 답변하고 있다. ⓒEPA=연합뉴스

미국 연방대법원이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상호관세 조치에 위법 판단을 내리면서 한미 통상 외교도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었다는 평가가 나온다. 트럼프 대통령은 판결이 떨어지자마자 15%의 일률 관세를 꺼내 든 데 더해 "전보다 더 많은 돈을 거둬들이기 위해 모든 일을 할 것"이라며 정면 돌파를 선언했다. 중장기적으로는 품목별 관세 등 형태만 바뀐 새로운 관세의 변수가 한국의 주력 수출산업을 겨냥할 수 있다는 점에서 불확실성이 여전하다는 분석이다.

미국은 글로벌 국가와의 관세 협상에서 롤러코스터를 타왔다. 한국도 예외는 아니다. 트럼프 행정부는 지난해 4월 국제비상경제권한법(IEEPA)을 근거로 한국에 25%의 상호관세를 매겼고, 같은 달 자동차에 25%, 한 달 뒤 자동차 부품에도 25% 관세를 부과했다. 한국이 지난해 7월 3500억달러(약 505조원) 규모의 대미 투자를 약속하자 미국은 상호관세를 15%로 낮추기로 했고, 지난해 11월 양해각서(MOU) 체결을 거쳐 자동차 관세도 15%로 소급 인하됐다.

이번 미 연방대법원의 판결은 이렇듯 IEEPA에 근거한 국가별 상호관세가 위법하다는 내용이다. 한국에 적용되던 15% 상호관세도 마찬가지다. 이 판결에도 트럼프 행정부는 물러섬이 없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판결 다음 날 전 세계를 대상으로 10% 보편 관세(글로벌 관세) 부과에 서명했고, 이에 그치지 않고 이를 다시 15%로 올리겠다며 압박 수위를 한층 높였다.

15%던 상호관세가 10%의 글로벌 관세로 대체되면 표면적으로는 5%포인트의 인하 효과가 있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전문가들 사이에선 관세 불확실성 자체는 오히려 확대됐다고도 보는 분위기가 감지된다. 이번 사태의 관건은 '관세율'의 문제가 아니라 관세가 외교·안보·정치 협상 도구로 재정렬되는 과정에 있다는 것이다. 대법원 판결이 기존 상호관세의 법적 근거에 제동을 건 것이지 트럼프 행정부의 다른 관세 부과 권한까지 제한한 것은 아니라는 점에서 무역확장법 232조, 무역법 301조·122조, 관세법 338조 등 활용 가능한 법적 수단이 여전히 남아 있는 상황이다.

미 연방대법원 판결의 여파로 자동차나 반도체 같은 한국의 핵심 산업에 고율 관세가 다시 부과되면 지난해 협상 당시의 상황으로 되돌아가는 것과 다르지 않다. 관세 불확실성이 지난해 거시경제 전반 끼친 파급력이 적지 않았던 만큼, 기업의 설비투자와 고용 결정은 위축되고 내수 경기에도 부정적 영향을 미치는 악순환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우려다.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해 10월 한미 정상회담이 열리는 경북 경주박물관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방명록 작성 모습을 보고 있다. ⓒ 연합뉴스

진짜 폭탄 온다?…500조 대미 투자 재협상도 변수

3500억 달러 규모의 대미 투자 약속이 관세 협상과 연관돼 있다는 점도 정부의 부담이다. 지난해 이재명 정부는 상호관세와 한국산 자동차·부품 등에 대한 관세를 15% 수준으로 낮추는 조건으로 대규모 투자 패키지를 설정해 통상 부담을 덜어낸 바 있다. 여기엔 대미투자특별법 등 국내 입법과 관세 인하의 소급 적용 등까지 연결돼 있다. 상호관세 인하를 전제로 한국이 약속한 투자인 만큼, 해당 관세가 무효가 된 상황에서 법리적으로 투자 합의도 재검토 대상이 될 수 있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기존 합의를 그대로 유지하는 것이 한국으로서는 불공정하다는 논리도 부각될 수 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한국 정부가 먼저 이에 대한 재협상을 요구하기는 극히 어렵다는 게 중론이다. 우선 투자합의는 오랜 협상 끝에 체결된 것으로, 한미 조선 협력 프로젝트인 마스가(MASGA)와 핵추진 잠수함 등 안보·전략적 합의와도 맞물려 있다. 투자합의만 따로 떼어 재협상하기 어려울뿐만 아니라 이들 전략적 합의까지 흔들릴 수 있는 구조다.

일본 변수도 한국의 운신 폭을 더욱 좁히고 있다. 일본 정부는 5500억 달러의 대미 투자를 합의대로 이행할 것으로 알려졌고, 예상보다 빠르게 첫 대미 투자 프로젝트를 확정했다. 한국이 일본보다 먼저 재협상 카드를 꺼내면 트럼프 행정부와의 관계에서 불리한 위치에 놓일 수 있다. 11월 중간선거라는 정치적 변수도 간과할 수 없다. 트럼프 대통령이 선거를 앞두고 자국 산업 보호를 명분으로 보다 강경한 관세정책을 내놓을 가능성이 상존하기 때문이다. 관세 이슈가 국내 정치와 맞물리면서 정부의 대응은 더욱 복잡한 방정식이 되고 있다.

대법원 판결이 가져온 가장 직접적인 실익은 관세 환급 가능성이다. 상호관세가 위법으로 판명되면서, 그동안 납부된 관세에 대해 환급을 요구할 수 있는 법적 근거도 마련될 가능성이 커졌다. 그러나 실제 환급까지의 경로 역시 복잡한 장기전이 될 전망이다.

김광석 한국경제산업연구원 경제연구실장은 "상호관세율을 깎는 조건으로, 대미 투자를 약속했던 나라들이 그 당위성을 인정하지 않는다면 그간의 약속들이 조정될 여지도 있어 보인다"며 "다만 트럼프 대통령이 품목별 관세 등 다른 수단으로 압박할 것이라고 본다면 무역협상이 바뀌지 않을 수 있다"고 전했다.

국회도 대미 투자 관련 절차를 당초 일정대로 진행할 것으로 보인다. 국회 대미투자특별위원회는 24일 입법공청회를 열고 특별법 제정에 들어간다. 특위 활동 기한은 다음 달 9일까지이며, 여야는 5일 본회의를 열어 대미투자특별법을 처리한다는 구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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