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칼럼] 사상 최대 투자, 사상 최대 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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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대학생 여럿이 인턴을 하겠다며 찾아왔어요. 여기서 10년 넘게 살았지만 이런 적은 처음입니다."
미국 마운틴뷰에서 인공지능(AI) 스타트업을 설립한 한 한국인 대표는 최근 이름만 들어도 알 만한 컴퓨터공학과 대학생들에게서 무급이라도 좋으니 일하고 싶다는 연락을 받았다.
테크 분야 기업 감원 정보를 추적하는 레이오프스닷에프와이아이(Layoffs.fyi)에 따르면 올해 미국 테크 업계 해고 인원은 2만7000여 명에 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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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규모 감원 나선 테크기업들
인프라투자엔 900조원 올인
올들어 하루 450명씩 해고…
AI가 새 직업 창출 낙관론은
사회안전망 없으면 재앙될수도

"미국 대학생 여럿이 인턴을 하겠다며 찾아왔어요. 여기서 10년 넘게 살았지만 이런 적은 처음입니다."
미국 마운틴뷰에서 인공지능(AI) 스타트업을 설립한 한 한국인 대표는 최근 이름만 들어도 알 만한 컴퓨터공학과 대학생들에게서 무급이라도 좋으니 일하고 싶다는 연락을 받았다. 그는 "우리는 신생 기업이고 더군다나 대표가 한국인"이라며 "몇 년 전만 해도 상상하기 어려웠던 풍경"이라고 말했다. 한 아마존 개발자는 최근 10년 넘게 함께 일하던 동료가 하루아침에 해고됐다고 말했다. 그는 "동료가 어느 날 아침, 출입증이 고장 난 것 같다며 내게 전화했다"면서 "뉴스와 소셜미디어에서만 보던 일이 눈앞에서 벌어졌다는 게 믿기지 않았다"고 했다.
AI가 채용시장 힘의 균형을 바꾸고 있다. 코딩과 기획, 테스트까지 AI가 보조하면서 같은 결과를 내는 데 필요한 인력이 줄었다. 신생 스타트업은 더 적은 사람으로 더 빠르게 제품을 만든다. 효율은 높아졌지만, 그 그림자는 고용시장 전반으로 번지고 있다. 신입은 좀처럼 뽑지 않고 자동화가 가능한 부서의 인력은 준다. 테크 분야 기업 감원 정보를 추적하는 레이오프스닷에프와이아이(Layoffs.fyi)에 따르면 올해 미국 테크 업계 해고 인원은 2만7000여 명에 달한다. 새해 들어 하루에 450명씩 해고당한 셈이다.
해고 뉴스 헤드라인 옆에 나란히 걸린 것은 '사상 최대 투자' 소식이다. 알파벳(구글), 아마존, 메타, 마이크로소프트, 오라클 등 테크 기업들이 2025년 한 해 AI 인프라스트럭처에 쏟아붓겠다고 발표한 투자 규모는 약 6500억달러. 우리 돈 900조원을 훌쩍 넘는다. 서버와 전력, 그래픽처리장치(GPU)와 냉각장치로 흐르는 돈의 강은 그 어느 때보다 넓어졌다. 서버, 전력, GPU, 냉각장치에 자금이 집중됐다. 조직도에서는 자리가 줄지만, 데이터센터에는 장비가 늘어난다.
해고와 투자가 동시에 진행되는 흐름은 구조적이다. 기업은 인건비를 줄이는 대신 자본 지출을 늘린다. 반복 업무뿐 아니라 일부 고급 지식 노동까지 AI가 대체하거나 보조한다. 인원 구성은 피라미드형에서 다이아몬드형으로 바뀐다. 중간층이 얇아지고, 소수의 핵심 개발자와 대규모 인프라가 결합하는 형태로 재편된다. 자본시장은 이를 긍정적으로 본다. 감원 발표 이후 주가가 오르는 사례는 이제 낯설지 않다. 비용 효율화와 미래 투자라는 두 메시지가 동시에 작동한 결과다. 반면 노동시장에서는 신입의 진입 장벽이 높아지고, 경력자에게도 대체 가능성이라는 부담이 따라붙는다. 낙관론도 있다. 역사적으로 생산성 혁신은 새로운 산업과 직업을 만들어왔다. AI 역시 장기적으로는 새로운 수요를 창출할 것이라는 전망이다.
다만 이번 변화의 속도는 이전과 다르다. 변화는 빠르고, 조정의 비용은 개인에게 집중된다. 교육과 재훈련, 사회안전망이 충분히 뒷받침되지 않으면 격차는 좁혀지기 어렵다.
마운틴뷰에서 무급 인턴을 자청하는 명문대 학생과 출입증이 막힌 채 전화를 걸어야 했던 10년 차 개발자. 둘 사이에 놓인 거리는 멀지만, 이들이 마주한 현실은 같다. 들어갈 자리는 없고, 있던 자리는 위태롭다. 해고와 투자가 공존하는 이 풍경은 단순한 경기 변동의 문제가 아니다. 지금 실리콘밸리에서 벌어지는 일은 AI 시대 노동의 방향을 압축해 보여주는 스냅샷에 가깝다. 미래가 반드시 암울하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그러나 준비 없는 낙관은 가장 값비싼 선택이 될 수 있다.
[원호섭 실리콘밸리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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