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verseas Trip] 때묻지 않은 순수함 그대로...미얀마에서 여행의 본질을 고찰하다

2026. 2. 23. 16: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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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얀마 사람들의 매우 순수한 환대를 직접 겪고 난 뒤, 불현듯 1990년대 초 태국을 처음 방문했다던 독일인 여행자의 말이 떠올랐다. 말끝마다 “그때가 좋았지”라고 읊조리던 그의 말은 곧, 관광산업이 급속히 발전하기 이전의 로컬의 순수한 미소를 더는 볼 수 없게 되었다는 탄식이었다. 관광 인프라가 갖춰지기 이전의 때묻지 않은 고유의 순수성. 미얀마 여행이 그랬다.
미얀마 타웅타만 호수 우베인다리에서 바라본 초현실적인 일몰 풍경
북부 최대 도시, 만달레이에 서다

미얀마 여행의 시작 지점으로 택할 수 있는 도시는 주로 양곤 혹은 만달레이, 두 곳이다. 이유는 항공편 때문이다. 물론 미얀마에 국제공항이 이 두 도시에만 있는 것은 아니지만, 인천발 미얀마행 항공편을 감안하면 이들 두 도시로 압축된다. 결과적으로 만달레이행을 택했다. 직항편이 있는 양곤 대신 환승을 감수하면서까지 만달레이를 여행의 출발점으로 계획한 건 오직 여행의 피로를 최소화하고 싶은 마음 때문.

그도 그럴 게 양곤 시내의 교통체증은 필리핀 마닐라, 인도네시아 자카르타 등과 앞다투며 아시아에서 손꼽힐 만큼 최악의 도시로 유명하기 때문이다. 아침저녁 출퇴근시간은 물론이고 하루 중 교통체증을 피할 수 있는 시간대가 거의 없을 정도라고 알려져 있다. 사실 미리 밝히자면, 만달레이에서 출발한 여정은 양곤에서 끝을 맺었는데 실제 도시의 교통체증은 듣던 대로 최악으로 치달은 상황이었다. 도착하자마자 하루라도 빨리 양곤을 떠나고 싶었을 만큼.

(위)이라와디 강변에서 터를 잡고 살아가는 사람들 (아래) 집집마다 초를 밝히며 부처님께 기도를 올린다.
북부에 위치한 만달레이는 미얀마에서 두 번째로 큰 도시다. 1857년 민돈 왕조 시대에 미얀마의 수도였던 곳으로서 민돈 왕이 당시 미얀마 남부를 통치하던 영국에 자신의 왕국이 여전히 강력함을 보여주기 위해 이 도시를 건설했다. 이후 1885년 영국에 점령된 뒤에도 이 도시는 지속적인 번영을 누렸지만, 1942년 일본의 침략으로 연합국의 폭격을 맞으며 많은 건물들이 파괴되었다.

오늘날 만달레이는 이라와디 강변에 자리잡은 지리적 이점 덕에 미얀마 북부의 상업 중심지로 인식되며, 중국과의 무역과 교역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도시로 평가받는다. 또한 강변은 예나 지금이나 삶의 터전으로서 중요한 장소다.

이라와디 강변에서 터를 잡고 살아가는 사람들
금방이라도 부서질 것 같은 낡고 오래된 나무집에는 조부모부터 어린 손주들까지 대가족이 거주하고, 시대의 변화에도 불구하고 옛 모습 그대로 강변을 지켜온 사람들의 생활 터전이 만달레이의 흥망성쇠를 짐작케 한다.

만달레이의 명성은 불교 유적지에서도 살펴볼 수 있다. 시내 중심부 남쪽에 위치한 대규모 사원단지인 마하무니 사원이 그곳이다. ‘불교의 국가’로 잘 알려진 미얀마는 파고다(불교의 탑)와 사원, 계율 중심의 수행이 일상과 문화에 깊게 뿌리내린 나라로 유명하다.

(위로부터)버마 왕조의 마지막 왕궁인 만달레이 왕궁 전경, 해발 240미터에 위치한 만달레이 언덕
특히 미얀마 국민 대다수의 삶의 중심이자 부처님의 존재를 상징하는 곳으로 여겨지는 사원은 미얀마에서 가장 중요한 불교 순례지인데 이 중 대표적인 곳이 바로 마하무니 사원이다.

이곳 본당에는 높이 3.8미터, 무게 6.5톤의 금박 청동 불상이 모셔져 있으며, 순례자가 이 청동 불상의 특정 부위를 만지면 질병이 치유된다는 전설이 전해져 미얀마는 물론 아시아 각지에서 불교 순례자들의 방문이 끊이지 않는다.

금박 청동 불상이 모셔져 있는 마하무니 사원에는 순례자들의 방문이 끊이지 않는다.
사원이 종교적 치유의 장소라면, 일몰명소로 알려진 우베인다리는 자연으로부터 치유를 받을 수 있는 곳이다. 타웅타만 호수를 가로질러 약 1.2킬로미터에 걸쳐 완만한 곡선을 그리며 뻗어 있는 우베인다리는 1850년경에 건설된 세계에서 가장 오래되고 가장 긴 티크 목재 다리로 알려져 있다.

호숫물 위로 총 1,086개의 버마산 티크 나무 기둥이 뻗어 있는데 이는 초현실적인 풍경을 자아낸다. 일몰이 절정에 이른 시각, 호숫물에 오렌지색 물감을 한 방울 떨어뜨린 것 같은 신성한 빛이 다리 주변을 물들였다. 그렇게 ‘신성한 도시’의 환영식은 꽤 긴 여운을 남겼다.

자연 치유의 장소로 유명한 타웅타만 호수
낯설지만 익숙한 나라의 음식과 교통

미얀마는 태국이나 베트남 등과 비교하면 여행 정보나 인프라가 턱없이 부족한 실정이다. 그도 그럴 게 2021년 군사 쿠데타 이후 정치적으로 여전히 불안정한 상태가 지속되고 있기 때문이다. 국가 전역에 비상 사태 선포, 잦은 정권 교체, 여기에 시위가 끊이지 않고 있다는 점에 주의할 필요가 있다. 하지만 양곤이나 만달레이, 바간, 인레 호수 등 외국인 여행객을 대상으로 미얀마 정부에서 관광지역으로 지정한 도시나 장소는 비교적 안전하게 여행이 가능하다.

여느 동남아 국가와 비교하면 도시마다 여행시설이나 정보 등이 극히 제한적이지만, 그만큼 순수한 매력을 간직한, 도시나 시골 어디든 현지인들의 따뜻한 환대와 전통적인 생활 방식을 가까이서 보고 경험할 수 있다는 것은 미얀마 여행의 최대 장점이다. 중요한 건 ‘낯선 나라’라는 인식이 미얀마에 닿고 나면 얼마 안 가 사라진다는 사실이다.

(위에서부터) 흰 쌀밥과 다양한 볶음류의 반찬으로 구성된 미얀마 로컬 밥상, 미얀마 샨족의 별미로 꼽히는 전통국수요리인 ‘미셰이’, 뷔페처럼 다양한 요리가 진열되어 있는 식당 모습
경험에 비춰보면 미얀마에서 낯섦이 친근함으로 바뀐 순간은 로컬 음식을 처음 맛봤을 때였다. 생각지도 못한 순간, 내 입맛에 맞는 음식을 찾는 호사를 누리면 그것만큼 반가운 일이 또 있을까. 낯선 곳에서 금세 음식에 적응하고 나면 으레 여행의 8할은 채워지는 법이다. 미얀마 요리는 흰 쌀밥과 여러 개의 반찬으로 차려진 우리네 밥상과 닮아 있다. 육류나 생선으로 조리한 메인 요리와 다양한 채소에 향신료를 넣어 볶거나 무쳐서 맛을 낸 반찬이 곁들여진다.

로컬 식당에 가면 뷔페처럼 여러 다양한 반찬이 진열되어 있고, 이 중 원하는 것을 선택하면 밥과 함께 제공된다. 이러한 주문방식은 음식 맛을 떠나 말이 통하지 않는 나라에서 최적의 효율을 발휘할 수 있는 시스템이 아닐 수 없다. 무엇보다 육류파든 채소파든 상관없이 자신이 선호하는 재료로 조리한 반찬을 직접 보고 원하는 대로 선택할 수 있으니 맛에 있어서 실패할 확률은 제로에 가깝다는 사실이 입맛을 한층 돋웠다.

미얀마에서 한국의 중고버스나 기차를 쉽게 볼 수 있다.
먹거리에 이어 교통시설 또한 여행을 편리하게 돕는 주요 여행 인프라 중 하나다. 도시 간 이동경로에 있어서 교통편만 쉽게 찾고 이용할 수 있다면 양질의 여행이 가능해진다. 하지만 이곳에선 큰 기대는 하지 않는 게 좋다. 미얀마 도로사정은 일반적으로 그다지 좋지 않다. 미얀마의 고속도로나 국도 등 전체 도로 가운데 포장도로는 약 20%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도시를 연결하는 기차나 버스 등이 운행하지만 그마저 사정이 수십 년 전으로 회귀한 것 같은 20세기 환경에 그친다.

이곳의 열차는 느리고 혼잡하며 불편하고 자주 지연된다는 사실을 기억해둘 필요가 있다. 때문에 도시 간 이동할 때 기차보다는 시외버스를 주로 이용했는데, 한두 번 덜컹거리는 비포장도로에 몸을 맡긴 뒤 모험을 동반한 이동에 익숙해져야 했다. 허나 재미있는 건, 미얀마에서 한국의 중고버스나 기차를 쉽게 마주칠 수 있다는 점이다. 한글이 그대로 남아 있는 버스나 기차에 올라,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서 과거로 돌아간 것 같은 특별한 경험은 어찌 보면 고물에 가까운 교통수단 덕분이었다.

(위) 바간 사원 가운데 일몰 명소로 꼽히는 쉐산도 사원 (아래) 바간에는 2,000개가 넘는 불교 건축물이 드넓은 들판에 흩어져 자리한다.
불교적 사유의 고대 도시, 바간

어느 것 하나 여행의 편의와 편리를 제공하지 않는 나라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이들이 미얀마 여행을 갈망하는 이유는 도시 ‘바간’ 때문일 것이다. 특히 부처님을 믿는 불교신자라면 바간 여행을 버킷리스트 우선순위에 올려놓지 않을까 싶다. 불교신자가 아닌 내게도 바간은 특별했다. 미얀마 여행의 하이라이트라는 데 크게 동의하지 않을 수 없을 만큼.

바간은 만달레이에서 남서쪽으로 약 200킬로미터 떨어진 미얀마 중부 지역에 위치한 고고학 유적지다. 2019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된 이곳은 세계에서 가장 규모가 큰 불교사원으로서, 수천 개의 사원과 탑, 수도원, 유적지가 밀집된 형태로 모여 있다. 불교 유적 대부분은 11세기와 12세기 사이에 지어진 것들이다. 각 건축물의 형태와 구조는 불교에서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가지며 그로 인해 모든 유적지가 영적인 장소로서 기능을 한다.

바간의 주요 사원에는 영어 안내판이 있다.
불교 예술과 건축의 탁월한 보고라고 일컬어지는 바간은 11세기에서 13세기 최초의 버마족 제국의 수도였던 전성기 바간 문명의 모습을 생생히 보여주는 증거물이다. 건축물 내부에 새겨진 벽화나 조각상 등을 통해 초기 불교 제국의 강렬하고 깊은 신앙심을 엿볼 수 있다.

당시 바간은 세계적인 불교 연구의 중심지로 군림했으며, 인도나 스리랑카, 태국, 크메르 제국 등지에서 많은 승려와 학생들이 방문해 불교 철학의 꽃을 피웠다. 1287년 몽골족의 침입으로 약탈당한 후 버마족 제국이 멸망에 이르렀지만 이후에도 바간은 계속해서 불교 연구 중심지로서 기능하며 번영을 누렸다.

(좌) 바간에서 가장 오래된 사원 중 하나인 부파야 사원의 파고다 (우) 사원마다 각기 다른 형태의 불교 건축 디자인을 살피는 재미가 쏠쏠하다.
현재 2,000개가 넘는 불교 건축물이 위치한 바간은 고고학 유적지 답게 지역 전체가 하나의 박물관 같다. 워낙 지역 규모가 넓은 데다 유적이 사방에 흩어져 있어 도보로 이동하는 것은 체력만 낭비할 뿐이다. 여행자의 발이 되어줄 이동수단이 반드시 필요하다.

지역 중심부에 자리한 현지 여행사를 통해 말이 이끄는 마차부터 자전거, 오토바이, 럭셔리한 여행용 차량 등 다양한 교통수단을 선택해 빌릴 수 있다. 나는 마을을 천천히 둘러보며 유적지를 방문하기 위해 자전거를 택했다. 대부분의 주요 사찰에는 영어 안내판이 있어 현지 가이드 없이 유적지를 방문하는 데 어렵지 않다.

바간에는 2,000개가 넘는 불교 건축물이 드넓은 들판에 흩어져 자리한다.
바간에서 가장 신성한 사원으로 꼽는 곳은 아난다 사원이다. 1091년 버마족 제국의 세 번째 왕인 캰짓타에 의해 건립된 이 사원은 부처님의 수제자 중 한 명의 이름을 따서 ‘아난다’라는 명칭이 붙은 것으로 전해진다. ‘무한한 지혜’를 뜻하는 사원에는 각기 다른 네 개의 방향을 바라보는 네 개의 불상이 모셔져 있으며, 이는 열반에 이른 부처님의 네 가지 형태를 상징한다.

수세기 동안 불교 철학이 화려하게 꽃피워온, 이토록 광활한 영적인 장소에서 일출과 일몰을 사수하는 일은 종교에 상관없이 영혼의 힘을 느끼는 경험을 안긴다. 개개인의 내적 삶과 자아성찰, 살아가는 행위가 붉게 떠오르고 저무는 해를 통해 치유로 연결되는 순간. 바간은 그렇게 영적이지만 종교적이지 않은 장소로서 여행자를 뜨겁게 안았다.

사원 꼭대기에서 일몰을 감상하고 있는 관광객들
물 위에서 살아가는 사람들, 인레 호수마을

멋진 자연 풍경은 그것 자체로 감탄을 자아내기 마련인데, 여기에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는 사람들의 일상을 마주하게 되면 감탄을 넘어서 존중과 존경이 가슴에 박힌다. 미얀마 산주에 위치한 거대한 담수호인 인레 호수는 그것 자체로 신비로운 자연의 풍광을 느끼기에 여념이 없다.

해발 875미터, 길이 22킬로미터, 너비 11킬로미터에 달하는 드넓은 호수에는 이를 둘러싼 네 개의 도시와 호숫가를 따라 늘어선 수많은 작은 마을이 형성되어 있고, 이곳 도시와 마을에는 인타족을 필두로 한 여러 다양한 소수민족이 수세기 동안 뒤섞여 살아온 삶의 터전이 자리한다.

인레 호수마을의 수상 시장 전경
나무와 대나무를 엮어 만든 기둥 위에 소박한 집에서 생활하는 이곳 사람들은 대부분 자급자족하는 농업과 어업에 종사하며 삶을 영위한다. 호수에서의 교통수단은 예나 지금이나 작은 나무 배가 전부다. 일반적으로 가정집마다 자가용이 주차되어 있듯 호수마을의 수상가옥에는 나무 배가 주차돼 있다. 이곳 어부들은 자신의 배를 타고서 독특한 방식으로 물고기 떼를 찾는다. 한 발로 원뿔형 그물을 들어 올린 채 남은 한 발로는 긴 나무 카누의 뱃머리에 얹어 노 젓기 방식을 구사한다.

두 다리가 따로 또 같이 각각의 역할을 훌륭히 해내는 모습은 바로 눈 앞에 펼쳐진 실제의 모습임에도 불구하고 재차 눈을 비비며 다시금 그 실체를 확인해야 했다. 마을사람들처럼 나무 배를 타고서 호수를 둘러보며 현지인들의 삶을 가까이서 관찰하는 것은 인레 호수를 즐기는 최고의 방법이 아닐까 싶다. 이곳 사람들은 생계를 위한 생선 잡이는 물론, 호수에서 빨래도 하고 목욕도 하며 일상의 대부분의 시간을 호수에서 보낸다.

(위) 나무 배를 타고 이동하는 마을사람들 (아래) 한 발로 노젓기를 하는 어부들의 모습은 인레 호수에서 볼 수 있는 진풍경이다.
나무 배를 빌려 타고 뱃사공이 안내하는 호수마을 곳곳을 다니는 투어 프로그램에 참여했다. 은세공 과정을 볼 수 있는 작업장부터 마을 아낙네들이 운영하는 면직물 수공예 직조 센터, 수상 정원, 수상 시장 등을 차례로 방문해 호수마을에서의 일상을 살폈다. 농업과 어업에 이어 이곳에는 전통 은세공이 예로부터 지역경제에 중요한 역할을 해왔다. 은은 호수를 둘러싼 언덕에 있는 광산에서 채굴되어 배를 타고 마을로 운반된다고 한다.

관광객을 환대하며 밝게 미소 짓는 주민들의 평화로운 얼굴, 하지만 그 이면에는 부족 간의 오랜 분쟁을 겪으며 고통을 받아온 복잡다단한 미얀마의 역사가 살아 숨 쉰다. 앞서 만달레이와 바간에서 보았던 찬란했던 일몰 풍경은 또 한 번 인레 호수를 배경으로 등장해 대미를 장식했다. 거대한 호수 위로 지는 석양을 바라보며 호수와 마을의 안녕을 빌었다.

(좌로부터)전통 은세공 과정을 볼 수 있는 작업장, 마을 아낙네들이 운영하는 면직물 수공예 직조 센터, 인레 호수마을의 수상 시장 전경
[글과 사진 추효정(여행작가)]

[본 기사는 매일경제 Citylife 제1019호(26.03.03)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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