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verseas Trip] 때묻지 않은 순수함 그대로...미얀마에서 여행의 본질을 고찰하다

미얀마 여행의 시작 지점으로 택할 수 있는 도시는 주로 양곤 혹은 만달레이, 두 곳이다. 이유는 항공편 때문이다. 물론 미얀마에 국제공항이 이 두 도시에만 있는 것은 아니지만, 인천발 미얀마행 항공편을 감안하면 이들 두 도시로 압축된다. 결과적으로 만달레이행을 택했다. 직항편이 있는 양곤 대신 환승을 감수하면서까지 만달레이를 여행의 출발점으로 계획한 건 오직 여행의 피로를 최소화하고 싶은 마음 때문.
그도 그럴 게 양곤 시내의 교통체증은 필리핀 마닐라, 인도네시아 자카르타 등과 앞다투며 아시아에서 손꼽힐 만큼 최악의 도시로 유명하기 때문이다. 아침저녁 출퇴근시간은 물론이고 하루 중 교통체증을 피할 수 있는 시간대가 거의 없을 정도라고 알려져 있다. 사실 미리 밝히자면, 만달레이에서 출발한 여정은 양곤에서 끝을 맺었는데 실제 도시의 교통체증은 듣던 대로 최악으로 치달은 상황이었다. 도착하자마자 하루라도 빨리 양곤을 떠나고 싶었을 만큼.

오늘날 만달레이는 이라와디 강변에 자리잡은 지리적 이점 덕에 미얀마 북부의 상업 중심지로 인식되며, 중국과의 무역과 교역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도시로 평가받는다. 또한 강변은 예나 지금이나 삶의 터전으로서 중요한 장소다.

만달레이의 명성은 불교 유적지에서도 살펴볼 수 있다. 시내 중심부 남쪽에 위치한 대규모 사원단지인 마하무니 사원이 그곳이다. ‘불교의 국가’로 잘 알려진 미얀마는 파고다(불교의 탑)와 사원, 계율 중심의 수행이 일상과 문화에 깊게 뿌리내린 나라로 유명하다.

이곳 본당에는 높이 3.8미터, 무게 6.5톤의 금박 청동 불상이 모셔져 있으며, 순례자가 이 청동 불상의 특정 부위를 만지면 질병이 치유된다는 전설이 전해져 미얀마는 물론 아시아 각지에서 불교 순례자들의 방문이 끊이지 않는다.

호숫물 위로 총 1,086개의 버마산 티크 나무 기둥이 뻗어 있는데 이는 초현실적인 풍경을 자아낸다. 일몰이 절정에 이른 시각, 호숫물에 오렌지색 물감을 한 방울 떨어뜨린 것 같은 신성한 빛이 다리 주변을 물들였다. 그렇게 ‘신성한 도시’의 환영식은 꽤 긴 여운을 남겼다.

미얀마는 태국이나 베트남 등과 비교하면 여행 정보나 인프라가 턱없이 부족한 실정이다. 그도 그럴 게 2021년 군사 쿠데타 이후 정치적으로 여전히 불안정한 상태가 지속되고 있기 때문이다. 국가 전역에 비상 사태 선포, 잦은 정권 교체, 여기에 시위가 끊이지 않고 있다는 점에 주의할 필요가 있다. 하지만 양곤이나 만달레이, 바간, 인레 호수 등 외국인 여행객을 대상으로 미얀마 정부에서 관광지역으로 지정한 도시나 장소는 비교적 안전하게 여행이 가능하다.
여느 동남아 국가와 비교하면 도시마다 여행시설이나 정보 등이 극히 제한적이지만, 그만큼 순수한 매력을 간직한, 도시나 시골 어디든 현지인들의 따뜻한 환대와 전통적인 생활 방식을 가까이서 보고 경험할 수 있다는 것은 미얀마 여행의 최대 장점이다. 중요한 건 ‘낯선 나라’라는 인식이 미얀마에 닿고 나면 얼마 안 가 사라진다는 사실이다.

로컬 식당에 가면 뷔페처럼 여러 다양한 반찬이 진열되어 있고, 이 중 원하는 것을 선택하면 밥과 함께 제공된다. 이러한 주문방식은 음식 맛을 떠나 말이 통하지 않는 나라에서 최적의 효율을 발휘할 수 있는 시스템이 아닐 수 없다. 무엇보다 육류파든 채소파든 상관없이 자신이 선호하는 재료로 조리한 반찬을 직접 보고 원하는 대로 선택할 수 있으니 맛에 있어서 실패할 확률은 제로에 가깝다는 사실이 입맛을 한층 돋웠다.

이곳의 열차는 느리고 혼잡하며 불편하고 자주 지연된다는 사실을 기억해둘 필요가 있다. 때문에 도시 간 이동할 때 기차보다는 시외버스를 주로 이용했는데, 한두 번 덜컹거리는 비포장도로에 몸을 맡긴 뒤 모험을 동반한 이동에 익숙해져야 했다. 허나 재미있는 건, 미얀마에서 한국의 중고버스나 기차를 쉽게 마주칠 수 있다는 점이다. 한글이 그대로 남아 있는 버스나 기차에 올라,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서 과거로 돌아간 것 같은 특별한 경험은 어찌 보면 고물에 가까운 교통수단 덕분이었다.

어느 것 하나 여행의 편의와 편리를 제공하지 않는 나라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이들이 미얀마 여행을 갈망하는 이유는 도시 ‘바간’ 때문일 것이다. 특히 부처님을 믿는 불교신자라면 바간 여행을 버킷리스트 우선순위에 올려놓지 않을까 싶다. 불교신자가 아닌 내게도 바간은 특별했다. 미얀마 여행의 하이라이트라는 데 크게 동의하지 않을 수 없을 만큼.
바간은 만달레이에서 남서쪽으로 약 200킬로미터 떨어진 미얀마 중부 지역에 위치한 고고학 유적지다. 2019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된 이곳은 세계에서 가장 규모가 큰 불교사원으로서, 수천 개의 사원과 탑, 수도원, 유적지가 밀집된 형태로 모여 있다. 불교 유적 대부분은 11세기와 12세기 사이에 지어진 것들이다. 각 건축물의 형태와 구조는 불교에서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가지며 그로 인해 모든 유적지가 영적인 장소로서 기능을 한다.

당시 바간은 세계적인 불교 연구의 중심지로 군림했으며, 인도나 스리랑카, 태국, 크메르 제국 등지에서 많은 승려와 학생들이 방문해 불교 철학의 꽃을 피웠다. 1287년 몽골족의 침입으로 약탈당한 후 버마족 제국이 멸망에 이르렀지만 이후에도 바간은 계속해서 불교 연구 중심지로서 기능하며 번영을 누렸다.

지역 중심부에 자리한 현지 여행사를 통해 말이 이끄는 마차부터 자전거, 오토바이, 럭셔리한 여행용 차량 등 다양한 교통수단을 선택해 빌릴 수 있다. 나는 마을을 천천히 둘러보며 유적지를 방문하기 위해 자전거를 택했다. 대부분의 주요 사찰에는 영어 안내판이 있어 현지 가이드 없이 유적지를 방문하는 데 어렵지 않다.

수세기 동안 불교 철학이 화려하게 꽃피워온, 이토록 광활한 영적인 장소에서 일출과 일몰을 사수하는 일은 종교에 상관없이 영혼의 힘을 느끼는 경험을 안긴다. 개개인의 내적 삶과 자아성찰, 살아가는 행위가 붉게 떠오르고 저무는 해를 통해 치유로 연결되는 순간. 바간은 그렇게 영적이지만 종교적이지 않은 장소로서 여행자를 뜨겁게 안았다.

멋진 자연 풍경은 그것 자체로 감탄을 자아내기 마련인데, 여기에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는 사람들의 일상을 마주하게 되면 감탄을 넘어서 존중과 존경이 가슴에 박힌다. 미얀마 산주에 위치한 거대한 담수호인 인레 호수는 그것 자체로 신비로운 자연의 풍광을 느끼기에 여념이 없다.
해발 875미터, 길이 22킬로미터, 너비 11킬로미터에 달하는 드넓은 호수에는 이를 둘러싼 네 개의 도시와 호숫가를 따라 늘어선 수많은 작은 마을이 형성되어 있고, 이곳 도시와 마을에는 인타족을 필두로 한 여러 다양한 소수민족이 수세기 동안 뒤섞여 살아온 삶의 터전이 자리한다.

두 다리가 따로 또 같이 각각의 역할을 훌륭히 해내는 모습은 바로 눈 앞에 펼쳐진 실제의 모습임에도 불구하고 재차 눈을 비비며 다시금 그 실체를 확인해야 했다. 마을사람들처럼 나무 배를 타고서 호수를 둘러보며 현지인들의 삶을 가까이서 관찰하는 것은 인레 호수를 즐기는 최고의 방법이 아닐까 싶다. 이곳 사람들은 생계를 위한 생선 잡이는 물론, 호수에서 빨래도 하고 목욕도 하며 일상의 대부분의 시간을 호수에서 보낸다.

관광객을 환대하며 밝게 미소 짓는 주민들의 평화로운 얼굴, 하지만 그 이면에는 부족 간의 오랜 분쟁을 겪으며 고통을 받아온 복잡다단한 미얀마의 역사가 살아 숨 쉰다. 앞서 만달레이와 바간에서 보았던 찬란했던 일몰 풍경은 또 한 번 인레 호수를 배경으로 등장해 대미를 장식했다. 거대한 호수 위로 지는 석양을 바라보며 호수와 마을의 안녕을 빌었다.

[본 기사는 매일경제 Citylife 제1019호(26.03.03)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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