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트럼프發 어둠 속에 갇힌 韓 경제…반도체 슈퍼 호황에 찬물?
‘쿠팡’ 고리 삼아 무역법 301조 조사 나서나…“예단하지 않아”
(시사저널=허인회 기자)

미 연방대법원의 상호관세 위법 판결에 한국 경제가 또다시 불확실성의 격랑에 빠져들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관세 강행을 위한 '플랜B'를 가동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트럼프 행정부는 일단 무역법 122조에 근거해 전 세계에 '15%' 관세를 부과하면서 150일의 시간을 벌었다. 이 기간 동안 추가적인 관세 체계 마련에 돌입할 것이란 관측이 우세하다. 자동차와 반도체가 '안보 위협'을 이유로 고율의 품목관세 타깃이 될 수 있는 데다, 이른바 '쿠팡 차별 논란'을 빌미로 한 불공정 무역 조사까지 거론되면서 우리 정부와 수출 기업의 셈법이 한층 복잡해졌다.
미 연방대법원은 지난 20일(현지시간) 트럼프 행정부가 의회의 위임 없이 국제비상경제권한법(IEEPA)을 근거로 광범위한 관세를 부과한 것은 위법이라고 판결했다. 이에 트럼프 대통령은 국제수지 불균형 대응에 최장 150일간 최대 15%의 관세를 부과할 수 있도록 규정한 '무역법 122조' 카드를 꺼냈다. 전 세계 국가에 15% 관세를 부과하며 일단 시간 벌기에 나선 셈이다. 무역법 122조에 근거한 관세 부과를 연장하려면 미 의회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 관세 정책에 부정적 여론이 팽배한 상황에서 오는 11월 중간선거를 앞둔 의회가 연장 요청을 받아들일 가능성은 낮다는 분석이다.
당장 한국 경제에 미칠 영향은 제한적이다. 한국에 부과한 상호관세(15%)의 효력은 사라졌지만 무역법 122조에 근거한 글로벌 관세(15%)가 오는 24일(현지시간)부터 발효될 예정이기 때문이다. 현재 한국 기업이 부담하고 있는 관세 수준이 달라지지 않을 것이란 의미다.
소폭이나마 이득을 볼 가능성도 존재한다. 지난 22일 한국무역협회는 보도참고자료를 내고 미국 관세 구조가 '최혜국대우(MFN) 관세 + 무역법 122조(15%)'로 전환됐다고 분석했다.
무역협회는 "기존에는 일본과 유럽연합(EU) 등 경쟁국들이 MFN 관세와 상호관세를 합산한 15%의 관세로, 자유무역협정(FTA) 체결국인 한국(15%)과 동일했다"며 "이번 관세 구조의 변화로 FTA로 인한 MFN 관세 면제 효과만큼의 가격 경쟁력 우위를 일부 회복할 여지가 있다"고 밝혔다.

대미 수출 1·2위 품목 모두 품목관세로?
문제는 향후 트럼프 정부가 꺼낼 대체 관세 수단이다. 스콧 베선트 재무부 장관은 "전체 세수 측면에서 대략 같은 수준으로 관세를 계속 징수할 수 있는 우리의 능력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라고 밝히며 관세 정책을 유지할 방침을 분명히 했다.
먼저 거론되는 것이 품목관세 부과 근거로 쓰는 무역확장법 232조의 확대 적용이다. 무역확장법 232조는 특정 품목의 수입이 국가 안보를 위협한다고 판단될 경우 미 상무부의 조사를 거쳐 대통령이 관세 등으로 수입을 제한할 권한을 부여한다. 관세율 상한도 없다. 이번 연방대법원 판결은 상호관세가 대상이라 품목관세와는 무관하다.
현재 트럼프 정부는 무역확장법 232조를 근거로 한국산 철강·알루미늄 제품과 자동차·차 부품을 품목관세로 지정, 각각 50%와 15%의 관세를 부과하고 있다. 지난달 26일 트럼프 대통령은 한국 국회의 대미투자 특별법 처리 지연을 이유로 자동차를 포함한 한국산 제품에 대한 상호관세율을 15%에서 25%로 인상하겠다고 엄포를 놓기도 했다. 상호관세는 무력화됐지만 자동차 관세 인상 가능성은 여전히 사정권에 있는 셈이다.
한국산 반도체를 품목관세로 지정할 가능성도 있다. 트럼프 정부는 지난 1월 반도체 및 파생상품에 대해 중국을 겨냥한 일부 품목에 대해서만 25% 품목 관세를 부과했다. 하지만 상황이 달라진 이상 반도체에 관세를 부과해 협상의 지렛대로 삼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관측이다. 이미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해 8월 "반도체에 100%의 품목관세를 부과할 것"이라고 언급하기도 했다. 한국 정부는 미국과의 무역 합의를 통해 반도체 관세에 대해 최혜국 대우를 약속받았지만 트럼프 정부의 특성상 다양한 시나리오에 대비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문제는 반도체마저 품목관세 목록에 오를 경우 우리 경제에 미칠 영향이 상당하다는 점이다. 2025년 연간 대미 수출액은 1228억7000만 달러로, 주요 수출 품목은 자동차(259억9000만 달러), 반도체(133억7000만 달러), 일반기계(123억2000만 달러), 자동차 부품(75억5000만 달러), 철강제품(75억 달러), 석유제품(54억1000만 달러) 등이다. 대미 수출액 규모의 30%에 해당하는 품목이 이미 고율 관세를 부담하고 있는 상황에서 수출액 2위 품목인 반도체에 관세가 부과된다면 타격이 적지 않을 것이란 예상이다. 다만 데이터센터 등 AI 인프라 구축을 위한 한국산 반도체 수요가 급증하고 있는 상황에서 반도체 관세 부과는 미 빅테크 기업에 부담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트럼프 정부도 신중을 기할 것이란 주장도 있다.

"쿠팡 차별" 근거로 무역법 301조 조사 돌입?
가장 큰 복병은 무역법 301조다. 무역법 301조는 미국 무역대표부(USTR)의 불공정 무역 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관세를 부과할 수 있으며, 무역확장법 232조와 함께 관세율에 특별히 제한도 없다. 이번 판결 이후 트럼프 정부는 무역법 301조 카드를 공개적으로 거론했다. 제이미슨 그리어 USTR 대표는 지난 20일(현지시간) "무역법 301조에 따라 여러 교역 국가들의 부당하고, 불합리한 차별적이고 부담을 주는 행위, 정책 관행에 대한 조사를 개시할 것"이라며 "주요 교역 상대국 대부분을 커버할 것으로 예상한다"고 밝혔다. 우선적인 조사 대상국은 중국과 브라질이다.
우려스러운 부분은 301조 조사 대상국에 한국도 포함될 가능성이 있다는 점이다. 트럼프 행정부는 한국 국회에서 발의된 온라인 플랫폼법과 최근 제정된 허위조작정보근절법(정보통신망법 개정안)을 비롯해 고정밀 지도 국외 반출 제한, 망 사용료 제도 논의 등을 미국 빅테크에 대한 차별 규제로 보고 있다. 이에 더해 쿠팡 지분을 보유한 미국 투자회사들이 쿠팡의 개인정보 유출 사건에 대한 한국 정부의 "부당하고 차별적인 행동"을 주장하며 트럼프 정부에 무역법 301조 조사를 청원했다는 점도 불안 요소다. 무역협회도 미국의 쿠팡 투자자들의 '301조 조사 개시'를 청원한 것을 언급하면서 "한국도 무역법 301조에 따른 잠재적 조사 대상이 될 가능성이 있어 대응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USTR이 무역법 301조 조사를 개시하면 상대국에 협의를 요청하게 된다. 협의에서 만족할 결과를 얻지 못하고, 상대국에 불공정한 무역 관행이 있다고 판단할 경우 관세 부과 등의 조치를 할 수 있다. 통상 조사 개시 12개월 이내 판단을 내리지만 무역법 122조의 관세 부과 시한이 5개월인 만큼 속도를 낼 가능성이 높다는 관측이다.
정부도 예의주시하는 모습이다. 김정관 산업통상부 장관은 23일 '미국 상호 관세 위법 판결 및 추가 관세 관련 민관 합동 대책 회의'에서 "미국 무역법 301조 조사 대상에 포함될 가능성에 대해서는 예단하지 않고 있다"면서 "그 대상이 되지 않도록 여러 통상 이슈를 관리해야 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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