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정동 도살장과 열우물 마을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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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샵아파트 위쪽 열우물경기장 맞은편에 있는 곳에 '십정동 도살장'이라고 불리는 곳이 있다.
예전에 이곳은 주안 갯골이 흐르던 곳이었지만 도시계획에 따라 간척사업으로 대지가 되고 주안산업단지가 들어서고 행정구역이 분리되기 전 1970년대 산업단지 위쪽과 지금의 열우물 경기장이 있던 사이에 도살장이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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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이곳은 주안 갯골이 흐르던 곳이었지만 도시계획에 따라 간척사업으로 대지가 되고 주안산업단지가 들어서고 행정구역이 분리되기 전 1970년대 산업단지 위쪽과 지금의 열우물 경기장이 있던 사이에 도살장이 생겼다. 사람들은 이곳을 십정동 도살장이라 불렀고 지금은 인천축산물시장으로 이름은 바뀌었지만 지금까지도 많은 이들에게 십정동 도살장으로 불리고 있어 행정구역의 착시현상이 있는 곳이다.
당시 주민 백남규씨의 증언에 따르면 1960년 후반 동인천 축현국민학교를 다니다가 5학년 때 동암국민학교로 편입해 십정동에서 학교생활을 시작했다며 말 문을 열었다. 도살장 주변에 식당도 많았고 아버지 손에 이끌려 소고기의 부속물을 먹으러 왔었던 기억과 이곳이 인천, 경인지역에 육우를 공급하는 허가된 장소였다고 한다. 그리고 당시 열우물 마을은 '윗열우물'과 '아랫열우물'로 나뉘었고 번듯한 집들이 없어 철거촌 또는 판자촌 형태로 형성되어 있었다며 합판이나 판대기로 덧대며 한가구, 두 가구가 모여 마을을 일구던 시절이었다고 한다.
자신이 고등학교 1학년이던 1974년 8월 15일 동암역이 개통되었지만 당시 그 주변은 논과 밭, 야산뿐이었고 복숭아밭과 포도밭이 펼쳐져 있었다. 양계장이 1공구부터 7공구까지 확장되었는데 처음 생긴 곳은 4공구가 가장 먼저 생겼으며 주변 일대에 약 120가구가 모여 살았다고 한다.
동암역 남광장 일대는 신동아아파트에서 동암중학교, 동암초등학교, 교통공사까지 '꽃밭골'이라 불리는 동네가 있었다. 주변은 논과 밭이었으며 인천교통공사와 명신여고 자리에는 돌산이 있었다. 이 돌산을 개발해 주안 4·5공단을 조성하는데 사용하고 그 대지에 지금의 마을이 형성된다.
염전 갯벌은 열우물 경기장 앞까지 이어졌고 지금의 열우물 숲 공원까지 염전이 펼쳐저 있었다. 염전이 가까이 있었지만 지하수에는 염분이 포함되어 있지 않아 개인 우물을 만들어 식수로도 사용하기도 하였고 열우물 경기장쪽에 마르지 않는 공동우물도 있어 그 주변 주민들의 식수로 활용되었다.
부평아트센터와 변전소가 있던 자리에는 과거 복숭아밭 포도밭이 있었다며 십정시장 쪽 바로 위 동네가 윗열우물마을과 아래쪽에 아랫열우물 마을이 있었다. 그 당시 동사무소가 있었는데 위치는 십정시장 바로 위에 있었고 추후 지금 더샵 맞은편으로 이전했다고 십정동의 모습을 그려주셨다.
주원고개에서 넘어오는 경인전철이 주안역으로 향할 때 차량 2대가 교행할 수 있는 비교적 넓은 비포장도로가 있었다. 이 도로는 더샵아파트 위쪽을 지나 강화도로 이어지는 파발마 길과 연결되었다. 부평아트센터 일대는 능선의 가장 낮은 부분으로 부평도서관에서 신동아아파트까지 함봉산의 정기가 낮은 능선으로 이어져 있는 돌산 위에 보안사가 있었는데 그 자리에는 현재 부평아트센터가 들어섰다고 한다.
백남규님의 증언을 들으며 1970년대 그 시절의 풍경이 눈 앞에 선하게 펼쳐졌다. 열우물마을의 판자촌, 복숭아밭과 포도밭이 펼쳐지던 야산, 동암역 개통 때의 비포장도로 그 모든 것이 지금의 더샵아파트와 열우물경기장, 부평아트센터로 이어지는 풍경과 교차하며 마치 흩어진 퍼즐 조각들이 하나씩 제자리를 찾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이름은 바뀌었지만 땅은 기억한다. 과거의 흔적이자 개발의 역사와 공동체의 변화를 전하는 증인으로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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