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세 부과·무효화 반복… 美 산업계 관세 정책 불확실성 최고조

유진우 기자 2026. 2. 23. 14: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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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입 단가 산정 비상
환급 소송·새 관세 부담 이중고
기업들 대규모 투자·채용 보류 확산

미국 연방대법원 관세 무효 판결 이후 미국 산업계가 전례 없는 혼란에 빠졌다. 하루아침에 막대한 관세가 사라졌다가, 곧바로 대체 관세가 더 높은 세율로 부활하는 사태가 벌어지면서 기업들은 수입 단가 산정에 심각한 비상이 걸렸다.

관세 부과와 무효화가 냉탕과 온탕을 오가듯 반복되자 실물 경제를 이끄는 시장 참여자가 느끼는 피로도는 이미 한계치를 넘어섰다. 종잡을 수 없는 관세 정책 불확실성은 고스란히 기업 경영 부담으로 이어지고 있다. 당장 원가 예측이 불가능해진 기업들은 신규 투자를 꺼리고 채용 규모를 대폭 줄이는 모습이다.

미국 워싱턴 DC 백악관 로즈가든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왼쪽)이 관세 관련 발언을 하는 동안 하워드 루트닉 미국 상무장관이 차트를 들고 있다. /연합뉴스

22일(현지시각) 주요매체들은 관세 장벽을 둘러싼 혼선이 다시 불거지면서 미국 경제 전반에 투자 심리 위축과 고용 둔화라는 암운이 드리우고 있다고 전했다. 당장 수입품에 의존해 제품을 만들거나, 파는 미국 기업들은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20일 연방대법원 무효 판결로 기존 관세가 폐지되며 비용 절감을 기대했던 기업들은 주말 사이 15% 보편 관세 청구라는 정반대 결과를 받았다. 당초 다른 법률을 동원해 10% 관세를 매기겠다던 예고가 소셜미디어 게시글 하나로 단숨에 15%로 뛰었다. 가격 변동에 민감한 일부 업계에서는 수입 단가 산정 자체가 무의미한 지경에 이르렀다는 불만까지 제기됐다.

해외에서 핵심 부품을 조달하는 제조업체나 마진율이 촘촘하게 짜인 유통업체는 판매 가격을 얼마나 올려야 할지 가늠조차 하지 못하고 있다. 장기적인 원가 구조를 확정할 수 없으니 당장 내년도 사업 계획 수립도 전면 중단된 상태다. 영국 BBC는 트럼프 행정부가 주도하는 변동성 큰 무역 정책이 세계 경제를 혼란에 빠뜨리고 기업과 소비자 모두에게 극심한 불확실성을 안겨주고 있다고 진단했다.

상당수 기업은 이번 관세 무효 판결을 근거로 과거 부당하게 납부한 막대한 규모 관세를 돌려받으려 안간힘을 쓰고 있다. 하지만 현실적인 장벽은 턱없이 높다. 정부가 국가 재정 손실을 막기 위해 관세 환급을 순순히 내어줄 리 만무하다. 폭스비즈니스는 해군연방신용조합 수석 이코노미스트 헤더 롱을 인용해 “정부가 환급을 막기 위해 전면적인 법적 다툼을 불사할 가능성이 크다”며 “특히 자금력과 정보력이 부족한 중소기업은 돈을 돌려받기 위해 엄청난 고통을 겪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환급을 위한 끝없는 소송 비용과 시간, 그리고 새롭게 부과된 15% 관세 부담까지 짊어지게 된 영세 수입업자들은 장기적인 경영 압박을 받는 처지에 놓였다.

미국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의 로스앤젤레스 항구. /연합뉴스

수입사 뿐 아니라 제조사 등 다른 부문에서도 널뛰는 정책 불확실성은 기업 활동을 급속도로 위축시키고 있다. 경영 환경을 합리적으로 예측할 수 없게 된 제조사들은 외부 지출을 끊고 내부 현금을 확보하는 데 사활을 걸고 있다. 공장을 새로 짓거나 노후 설비를 확충하려던 대규모 자본 지출 계획은 줄줄이 무기한 연기됐다. 당장 내일 관세율이 어떻게 바뀔지 모르는 불안정한 상황에서 섣불리 막대한 자본을 투입할 경영자는 드물다. 이러한 투자 심리 위축은 자연스럽게 고용 시장 한파로 직결된다.

일각에서는 대법원 판결 덕분에 일부 기업이 관세 환급 소송에서 승소해 뭉칫돈을 손에 쥐더라도, 이 환급금이 곧장 경제 전반 활력으로 이어지기는 어렵다고 분석했다. 폭스비즈니스는 JP모건 수석 이코노미스트 마이클 페롤리 분석을 인용해 전체 관세 환급금이 “1500억 달러(약 217조 )에서 최대 2000억 달러(약 289조 원)에 이를 수 있다”고 보도했다. 페롤리는 “이 막대한 자금이 제품 가격 인하를 통해 소비자에게 돌아가면 경제 활동이 크게 촉진될 것”이라면서도 “현재 극도로 불안한 시장 상황을 감안하면 기업들이 (환급금을) 고스란히 비상금으로 쌓아둘 가능성이 훨씬 크다”고 지적했다. 횡재성 자금이 실물 경제로 유입되더라도 투자나 고용으로 흘러가지 않고 금고에만 갇혀 있다면, 국가 경제 전체가 얻는 재정 부양 효과는 미미할 가능성이 크다. 관세 정책 혼선이 돈줄을 마르게 하고 성장을 지연시키는 악순환을 낳고 있다는 의미다.

내부에서 촉발된 정책 혼란은 미국이 가진 협상력과 정책 신뢰도에도 심각한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 한국과 일본을 포함해 유럽연합(EU) 등 미국 주요 동맹국들은 하루가 다르게 변하는 관세 위협에 대응하느라 막대한 외교력을 낭비하며 피로를 호소하고 있다. 영국 싱크탱크 채텀하우스 소속 데이비드 루빈 선임연구원은 “종잡을 수 없는 미국 정책 결정 과정이 세계 무대에서 무질서하게 비치면서, 결과적으로 중국에 유리한 국면을 조성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기업 투자 심리가 꺾이고 고용 시장마저 흔들리는 내부 위기 속에서, 관세 불확실성을 서둘러 진화하지 못하면 미국 경제는 장기 침체라는 대가를 치러야 할 것이라는 우려도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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