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관세 '표적'된 韓 디지털 정책…온플법·구글맵 사정권
"디지털 규제가 통상 핵심 돼…압박 있지만 전략적 협의해야"

(서울=뉴스1) 신은빈 기자 = 미국 트럼프 행정부가 상호관세 위법 판결에 대항해 보복성 관세를 부과할 근거가 되는 '무역법 301조' 조사에 나서면서 국내 디지털 관련 정책이 한미 통상협상의 핵심 의제로 부상했다.
미 정부 압박의 사정권에는 국회에 계류 중인 온라인 플랫폼 규제와 여러 차례 유보된 고정밀지도 반출 문제 등 아직 진행 중인 사안들이 상당수 포함됐다. 국내 디지털 정책과 관련한 미국의 압박 수위가 높아지고 있어 향후 이들 정책 방향의 불확실성이 더욱 커지고 있다.
"美 차별시 관세 부과"…'디지털 규제' 콕 집은 미국
23일 정보기술(IT) 업계에 따르면 제이미슨 그리어 미 무역대표부(USTR) 대표는 공식 성명을 통해 무역법 301조에 따라 주요 교역국의 불합리하고 차별적인 행위의 조사를 개시한다고 20일(현지시간) 밝혔다.
미국 무역법 301조는 1974년 제정된 법이다. 외국 정부가 미국 기업에 불합리하거나 차별적인 조치를 할 경우 이에 맞서 관세를 부과할 수 있도록 규정한다. USTR은 특히 미국을 향한 디지털 규제 역시 관세를 부과할 수 있는 조치 중 하나라고 명시했다.
그리어 대표는 "(무역법 301조에 따른 조사는) 미국 기술 기업과 디지털 상품·서비스의 차별, 디지털 서비스세 등 우려 사항을 다룰 것으로 예상한다"며 "조사를 통해 불공정 무역 관행이 존재하고 대응 조치가 필요하다고 판단될 경우 관세를 부과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번 조치는 트럼프 대통령이 미 연방대법원의 판결에 반발하면서 무역법 122조를 근거로 글로벌 관세를 15%로 인상한다는 발표와 함께 제시한 압박 카드다. 앞서 대법원은 트럼프 행정부가 국제비상경제권법(IEEPA)을 근거로 부과한 상호관세가 위법이라고 판단했고, 한국 등 세계 각국에 부과된 상호관세는 법적 효력을 상실했다.

지도반출·온플법·망사용료…韓 정책 압박 가능성
조사가 본격화되면 한국의 디지털 규제를 향한 미 정부의 압박 수위도 높아질 가능성이 있다. 미국은 전부터 망 사용료 제도화, 온라인 플랫폼 규제, 고정밀 지도 국외 반출 불허 등을 미국 기업을 상대로 한 차별 규제로 꼽으며 통상 압박과 연계하는 모습을 보였다.
지난달에도 주한미국대사관은 배경훈 부총리 겸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 앞으로 한미 조인트 팩트시트(공동 설명자료) 이행을 촉구하는 서한을 발송했다. 구체적인 내용은 밝혀지지 않았지만 주된 내용은 디지털 정책으로 미국 기업을 차별하지 말라는 것이다.
특히 구글과 애플이 우리 정부에 요청한 고정밀 지도 국외 반출은 여러 차례 유보된 후 현재 최종결정을 앞두고 있어 미국의 압박이 어떤 영향을 미칠지 주목된다. 지난해 반출 요청이 세 차례 유보된 구글은 5일 국토교통부에 정부 조건 일부를 수용한 보완서류를 제출한 후 정부 결정을 기다리고 있고, 애플 역시 서류 보완을 조건으로 지난해 12월 예정됐던 결정 시한이 올해로 연장됐다.
국내 통신업계가 구글·넷플릭스 등 대형 트래픽 사업자에게 요구하는 망 사용료 분담 문제는 2023년 넷플릭스와 SK브로드밴드가 전략적 제휴를 맺으며 일단락됐으나, 이재명 정부가 '망 이용대가 제도화'를 공약으로 제시하면서 법제화 논의가 재점화했다. 국회에서는 '망 무임승차 방지법'으로 불리는 전기통신사업법 개정안이 발의돼 논의 중이다.
온라인 플랫폼 규제 법안은 일명 '온플법'(온라인플랫폼법)으로 통칭되며 현재 국회에 관련 법안 다수가 계류돼 있다. 크게 독과점 등 시장 지배력 남용을 규제하는 '독점규제법'과, 입점업체와 플랫폼 간 불공정 거래를 금지하는 '거래공정화법' 2가지로 분류할 수 있다. 미국은 독점규제법이 구글·애플·메타 등 자국 빅테크를 규제할 수 있다는 이유로 해당 법안에 꾸준히 우려를 표하고 있다.

"통상환경 불확실성 커져…전략 산업으로 합의점 찾아야"
미국의 상호관세 위법 판결은 표면적으로는 한국에 부과된 관세 효력을 정지시키며 우리에게 유리한 구조로 보이나, 무역법 301조 조사 등 영향으로 실질적인 통상 환경은 더욱 불투명해졌다는 분석이 나온다.
전문가들은 디지털 규제를 둘러싼 미국의 통상 압박이 심화한 것은 맞지만, 정부가 다른 산업군에서의 협상력을 이용해 전략적으로 미국과 디지털 분야의 합의점을 찾아야 한다고 진단한다.
안정상 중앙대 커뮤니케이션대학원 겸임교수(더불어민주당 정보통신특별위원회 부위원장)는 "트럼프 행정부의 관세정책은 일정한 기준을 따르지 않아 불확실성이 크다"며 "우리 정부 역시 반도체 등 한국이 지닌 경쟁 자산을 활용해 디지털 분야에서 전략적으로 협상해야 한다"고 말했다.
허윤 서강대 국제대학원 교수는 "한국의 비관세장벽을 향한 미국 정부의 불만은 예전부터 쌓여 왔기에 디지털 규제 관세를 예고한 현 상황은 우리에게 불리하게 작용한다"면서도 "미국에 내줄 부분과 지킬 부분을 확실히 정해 디지털 정책의 명확한 방향성을 확립해야 한다"고 말했다.
bean@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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