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킨슨병, 심한 잠꼬대로 먼저 시작된다
한 가지보다 여러 증상 동반될수록 발병 위험 높아
(시사저널=노진섭 의학전문기자)
파킨슨병은 알츠하이머병에 이어 두 번째로 흔한 퇴행성 뇌질환이다. 뇌에서 몸의 움직임을 조절하는 신경전달물질인 도파민을 분비하는 신경세포가 점차 소실되면서 몸 움직임에 이상이 생기는 질환이다.
파킨슨병은 뇌간에 알파시누클레인이라는 단백질이 비정상적으로 뭉쳐 루이소체를 형성하면서 시작된다. 이 과정에서 수면 이상이나 후각 저하 같은 '비운동성 전구 증상'이 나타날 수 있다. 이후 병변이 중뇌로 퍼져 도파민 신경세포 기능이 떨어지면 손떨림 같은 '운동 증상'이 발생한다. 김기웅 분당서울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루이소체 병변이 대뇌피질로 확산하면 치매로도 이어질 수 있다. 파킨슨병 환자에게 치매가 동반될 가능성을 7명 중 1명꼴로 보고한 연구도 있다"고 설명했다.

"렘수면행동장애 시 신경과 진료 받아보길"
운동 증상이 진단될 시점에는 이미 도파민 신경세포가 상당 부분 소실된 상태다. 이에 따라 최근에는 운동 증상보다 먼저 생기는 '비운동성 전구 증상'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전구 증상이 모두 파킨슨병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지만, 질환의 초기 신호로 작용할 수 있다는 연구 결과들이 축적되고 있다. 의학적으로 밝혀진 비운동성 전구 증상으로는 렘수면행동장애, 후각 소실, 변비, 기립성 저혈압 등이 있다.
렘수면행동장애는 렘수면 중 꿈속 행동을 실제로 옮기는 상태를 말한다. 잠꼬대가 심해진 것처럼 보이며, 잠자리에서 일어나 말을 하거나 옆 사람을 주먹이나 발로 차는 등의 행동을 보인다. 렘수면행동장애 환자의 70~80%는 10~15년 이내에 파킨슨병으로 진행한다는 사실이 여러 연구로 밝혀졌다. 특히 50세 이상에서 렘수면행동장애가 있는 경우 발병 위험이 더 커지는 것으로 알려졌다.
또 국내 연구에서는 특발성 렘수면행동장애 환자가 치매로 진행하지 않더라도 기억력 등 인지 기능이 점차 저하될 수 있음이 확인됐다. 특발성 렘수면행동장애는 파킨슨병이나 치매 등 명확한 신경학적 원인이 아직 확인되지 않은 경우를 의미한다. 이처럼 렘수면행동장애는 국내외에서 파킨슨병이나 인지 기능 저하의 전구 증상으로 평가된다. 김기웅 교수는 "젊은 시절에는 렘수면행동장애가 없다가 고령에 새로 생긴 경우, 렘수면행동장애와 함께 가벼운 운동 증상이 동시에 나타나는 경우, 또는 가족력이 있는 경우에는 전문의 진료를 받아볼 만하다"고 조언했다.
후각 소실도 대표적인 파킨슨병 전구 증상으로 꼽힌다. 연구에 따르면 파킨슨병 환자의 약 90%는 운동 증상이 나타나기 수십 년 전부터 후각 저하를 경험한 것으로 알려졌다. 질병관리청 국립보건연구원의 최근 연구에서도 후각 기능 변화가 파킨슨병 환자의 인지 기능 저하 속도를 예측하는 지표로 활용될 수 있음이 확인됐다. 해외에서는 40세 이상 성인을 대상으로 후각 검사를 시행해, 증상이 없어도 향후 파킨슨병 위험이 높은 사람을 선별하려는 시도도 이뤄지고 있다.
렘수면행동장애나 후각 소실과 함께 변비가 나타나면 파킨슨병을 의심해볼 수 있다. 파킨슨병에서는 자율신경계 이상으로 만성 변비가 흔히 동반된다. 연구에 따르면 만성 변비는 파킨슨병 환자 3명 중 2명꼴로 나타나며, 일부는 발병 10~20년 전부터 변비를 경험한 것으로 보고됐다. 배변 횟수가 적은 사람은 파킨슨병 위험이 2~4배 높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다만 변비는 매우 흔한 증상이어서 단독으로 파킨슨병을 예측하는 지표로 활용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변비와 함께 렘수면행동장애나 후각 장애가 동반될 때 신경과 진료를 고려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대표적 증상 '서동·떨림·근강직·자세 불안정'
기립성 저혈압도 파킨슨병의 전구 증상으로 보고된다. 앉거나 누운 상태에서 일어설 때 혈압이 급격히 떨어지면서 어지럽거나 실신하는 증상이다. 탈수·저혈당·더위·노화 등으로 기립성 저혈압이 나타날 수 있지만, 뚜렷한 원인 없이 반복되거나 지속된다면 단순한 체력 문제로 보기는 어렵다. 연구에 따르면 설명되지 않는 기립성 저혈압 환자 4명 중 1명꼴로 추후 파킨슨병이 발생한 것으로 보고됐다. 다만 그 근거 수준은 렘수면행동장애나 후각 소실에 비해 낮다. 따라서 기립성 저혈압이 있다고 해서 반드시 파킨슨병으로 이어진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이런 전구 증상은 각각 다른 원인으로도 발생할 수 있어 파킨슨병을 진단하는 단독적 근거가 되지는 않는다. 다만 이러한 전구 증상이 하나보다 여러 개가 동시에 나타날수록 파킨슨병 위험은 커진다. 정석종 세브란스병원 신경과 교수는 "운동 증상이 나타나기 수년 전부터 렘수면행동장애나 후각 소실, 변비 같은 비운동 전구 증상이 먼저 나타날 수 있다. 특히 렘수면행동장애가 있다면 신경과 진료를 받아보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강조했다.
이와 같은 전구 증상을 보이며, 파킨슨병은 매우 느리게 진행한다. 결국 의사들이 임상적으로 진단할 수 있는 기준점을 넘어서는 시점에 이르러서야 진단이 가능하다. 그 기준점이 운동 증상이다. 대표적인 운동 증상은 서동, 떨림, 근강직, 자세 불안정이다.
서동은 행동이 전반적으로 느려지는 증상으로, 실제 근력 저하가 없더라도 팔다리 힘이 빠진 것처럼 느껴진다. 표정이 점차 무표정해지고, 목소리와 글씨가 작아지는 변화도 동반된다. 이런 증상은 매우 서서히 나타나기 때문에, 환자나 보호자가 인지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떨림은 주로 힘을 빼고 있을 때 팔·다리·턱에 나타나며, 의식적으로 움직이면 줄어드는 특징이 있다. 대개 한쪽 손에서 시작하며, 손으로 알약을 빚거나 동전을 세는 듯한 모습을 보인다. 근강직은 근육이 뻣뻣해지는 증상으로, 팔을 움직일 때 일부러 힘을 주는 듯한 저항이 느껴지며, 납으로 만든 파이프를 굽히는 것 같은 감각이 특징이다.
자세 불안정은 균형을 잡기 어려워 쉽게 넘어지는 증상으로, 병이 진행되면 몸을 앞으로 숙인 자세가 되고 팔 흔들림이 줄어들며 발을 끌거나 종종걸음으로 걷게 된다. 일부 환자는 발걸음을 떼기 어렵거나(보행 동결), 보행 속도가 갑자기 빨라졌다가 넘어지기도 한다. 낙상은 보통 발병 초기 3년 이내에는 나타나지 않으므로 균형 장애가 비교적 이른 시기부터 심하게 나타난다면, 파킨슨병 이외의 다른 질환이 원인일 수 있다.
의사는 이런 운동 증상을 평가하고 환자의 병력을 들은 후에 파킨슨병을 진단한다. 파킨슨병은 뇌질환이지만, 뇌 MRI(자기공명영상)에서 특징적인 이상이 보이지 않아, 진단하기 위해 MRI를 반드시 시행하지는 않는다. 다만 감별 진단을 목적으로 혈액검사와 뇌 MRI 등을 시행할 수는 있다.
파킨슨병은 확진을 위한 단일 진단법이 없고, 현재로서는 완치할 치료법도 없다. 다만 약물치료로 증상을 조절할 수는 있다. 발병 초기부터 도파민계 약물을 꾸준히 복용하면 손떨림이 줄고 보행이 자연스러워져 일상생활 유지에 도움이 된다. 김한준 서울대병원 신경과 교수는 "파킨슨병은 도파민 부족으로 증상이 나타나는 질환인 만큼, 치료에는 도파민과 유사한 효과를 내는 약물이나 체내에서 도파민으로 전환되는 레보도파 성분의 약물이 사용된다"고 설명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증상이 악화하는 만큼 약물 용량도 점차 늘려야 한다. 도파민 신경세포가 비교적 남아있는 초기에는 하루 2~3회 소량 복용만으로도 효과를 볼 수 있다. 그러나 신경세포 소실이 진행되면 약효가 갑자기 떨어지는, 이른바 '약효 소진' 현상이 나타난다. 레보도파를 복용한 환자 10명 중 4명은 4~5년 후 이러한 약효 소진을 경험하며, 이후에는 약을 3~4시간 간격으로 하루 여러 차례 복용해야 하는 경우가 많다.
스스로 병 진행 늦추는 유일한 방법은 '운동'
또 약물 농도가 높아지면서 몸이 저절로 움직이는 '이상운동증'도 나타날 수 있다. 약효 소진과 이상운동증은 삶의 질에 큰 영향을 미치므로, 이런 증상이 생기면 담당 의사와 상의해 약물 조절을 할 필요가 있다. 정석종 교수는 "파킨슨병에서는 수술치료를 초기부터 권하지 않는다. 약물치료만으로도 진단 후 3~4년간은 좋은 효과를 기대할 수 있으며, 보행 동결처럼 약물에 반응하지 않는 증상은 수술로도 개선되지 않는다. 또 초기 진단 후 2~3년 안에 비전형적 증상이 나타나 파킨슨병과 유사한 질환으로 진단이 바뀌는 경우도 있어, 일정 기간 약물치료를 하며 병의 경과를 관찰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수술(뇌심부자극술)은 약물 조절이 어려워지거나 운동 합병증이 뚜렷해지면 고려할 수 있다. 이는 시상하핵 등 특정 뇌 부위에 전극을 삽입해 전기 자극을 주는 방법으로, 약효 소진 현상과 이상운동증을 줄이고 파킨슨병 약물 용량을 줄이는 데 도움이 된다. 피부 절개 없이 시행하는 'MRI 영상 유도하 고집적 초음파 수술'도 있다. 표적 부위에 국소 열에너지를 가해 떨림 증상 개선을 기대할 수 있는 비침습적 치료법이다. 정석종 교수는 "수술은 파킨슨병을 완치하는 치료가 아니며, 약물로 가장 잘 조절되는 상태 이상으로 호전되지도 않는다. 수술 후에도 약물치료는 지속하되, 용량을 약 50% 줄이는 것이 목표"라고 설명했다.
환자 스스로 파킨슨병의 진행을 늦출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운동이다. 꾸준한 신체활동이 발병 위험을 낮추고 증상 진행을 완만하게 한다는 연구들이 보고돼 있다. 태극권, 요가, 걷기, 근력운동 등이 도움이 되는 것으로 알려졌으며, 유산소·근력·균형·유연성 운동을 병행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균형이 불안정한 경우에는 자전거 타기가 대안이 될 수 있고, 스트레칭은 약간의 불편함이 느껴질 정도로 시행하는 것이 좋다.
환자의 낙상과 사고 위험을 줄이기 위해 생활습관을 조정할 필요도 있다. 침대 높이는 무릎 정도로 맞추고, 낙상 위험이 큰 화장실에는 미끄럼 방지 매트와 손잡이를 설치하는 것이 좋다. 서동과 근육 강직으로 옷을 입고 벗기 어렵기 때문에 헐렁한 옷을 선택하고, 바지는 균형을 잃지 않도록 앉아서 입는 것이 안전하다. 음식은 미리 먹기 좋게 잘라두고, 손떨림이 심한 경우는 비교적 무거운 숟가락이 도움이 된다. 이동 시에는 지팡이나 보행기 등을 활용하고, 계단에서는 손잡이를 잡은 채 한 계단씩 천천히 오르내린다. 차량에 탈 때는 차를 등진 상태에서 엉덩이를 먼저 앉힌 뒤 다리를 돌려 타는 방법이 비교적 수월하다.
파킨슨병은 단기간에 호전되기 어려운 질환인 만큼, 인터넷에 떠도는 '무엇을 먹고 나았다'는 식의 경험담에 현혹되기 쉽다. 정석종 교수는 "파킨슨병과 관련한 궁금증은 인터넷 정보에 의존하기보다 담당 의사와 상담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온라인 정보는 부정확한 경우가 많고, 환자마다 약물 반응과 질환 진행 속도가 달라 다른 환자의 경험이 그대로 적용되지 않는다. 의사가 권하지 않은 건강보조식품은 대부분 근거가 부족하므로 구매나 복용을 자제해야 한다. 파킨슨병 관리는 규칙적인 약물치료와 운동, 균형 잡힌 식습관이 기본이라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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