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직 목사' 김형석 독립기념관장, 종교 편향 논란 속 결국 해임

최승현 2026. 2. 23. 0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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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간 뉴스 브리핑] 김형석 관장 해임
법원 "인천 퀴어 문화 축제 광장 사용 불허는 부당"
제시 잭슨 목사 별세
주간 뉴스 브리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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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기념관에서 예배 열었던 '현직 목사' 김형석 관장, 끝내 해임

종교 편향, 뉴라이트 역사관 등으로 논란을 빚은 김형석 관장이 결국 해임됐다. JTBC 갈무리

종교 편향, 역사 편향 논란에 섰던 김형석 독립기념관장이 2월 19일 해임됐다. 국가보훈부가 감사 후 김 전 관장의 비위 행위가 총 14가지에 달한다고 발표한 후 이뤄진 후속 조치다. 지난달 독립기념관 이사회가 해임 제청안을 가결한 후, 2월 19일 이재명 대통령이 이를 재가함으로써 김형석 전 관장은 1986년 개관 이후 40년 만에 최초로 해임된 관장이 됐다.

총신대 역사교육과 교수, 한민족복지재단 사무총장, 고신대 석좌교수 등을 지낸 김형석 전 관장은 현직 목사다. 그는 2015년 한국 사회에서 개신교가 욕먹는 이유와 이를 해결할 대안을 제시한 <한국교회여, 다시 일어나라>(새물결플러스)를 썼고, 2018년에는 5·18 북한군 개입설을 반박하고 민주화 운동에 앞장선 문용동을 조명하는 <광주, 그날의 진실>(나남)을 쓰기도 했다.

이때까지만 해도 사회적으로 큰 잡음을 일으키지는 않았던 그는 2024년 윤석열 정부 독립기념관장으로 임명되면서부터 논란에 휩싸였다. 그를 둘러싼 대표적 논란은 1945년 광복절을 부정하고 1948년을 '건국일'로 보는 '뉴라이트 사관'을 지녔다는 것이었다. 이후 김 전 관장의 역사관 및 과거 행적이 조명받기 시작했다.

임명 과정에서 홍범도 장군 육군사관학교 흉상 철거를 찬성하고, 일제강점기 조선인들의 국적이 '일본'이라고 주장하는가 하면, 조선의 독립이 연합국의 승전 때문이었다는 등 독립기념관장으로서 부적절한 역사관이 여러 언행에서 드러났다. 논란이 커지자 광복회 등 독립유공자 단체는 2025년 광복절 경축식을 보이콧했다. 야당도 경축식 불참을 선언하면서 독립기념관 광복절 경축식이 개관 사상 처음 취소되는 사태가 벌어졌다.

김 전 관장은 독립기념관장 임명 이후에도 여러 논란을 일으켰다. 특히 14가지 비위 행위 중 대표적인 것이 '종교 편향'이다. 독립기념관 안에서 찬송가와 기도 소리가 울려 퍼진 것인데, 김 전 관장은 기독교인들을 불러 종교 활동을 하고, 유물 원본을 보관하는 수장고를 열어 이들에게 보여 주기도 한 것으로 드러났다.

뿐만 아니라 이 사건으로 국가보훈부 조사를 받고 나서도 또 예배를 열기도 했다. JTBC 보도에 따르면 2025년 12월 6일, 독립기념관은 비상계엄을 "구국의 결단"이라고 치켜세운 박귀환 목사, 윤석열 전 대통령 대선 후보 시절 안수기도를 했던 오정호 목사 등을 불러 예배를 열었다. 독립기념관 측은 4대 종단을 한 차례씩 불러 여는 행사의 일환이었다고 해명했지만, 개막식을 빙자한 종교 행사라는 지적이 쏟아졌다. 김 전 관장은 이 예배에서 "1년 동안 말도 못 하는 고난이 닥쳐왔다", "목사의 사명은 진리를 사수하기 위해서 목숨을 내어놔야 되는 것이 그 사명"이라는 표현을 쓰기도 했다.

끝내 해임안이 재가되자 김형석 전 관장은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TV조선에 따르면 김 전 관장은 변호사를 선임해 가처분 소송 등 법적 대응을 준비 중이다. 자신은 잘못한 게 없다는 논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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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적 갈등 초래한다"며 퀴어 축제 막은 인천시
법원 "참가자들이 갈등 유발하는 것 아냐"

2023년 부평역 앞에서 열린 제6회 인천 퀴어 문화 축제. 뉴스앤조이 나수진

지난해 인천 퀴어 문화 축제 장소 사용을 불허했던 인천시 처분이 부당하다는 법원 판단이 나왔다. <중앙일보> 보도에 따르면 인천지방법원은 인천퀴어문화축제조직위원회가 인천시를 상대로 낸 '사용 신고 수리 거부 처분 취소소송'에서 원고 승소 판결을 2월 13일 내렸다.

조직위는 2025년 8월 인천애뜰(인천시청 앞 광장)을 사용하겠다고 신고했다. 시청 앞 광장은 원칙적으로 누구나 이용할 수 있으나, 인천시는 '공공 질서 유지 어려움 및 사회적 갈등이 예상되는 경우'에 해당한다며 신고를 수리하지 않았다. 조직위는 이 불수리 처분이 부당하다고 보고 집회를 강행했고, 인천시는 '국유지를 무단 점유했다'며 변상금 200여 만 원을 부과했다. 행사 후 조직위는 불수리 처분 및 변상금 부과가 부당하다며 행정소송을 제기했다.

소송 과정에서 인천시는 2018년 동인천역 북광장에서 열린 제1회 인천 퀴어 문화 축제에서 몸싸움이 벌어지는 등의 문제가 있었다며 '퀴어 축제를 둘러싼 사회적 갈등'이 실존한다고 주장했지만, 법원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법원은 "2018년에 발생한 충돌은 퀴어 문화 축제를 반대하는 단체들이 주최한 집회가 공공 질서와 선량한 풍속을 해치고 사회적 갈등을 초래한다는 점을 뒷받침할 뿐"이고 했다.

이어 "설령 이 사건 축제로 인해 공공 질서 유지의 어려움 및 사회적 갈등이 예상되는 경우였다고 볼 수 있더라도, 공공 질서 유지의 어려움 및 사회적 갈등을 유발시키는 주체는 이 사건 축제의 주최자 내지 참가자가 아니"라고도 덧붙였다. 갈등은 퀴어 문화 축제 반대 세력, 즉 보수 개신교계가 일으켰다는 지적이다.

기독교세가 강한 인천에서는 퀴어 문화 축제가 벌어질 때마다 교계를 중심으로 반대 집회가 강하게 벌어진다. 이 때문에 인천시청과 구청, 산하 기관들은 민원 눈치를 본다. 그래서 매년 조직위원회는 이곳저곳을 옮겨 다니며 축제 장소를 찾아 왔다. 동인천역 북광장, 남동구 중앙교통공원, 부평역 광장 등을 사용하겠다고 신청할 때마다 동구청, 인천대공원사업소, 부평구청 등은 모두 신고를 받아 주지 않았다.

법원의 이번 판결로 인천 퀴어 문화 축제가 행사 장소를 온전히 선정할 수 있으리란 기대감도 나온다. 인천퀴어문화축제조직위원회는 2월 19일 성명에서 "이번 재판부의 판결은 평등을 요구한 8회 인천퀴어문화축제 조직위와 참가자들에 대한 응답"이라며 "조직위는 앞으로도 성소수자뿐만 아니라 사회의 가장자리로 밀려난 사람들, 권력이 배제하고 지워 버리려는 존재들과 함께 축제를 열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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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소중한 사람입니다"
미국 민권운동 큰 산 제시 잭슨 목사 별세

1960년대부터 40여 년간 민권운동의 핵심 인물 중 한 명이었던 제시 잭슨 목사가 별세했다. 사진 출처 위키미디어공용

미국 민권운동의 큰 산으로 불렸던 제시 잭슨 목사가 84세를 일기로 지난 2월 17일 별세했다. 잭슨 목사의 부고는 전 세계 유력 매체들에게서 비중 있게 보도됐다.

잭슨 목사는 1941년 미국 남부 사우스캐롤라이나주에서 태어났다. 그는 1964년 시카고신학교에 입학 후, 흑인 시위대가 구타당하는 장면을 목격한 후 민권운동에 뛰어들었다. 이어 마틴 루터 킹 목사를 만나 그의 측근으로 활동했고, 1968년 킹 목사가 암살당해 세상을 떠날 때도 그의 곁을 지켰다.

1970년대 들어 그는 미국과 세계 전역을 누비며 운동을 계속했다. 사람들, 특히 미국 사회에서 비주류로 밀려나 있던 이들에게 "나는 소중한 사람입니다"(I am somebody)라는 구호로 자긍심과 존엄을 고취하면서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1980년대에는 무지개연합(Rainbow PUSH Coalition)을 창설하고 정치에 뛰어들었다. 1984년에는 미국 대선 민주당 경선에 출마해 320만 표를 얻으며 3위를 기록해 돌풍을 일으켰고, 4년 후인 1988년 대선 경선에도 출마해 4년 전보다 두 배 많은 690만 표(29%)를 얻으며 2위를 기록했다. 결국 대선 후보로 선출되는 데는 실패했지만, 그가 닦아 놓은 길은 2008년 미국 역사상 최초의 흑인 대통령을 배출하는 데 지대한 공헌을 했다고 평가받는다.

정열적인 연설가였던 만큼 생전에 많은 어록을 남겼다. 특히 대선 후보 경선 과정에서 "나는 슬럼가에서 태어났지만, 슬럼이 내 안에서 태어나지는 않았다"(I was born in the slum, but the slum was not born in me)는 말로 유명해졌다. 연설을 마무리하며 외친 "희망을 잃지 마십시오"(Keep hope alive)라는 구호는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대선 캠페인 때도 구호로 사용됐다.

개인사 문제도 있었다. 마틴 루터 킹 암살 당시 그는 '맏상주'를 자처하며 킹 목사의 마지막을 지킨 사람이라고 주장했고, 암살 이튿날 킹 목사의 피가 묻은 스웨터를 입고 나와서 후계자를 자처해 동료들의 공분을 사기도 했다. 2001년에는 자신이 설립한 단체에서 일하던 여성과의 사이에서 혼외자를 낳기도 하는 등 도덕성 문제도 일으켰다. 그의 아들 잭슨 주니어가 선거 자금 75만 달러를 유용해 징역 2년 6개월을 선고받은 데 대해 바이든 대통령에게 아들의 사면을 요청했다가 거절당하는 일도 있었다.

잭슨 목사 일대기를 정리한 <뉴욕타임스>는 "20세기의 마지막 몇십 년간, 민주당의 정체성을 정의하는 진보적 비전을 명확히 표현한 인물"이라고 평가했다. 잭슨 목사의 비전은 민주당 진보 진영에 남아 있으며, Black Lives Matter 운동에도 영감을 줬다고도 했다.

한국과의 인연도 있었다. 1986년 방한해 비무장지대를 둘러보고, 당시 가택 연금 상태였던 김대중 총재를 만났다. 2018년에도 방한해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인권센터(현 한국교회인권센터)에서 한반도 평화의 중요성에 대해 강연하기도 했다.

침례교 목사였던 그는 젊은 시절 많은 신앙인들에게도 희망과 꿈을 심어 주었다. 내슈빌코이노니아교회 미카 에드먼슨 목사는 <크리스채너티투데이>와의 인터뷰에서, 제시 잭슨 목사를 대표하는 구호 "나는 소중한 사람입니다(I am somebody)"가 자신을 비롯한 많은 사람에게 큰 영향을 미쳤다고 평가했다. 1972년 TV 프로그램 세서미스트리트 등에서 아이들과 낭독해 유명해진 이 시는 '내가 비록 가난할지라도, 어릴지라도, 실수를 할지라도 나는 소중한 사람이며, 존중받아야 하고 보호받아야 하는 하나님의 자녀'라는 내용으로 구성돼 있다. 에드먼슨 목사는 "나는 소중한 사람"이라고 함께 외치는 장면이야말로 인간의 존엄을 잘 드러내고 성경적 진리를 가르치는 장면이었다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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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Complicated Legacy of Jesse Jackson (<크리스채너티투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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