급한불 끄자 이젠 '단순조립은 안돼!' [여의도 Pick!]
선소연 2026. 2. 23. 08:56
“여기서 팔고 싶다면, 여기 투자하라.”
K-방산의 최대 수출 시장 중 하나로 떠오른 폴란드가 무기 도입 조건으로 기술 이전과 현지 투자를 전면에 내걸 전망입니다. 폴란드에서 더 이상 완제품만 대량 구매하는 ‘큰손 고객’에 머물지 않겠다는 선언이 나온 건데요.
17일 콘라트 고워타 폴란드 국유자산부 차관은 블룸버그통신과의 인터뷰에서 “폴란드는 단순 조립라인을 들여오는 수준에는 동의하지 않겠다”고 밝혔습니다. 그러면서 “우리는 기술 이전이 필요하다. 글로벌 공급망의 일부가 되어야 한다”고 못박았았는데요. 완제품만 팔고 떠나는 모델은 이제 사지 않겠다는 의미입니다.
이 같은 기조 변화의 배경에는 자성이 깔려 있습니다. 폴란드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국방비를 국내총생산(GDP)의 약 5% 수준까지 끌어올렸죠. NATO 회원국 중에서도 최상위권입니다. 향후 5년간 1조 즈워티, 우리 돈 약 406조원(2800억 달러)에 달하는 예산을 국방에 투입할 계획입니다. 여기에 EU의 SAFE 프로그램 자금까지 더해지면 규모는 더 커집니다.
문제는 이 막대한 자금의 상당 부분이 미국과 한국 등 해외 무기 구매에 쓰였다는 점입니다. K2 전차, K9 자주포, 패트리엇 방공체계 등 첨단 무기들이 빠르게 도입됐지만, 폴란드 국내 산업에 남는 몫은 제한적이었다는 비판이 커졌습니다. 골로타 차관은 과거 미국산 무기 구매를 두고 “일종의 안보 수수료”였다고 표현했습니다. 미국의 안보 우산 아래 머물기 위해 기꺼이 지불한 비용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동시에 그는 그 접근법이 폴란드를 “순진한 고객”으로 만들었다고 인정했습니다.
이제는 다릅니다. 폴란드는 폴란드 국영 방산그룹 PGZ를 중심으로 산업 역량을 키우겠다는 전략입니다. 탄약부터 첨단 군사 시스템까지 약 70개 회사를 거느린 PGZ는 EU의 1500억 유로 규모 SAFE 프로그램의 주요 수혜자로 거론됩니다. 유럽 내 공동 조달과 산업협력을 촉진하는 이 구조 안에서, 폴란드는 단순 구매자가 아니라 공동 생산자, 공동 개발자로 올라서겠다는 계산입니다.
실제 움직임도 시작됐습니다. PGZ는 체코 방산기업 CSG와 방어용 지뢰지대 신속 구축 시스템 공동 생산 계약을 체결했고, 미국산 패트리엇 체계용 이동식 통신센터를 생산하고 있습니다. 폴란드-핀란드 위성기업과는 이동식 정찰 플랫폼도 개발 중입니다. 단순 수입이 아니라, 협업과 기술 축적을 통한 ‘내재화’가 핵심입니다.
폴란드는 대규모 전차·자주포 계약을 통해 한국 방산 기업들의 유럽 진출 교두보 역할을 해왔습니다. 그러나 앞으로는 단순 납기 경쟁이나 가격 경쟁만으로는 부족할 수 있습니다. 현지 생산 비중, 기술 이전 범위, 공급망 편입 구조까지 포함한 ‘산업 패키지’가 요구될 가능성이 큽니다.
더 큰 변수는 유럽의 구조적 변화입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방위비 압박과 우크라이나 전쟁 장기화 속에서, 유럽은 자체 방산 역량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급선회하고 있습니다. SAFE 프로그램이 본격화되면 역내 공동 생산·공동 개발 체계에 들어오지 못한 기업은 진입 장벽이 크게 높아질 수 있습니다. 폴란드는 바로 그 변곡점에서 유리한 위치를 선점하려 하고 있습니다.
결국 폴란드의 입장은 명확합니다. “새로운 규칙에 따라 플레이할 준비가 되어 있다면 환영한다. 그렇지 않다면 우리는 다른 파트너와 일할 것이다.” 향후 폴란드 방산 사업은 가격과 납기뿐 아니라 현지화 수준과 공급망 편입 여부가 주요 판단 기준이 될 전망입니다.
선소연 머니투데이방송 MTN 인턴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