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소중립 ‘1호’산단...구미가 풀어야 할 1302억 원의 방정식

박치현 대기자 2026. 2. 23. 0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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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과학전문기자 컬럼]
산업단지는 바뀔 수 있는가

제조업 집적지에서 에너지 전환 실험장으로

경북 구미국가산업단지는 한국 제조업의 성장 궤적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전자와 디스플레이, 기계와 금속 가공 기업들이 집적됐고, 값싸고 안정적인 전력을 외부 계통에서 공급받으며 대량 생산 체계를 구축해왔다. 이곳에서 에너지는 생산의 대상이 아닌 소비의 투입 요소에 불과했다.
구미산업단지가 '대한민국 1호 탄소중립산단'으로 지정됐다. 사진은 독자 이해를 돕기 위한 이미지. (사진 클립아트코리아)/뉴스펭귄

2025년, 구미산업단지가 '대한민국 1호 탄소중립산단'으로 지정됐다. 5년 동안 1302억 원이 투입된다. 30MW 규모 태양광 설비와 50MWh 에너지저장장치, 지능형 전력거래 시스템, 사용 후 배터리 재자원화 인프라가 단계적으로 구축된다. 외부에서 전력을 사다 쓰는 공간에서 일부를 내부에서 생산하고 저장하고 거래하는 공간으로 전환하겠다는 구상이다.

30MW 태양광이 보여주는 현실

30MW 태양광 발전소는 햇빛이 가장 강한 순간에만 30메가와트를 생산한다. 이는 최대출력일 뿐 연중 계속 유지되는 값은 아니다. 연평균 이용률 15%를 적용하면 연간 발전량은 39GWh, 즉 3,900만 kWh 수준이다. 1만 가구의 1년 전력 사용량에 해당한다.

구미산단의 연간 전력 소비량은 3TWh(30억 KWh) 수준이다. 3,900만 KWh는 전체의 1.3%에 해당한다. 30MW 태양광이 3만 가구가 동시에 쓸 수 있는 출력을 자랑해도 산업단지 전체 소비 구조에서는 1% 남짓을 담당하는 전원에 머문다.

그렇다고 이 발전소가 무의미한 것은 아니다. 탄소 배출 저감에 기여하고, 여름철 냉방 수요가 정점에 달하는 낮 시간대에는 전력망 부담을 덜어준다. 다만 글로벌 에너지 분석기관들의 연구에 따르면 태양광이 화석연료 발전의 가동 패턴에 본격적인 영향을 미치기 시작하는 지점은 전체 전력 믹스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5%를 넘어설 때다. 1% 수준의 개별 사업으로는 전력 구조 자체를 흔들기 어렵다.

시간대 불일치와 저장장치의 한계

산업 공정의 대부분은 24시간 가동된다. 전자, 기계 업종이 밀집한 구미의 특성상 낮과 밤의 부하 차이는 크지 않다. 그러나 태양광은 해가 떠 있는 시간에만 전력을 공급한다. 정오 무렵 출력이 정점에 도달하지만 해가 지면 생산이 중단된다.

이런 시간대 불일치를 해소하기 위해 50MWh 규모의 에너지저장장치(ESS)가 도입된다. 낮 시간대 남는 전기를 저장했다가 밤사이 공정에 공급하는 방식이다. 50MWh ESS는 전력을 50메가와트로 1시간 쓰거나, 25메가와트로 2시간 쓰는 양을 저장할 수 있다는 뜻이다. 저장용량 50MWh를 출력 30MW로 나누면 1.6이 나온다. 이는 태양광이 최대출력인 30MW로 계속 발전한다고 가정할 때 1시간 36분 동안 공급할 수 있는 전력량이라는 의미다. 따라서 ESS는 밤새도록 장시간 전력을 공급하는 설비라기보다, 짧은 시간 동안의 출력 공백이나 피크를 완화하는 용도에 가깝다.

LNG 발전소가 남긴 방정식

구미 산업5단지에 건설 중인 500MW LNG 발전소가 준공되면 구미 지역의 전력 자급률은 9%에서 38%로 상승한다. 분산에너지 확대라는 정책 방향과 부합하며, 송전 손실 감소와 공급 안정성 개선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그러나 LNG는 화석연료다. 가스복합발전의 온실가스 배출계수는 kWh당 평균 400g의 이산화탄소에 달한다. 연간 4TWh의 전력을 생산하면 160만 톤의 이산화탄소가 대기로 배출된다. 이 발전소는 분산에너지 체계 구축이라는 현재 과제와 탄소중립이라는 미래 목표 사이에 놓여 있다. 장기적으로 수소 혼소 발전이나 탄소포집저장 기술이 결합되지 않는다면, 전력 자급률 38%는 에너지 안보의 진전임과 동시에 해결해야 할 탄소 방정식을 남긴다.

탄소가 재편하는 무역 질서

유럽연합은 2026년부터 탄소국경조정제도(CBAM)를 본격 시행한다. 철강, 시멘트, 알루미늄, 비료, 전기, 수소 등 탄소 집약적 제품을 EU로 수출할 때 제품 생산 과정에서 배출된 탄소량만큼 비용을 부과하는 제도다. 

영국은 2027년부터 자체 제도를 시행할 예정이며, 미국은 청정경쟁법을, 캐나다와 호주도 유사한 제도 도입을 검토 중이다. 기존의 자유무역 질서는 탄소를 축으로 재편되는 블록 경제 체제로 전환하고 있다.

글로벌 기업들의 요구는 더 직접적이다. 애플, 구글, BMW 등은 협력사에게 재생에너지 100% 사용을 의미하는 RE100 참여를 거래 조건으로 요구한다. RE100은 자발적 친환경 선언에서 선택할 수 없는 생존 조건으로 성격이 바뀌었다.

구미산단의 전자와 기계 기업들은 CBAM의 직접 적용 대상 품목을 생산하지 않더라도 이 압력에서 자유롭지 않다. 이들이 공급하는 부품과 소재를 납품받는 완성품 업체들이 탄소 규제와 RE100 요구에 직면하기 때문이다. 공급망 전체로 확산되는 탄소 압력은 구미산단의 제조 현장까지 연결된다. 탄소 배출량은 더 이상 기업의 내부적 환경 지표가 아니다. 수출입 관세를 결정하는 변수이자 거래처 선정의 기준이 되고 있다.
지난 2025년 9월 열린 구미국가산단 내 수출기업 현장간담회 모습. 독자 이해를 돕기 위한 이미지. (사진 산업통상부)/뉴스펭귄

폐배터리가 자원이 되는 순환경제

구미 에너지 전환의 또 다른 축은 배터리 재자원화 산업이다. 국제에너지기구(IEA)에 따르면 향후 10년간 100만 대 이상의 전기차에서 배터리가 퇴출될 것으로 전망된다. 구미는 사용 후 배터리를 에너지저장장치로 재사용하거나 니켈, 리튬, 코발트 등 핵심 광물을 회수해 다시 산업에 투입하는 순환경제 구조를 구축하겠다는 구상이다.

글로벌 시장조사기관에 따르면 2025년 3억 5980만 달러 규모였던 배터리 재활용 및 중고배터리 시장은 연평균 20.1% 성장이 예상된다. 유럽에서는 2027년부터 디지털 배터리 여권 제도가 시행돼 배터리의 상태와 탄소 발자국, 재활용 함량을 투명하게 공개해야 한다. 재자원화는 선택이 아닌 필수 조건이 되고 있다.

그러나 경제성은 두 가지 변수에 좌우된다. 첫째는 원자재 가격이다. 니켈, 리튬, 코발트 가격이 하락하면 재활용 사업의 수익성도 함께 떨어진다. 둘째는 회수 기술의 효율성이다. 습식 제련, 건식 제련, 직접 회수 등 다양한 방식이 경쟁하고 있으며, 회수율과 비용 구조에 따라 사업성이 결정된다.

북미와 유럽의 선도 기업들은 이미 OEM 업체와 장기 계약을 맺고 폐쇄형 공급망을 구축하고 있다. 미국 리드우드 머티리얼즈는 도요타와 협력해 폐배터리 수거부터 양극재 공급까지 전 과정을 통합했다. 유럽 노스볼트는 포툼, 하이드로볼트와 협력해 배터리 팩 해체에서 블랙매스 생산, 금속 회수까지 전체 공정을 상업적 규모로 운영 중이다.

중고 배터리는 통상 초기 용량의 70~80% 수준까지 성능이 유지돼 ESS나 백업 전원으로 재사용이 가능하다. 그러나 배터리 상태를 정확히 진단하고 안전성을 보증할 수 있는 체계가 아직 표준화되지 않았다는 점이 과제로 남아 있다.

해외 산업단지의 탈탄소 실험이 말하는 것

덴마크 칼렌보르그 산업단지는 세계 산업공생의 교과서로 불린다. 정유사, 제약사, 발전소, 시멘트 공장 등 25개 기업이 폐열과 부산물을 원자재와 에너지로 교환하는 구조를 구축했다. 발전소에서 나오는 증기는 정유사와 제약사의 공정에 공급되고, 정유사에서 발생하는 황은 제약 원료로 전환된다. 기업 간 폐기물 거래로 연간 1600만 달러의 비용을 절감하고 지하수 190만 톤, 원유 2만 톤을 절약한다. 이 단지가 25년에 걸쳐 점진적으로 형성된 네트워크라는 점은 중요한 시사점을 남긴다.

독일 베를린의 EUREF 캠퍼스는 5.5헥타르 부지에 150개 기업과 연구기관이 모여 재생에너지와 저장장치, 전기차, 건물 에너지를 하나의 시스템으로 통합했다. 2014년부터 이미 독일 정부가 2045년으로 설정한 기후 목표를 조기 달성한 것으로 평가된다.

영국 험버 산업클러스터는 VPI와 필립스66이 협력해 연간 330만 톤의 이산화탄소를 포집하는 탄소포집저장(CCS) 시설을 2028년까지 가동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포집된 탄소는 북해의 고갈된 가스전에 저장된다. 수소 생산과 활용을 결합해 철강, 정유 등 탄소 집약적 산업의 근본적 전환을 모색 중이다.

이들 사례의 공통점은 장기적 정책 일관성과 대규모 민관 투자의 결합이다. 칼렌보르그는 기업들의 자발적 협의체를 중심으로 5년 단위 계약을 갱신하며 안정성을 확보했다. EUREF 캠퍼스는 2008년부터 시작된 장기 프로젝트다. 험버 프로젝트는 영국 정부의 2030 탄소 포집 목표의 5분의 1을 단일 사업으로 담당할 만큼 정책적 지원이 집중됐다.

제도와 데이터가 결정할 전환의 성패

구미산단의 에너지 전환 실험은 5년이라는 사업 기간으로는 출발선에 불과하다. 에너지 인프라의 수명이 수십 년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진정한 성패는 제도적 조건이 얼마나 정비되는지에 달려 있다. 전력 시장 구조의 유연성, 기업이 재생에너지를 직접 구매할 수 있는 직접전력구매계약(PPA) 제도의 실효성, 지역별 전력 요금 차등제 도입 여부가 기업들의 실질적 참여를 결정할 변수다.

구미의 실험은 선언과 현실 사이에 놓여 있다. 30MW 태양광과 50MWh ESS는 전환의 상징이면서도 시작점에 머문다. 500MW LNG 발전소는 안정성과 배출 감축 사이의 균형을 묻는다. 배터리 재자원화는 새로운 산업 기회를 시험하는 동시에 원자재 가격 변동과 기술 효율성이라는 경제성 방정식을 풀어야 한다. 이 요소들이 개별 사업이 아닌 하나의 시스템으로 통합될 때 비로소 산업단지의 성격이 근본적으로 변화한다.

모든 평가는 데이터를 통해 이뤄진다. 재생에너지 비율이 얼마나 상승하는지, 전력 배출계수가 얼마나 낮아지는지, 기업의 에너지 비용이 어떻게 변하는지, 신규 산업과 일자리가 얼마나 창출되는지가 전환의 성과를 보여줄 지표다.

구미는 지금 한국 산업단지 모델의 전환 가능성을 시험하는 현장이다. 30MW 태양광이 보여주는 1.3%는 작은 출발점이지만, 이 비율이 언제, 어떻게 상승하는지가 한국형 산업단지 탈탄소 모델의 현실적 조건을 증명할 것이다. 그 결과는 몇 년 뒤 데이터라는 객관적 언어로 기록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