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욱의 기후 1.5] 뒤집어봐야 보이는 것도 있다?

박상욱 기자 2026. 2. 23.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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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 미래'에서 '내 일'로 찾아온 기후변화 (328)

에너지는 곧 우리의 삶과 직결됩니다. 당장 하루의 전력수급 상황만 살펴보더라도, 우리의 생활이 그려지죠. 미국의 에너지부 산하의 핵심 기관으로 EIA(Energy Information Administration, 에너지정보청)뿐 아니라 OIC(Office of Intelligence and Counterintelligence, 정보 및 방첩 사무국, IN으로도 불림)가 존재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국방부 소속이 아님에도 OIC는 전 세계 에너지 데이터를 분석해 어느 나라가 언제, 어느 분야에 에너지를 얼마나 소비하고, 어떤 에너지원에 의존하는지 알아내고, 원자로의 생산과 방사성 폐기물의 처리와 같은 핵무기 프로그램으로 이어질 수 있는 정보들을 수집, 분석하기도 하죠. 이들에게 전력(電力)은 전력(戰力)인 셈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나라의 전력은 어떨까. 모두가 잠든 새벽, 전력수급 그래프의 골짜기도 깊어집니다. 평일인 지난 9일 기준, 새벽 3시 35분에 우리나라의 수요는 최저 61GW까지 떨어집니다. 하나둘 눈을 뜨고, 도시가 깨어나며 수요는 삽시간에 늘어납니다. 오전 10~11시 사이, 93GW를 넘어서며 최대치를 기록했죠. 이후 조금씩 줄어들던 수요는 퇴근 시간 무렵부터 급격히 줄어들기 시작해 밤 11시 55분, 71.3GW까지 떨어졌습니다.

하지만 정부와 전력 당국의 관리 아래에 있는 전력시장의 관점에선 상황이 조금 다릅니다. 전력시장 내에서 이날의 최대치는 86.2GW(오전 8시 55분)였습니다. 이후 수요는 급격히 줄어들어 한낮인 오후 12시 35분엔 69.5GW까지 감소했죠. 이후 수요는 점차 다시 늘어나 오후 6시 83.7GW까지 증가했습니다. 어떻게 한낮의 수요가 오전 6시 30분 전후의 수준까지 줄어든 것일까. 이는 생각보다 많은 '전력시장 외 태양광'의 영향입니다. BTM(Behind the Meter)이라고 불리는 자가소비용 태양광 발전설비와 기존의 전력시장과 별개로 PPA(Power Purchase Agreement, 전력구매계약)를 통해 공급되는 재생 전력이 상당한 수준에 이르기 때문입니다.

이날의 전력 공급은 어떻게 이뤄졌을까. 전통의 '경직성 전원'인 원자력발전과 석탄화력발전은 꾸준한 발전출력을 유지했습니다. 원전의 경우, 24시간 내내 18.6GW 안팎의 출력을 유지했고, 석탄화력발전의 경우엔 한낮에 일시적으로 22GW 안팎까지 출력이 소폭 감소했으나 그 외의 시간대엔 대부분 26GW 수준으로 발전설비를 가동했죠.

우리나라 전력수급에 있어 유의미한 발전량을 기록중인 VRE(Variable Renewable Energy, 변동성 재생에너지)는 태양광이 유일합니다. 이날 발전량이 기록된 시간은 새벽 5시부터 오후 6시 20분까지, 총 13시간 20분이었습니다. 출력은 한낮인 오후 1시 무렵 25.7GW까지 높아졌습니다. 최대 출력이 기록된 것은 오후 1시였지만, 전체 발전설비에서 태양광의 비중이 가장 컸던 것은 그 직전인 오후 12시 55분이었습니다. 25.63GW의 출력으로 잠시나마 29.2%의 발전비중을 기록했죠.

이날도 유연성 자원들은 말 그대로 '열일'을 했습니다. 가스화력발전과 양수발전설비는 시시각각 변하는 수요와 그 수요에 능동적으로 대응 못 하는 경직성 전원이나 간헐성 전원의 구멍을 막아주는 역할을 했죠. 칠흙같이 어두운 새벽녘, 수요가 예상보다 낮아지면서 양수발전설비는 열심히 물을 끌어 올리며 최대 1.4GW로 잉여전력을 위치에너지로 바꿔 저장했습니다. 그리고 한낮엔 최대 2.3GW 수준까지 충전의 역할을 맡았고요. 가스화력 또한 오전에만도 출력을 최저 14.8GW에서 최대 35.3GW까지 엿가락 늘리듯 조절했고, 태양광 발전량이 급증하는 한낮엔 다시금 출력을 낮춰 오후 2시 25분 최저 21GW를 기록하기도 했습니다.

안정적인 전력수급에서 가장 중요한 가치는 유연성입니다. 시간대마다 달라지는 수요와 상관없이 시종일관 출력을 유지할 수밖에 없는 경직성도, 외부 조건에 따라 출력이 달라지는 간헐성도 '어느 쪽이 그나마 낫다'고 하기 어려운 이유입니다. 그간 전력수급을 표현하는 그래프는 통상 전통적인 전원 혹은 경직성 전원이 아래에, 상대적으로 새롭게 유입된 발전원이 위에 배치됐습니다. 소위 '기저 발전원'을 시각적으로 표현하기에 좋은 방식이죠.

이를 반대로 바라보면 어떨까. 새로 확장되고 있는 청정 발전원을 아래에, 전통 전원을 위에 배치해보면, 이전까지의 그래프에선 미처 보이지 않았던 것들이 보다 쉽게 드러납니다. 간헐성이라는 표현으로 '안정적인 전력수급을 위협한다'고 공격당하던 VRE의 출력은 수요의 증감과 시간대를 비슷하게 맞추는 역할을 하는 것이 시각적으로도 확인됩니다. 그 덕에 총수요 대비 전력시장 내 순수요의 하루 중 변동폭은 줄어들게 됐습니다.

이날 총수요의 최고점은 9.3GW였지만 전력시장 내 순수요의 최고점은 8.6GW로 더 낮았습니다. 태양광발전이 타 발전원의 부하 대응 운전 부담을 덜어준 셈입니다. 수요가 증가세에 접어드는 타이밍과 태양광발전의 출력이 증가하는 타이밍이 일치하는 것에 비해 태양광발전의 출력 감소 시기는 수요의 감소 시점보다 앞서지만 말이죠. 반면, 경직성 전원들은 총수요, 순수요 가릴 것 없이 시시각각 변하는 부하에 아무런 대응을 하지 못하고 있음이 보다 명확히 보이게 됩니다. 그로 인해 '안 그래도 비싼' 가스화력발전은 고무줄처럼 출력을 조절하면서 경제성을 더욱 잃게 되고요.

다만, 평일 대비 애당초 총수요 자체의 변동폭이 크지 않은 휴일의 경우는 상황이 다릅니다. 설 연휴이자 주말인 지난 15일의 5분 단위 전력수급현황을 살펴봤습니다. 이날 총수요의 최고점은 61.3GW, 최저점은 52.9GW(새벽 3시 55분)으로, 최고-최저의 격차가 약 8.4GW에 그쳤습니다. 평일이었던 9일의 32.2GW 차이를 보면, 이날 우리나라의 전력수요는 24시간 내내 거의 일정했다고 봐도 될 정도였죠.

이런 상황에선 전력시장 외에서의 태양광들로 인해 순수요가 한낮에 되려 최저점을 기록하게 됩니다. 이날 수요의 최저점은 오후 12시 55분에 기록된 43.6GW로, 최고점과의 차이는 17.7GW로 벌어지게 됩니다. 결국 부하에 맞추기 위해 가스화력발전의 출력은 최저 9.8GW(오후 12시 40분)에서 최대 22.6GW(오후 6시 25분)로 오르내려야만 했고, 양수발전 또한 한낮에 두 시간여 동안 2.6GW 안팎으로 잉여전력을 담아내야만 했죠.

해외 주요국들은 어떻게 대응하고 있을까. 미국과 영국, 프랑스, 스페인, 그리고 일본의 하루중 전력수급 상황을 살펴봤습니다. 냉방수요의 증가로 전력수요가 급증하는 여름철, 상황은 더욱 극적일 수밖에 없는 만큼, 지난해 7월 14일 월요일의 상황을 비교해 봤습니다.

출근 시간대 수요가 증가하고, 이후 감소하는 양상을 보이는 것은 우리와 마찬가지로 다섯 나라가 공히 보이는 패턴이었습니다. 미국은 새벽 5시 최소 464.04GW, 영국은 새벽 4시 최소 22.39GW, 프랑스는 새벽 5시 최소 33.05GW, 스페인은 새벽 4시 최소 22.51GW, 일본은 새벽 2시에 최소 76.74GW의 전력수요를 기록했습니다. 이들 나라가 한국과 다른 점이 있다면, 시간대별로 전기의 가격이 달라졌다는 겁니다.

국가별로 가격이 변하는 양상은 달랐습니다. 미국과 일본의 경우, 수요의 증감과 가격의 증감이 거의 일치합니다. 수요가 적을 땐 가격이 싸고, 수요가 많을 땐 가격이 높은 것이죠. 반면, 영국과 프랑스, 스페인의 경우 수요와 가격 그래프의 방향이 일치하지 않습니다. 수요는 당연히 소위 '일과시간' 중에 높아지지만, 가격은 새벽과 밤에 오르고, 일과시간엔 떨어지는 모습을 보이죠.

가격의 변동폭 또한 국가마다 다릅니다. 미국은 새벽 3시에 MWh당 33.85달러로 최저점을, 저녁 7시엔 MWh당 74.51달러로 최고점을 기록하며 하루 중 둘 사이 격차가 40.66달러/MWh, 최고 가격이 최저 가격의 2.2배였습니다. 최고가 기준으론 다른 4개 국가와 비교가 어려울 만큼 저렴한 모습을 보인 겁니다. 일본은 최저 55.2달러/MWh(새벽 4시) - 최고 118.95달러/MWh(저녁 6시)로 둘 사이 격차는 63.75달러, 최고 가격은 최저 가격의 2.15배를 기록했습니다. 영국은 최저 73.11달러/MWh(오후 4시) - 최고 119.51달러/MWh(밤 9시)로 최저 가격 기준으로 가장 비쌌습니다. 가격의 변동폭이 가장 큰 곳은 스페인과 프랑스였습니다. 프랑스는 최저 21.29달러/MWh(오후 3시) - 최고 137.55달러/MWh(밤 10시)로 최고 가격은 최저 가격의 6.46배, 스페인은 최저 21.29달러/MWh(오후 3시) - 최고 148.04달러/MWh(밤 9시)로 최고 가격은 최저 가격의 6.95배에 달했죠.

이러한 차이가 만든 것은 전력믹스의 차이였습니다. 위의 5개 주요 선진국 가운데 에너지전환의 속도가 상대적으로 느린, 그래서 여전히 화석연료의 비중이 높은 미국과 일본의 경우 수요의 증감과 가격의 증감이 동기화됐습니다. 수요와 가격의 동기화가 깨진 유럽 3개국의 경우 재생에너지의 발전비중이 높고요. 언뜻 '동기화 된 것이 좋은 것 아니냐'고 여길 수 있지만, 그렇게만 볼 수는 없어 보입니다. 공급의 측면에선 가격이 발전원가를 반영해 달라져야 하는 것이지만, 가격은 수요의 측면에선 '적절한 수요의 분산'을 이끌어내야 하기 때문이죠.

미국과 일본에선 가격의 변화가 전력수요의 변화를 부르지 못 했다고 평가할 수 있습니다. 늘어나는 수요에 대응하기 위해선 비싼 화석연료(연료가격 자체가 비싸든, 연료가격은 저렴하더라도 배출저감설비나 탄소세 등으로 비용이 비싸든)를 태워야 해서 가격은 높아질 수밖에 없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요의 분산이 이뤄지지 못하면서 수요와 가격이 동조화하는 상황에선 결국 하루 중 전기를 위해 들어가는 전체 비용은 커질 수밖에 없습니다. 돈은 돈대로 많이 써야 하고, 온실가스 배출은 배출대로 많이 할 수밖에 없는 구조인 겁니다.

화석연료 비중이 큰 미국과 VRE 가운데 풍력의 비중이 큰 영국, 그리고 태양광의 비중이 큰 스페인의 전력수급을 비교하면, 이러한 수요와 공급, 그리고 가격의 차이를 보다 명확히 알 수 있습니다. 미국은 수요의 증가 시점과 태양광 발전량의 증가 시점이 일치하나 수요의 증가폭이 더 크기에 이때 화석연료 발전량 또한 더욱 늘어납니다. 앞서 설명한 것처럼, 결국 수요의 증가는 비용(가격)의 증가로, 온실가스 배출의 증가로 이어질 수밖에 없는 것이죠. 경직성 전원인 원자력과 석탄화력은 이에 대응하기 어렵기 때문에 가격 변동을 억제하는 역할을 기대하긴 어렵습니다. 다만, 이날 일 평균 재생에너지 발전비중 17.18%로 영국(일 평균 재생 비중 60.14%)이나 스페인(일 평균 재생 비중 56.95%) 대비 재생에너지로의 전환이 더딘 것과 별개로, 미국에서 BESS가 전국 단위 전력수급에서 유효한 역할을 하고 있음은 우리가 눈여겨봐야 할 부분입니다. 한낮엔 최대 4.83GW(오전 11시) 규모로 전기를 충전하고, 심야엔 최대 6.58GW(밤 11시) 규모로 전력을 공급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양수발전보다도 훨씬 큰 규모로 유연성 전원으로 역할을 하는 겁니다.

반면, 영국에선 수요가 증가하는 시점에 전력을 더욱 청정하면서도 저렴하게 공급할 수 있었습니다. 미국과 달리 석탄화력발전 자체를 퇴출시킨데다, 연료비가 비싼 가스화력발전의 출력은 수요 피크 시점에 되려 최소화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날 최대 8.13GW(0시)에 달했던 영국의 가스화력발전설비 출력은 한낮엔 최소 2.09GW(오전 11시)로 줄었습니다. 꾸준히 발전을 이어 온 풍력발전이 수요 증가에 맞춰 최대 11.83GW(오후 3시)까지 출력을 높이고, 그렇게 수요가 증가하는 시점에 태양광발전 또한 최대 9.22GW(오후 1시) 까지 늘어난 덕분입니다. 그 결과, 오전 6시 114.35달러/MWh까지 올랐던 가격은 점차 줄어들어 오후 4시 73.11달러/MWh까지 떨어졌습니다.

스페인의 경우, 가격의 변동폭이 더욱 컸습니다. 오전 7시, MWh당 143.46달러였던 전기의 가격은 이후 급격히 내려가 오후 3시 21.29달러/MWh로 아침 가격의 15%가 되죠. 태양광발전의 연료비는 바람을 이용하는 풍력과 마찬가지로 0원이나 설비 비용이 더욱 저렴한 만큼 비교 대상인 5개국 가운데 프랑스와 함께 가장 저렴한 가격을 기록할 수 있었습니다. 이날 스페인에서 태양광의 발전비중은 오전 10시부터 오후 5시까지 60%를 넘겼습니다. 정오엔 비중이 최대 65.8%까지 높아졌고요.

이러한 가격 체계는 영국과 프랑스 두 나라의 전력믹스와 함께 하루 중 전력 사용으로 인한 소비자의 비용 지출을 최소화함과 더불어 건강한 전력수급체계를 강화하는 역할을 하기도 합니다. 저렴한 청정 전력이 급증하는 시점에 수요를 모으는 역할을 하는 것이죠. 이렇게 수요와 공급이 궤를 같이하면 유연성 전원의 추가 확보를 위한 지출을 줄일 수 있으니 말입니다. 결국, 시장의 메커니즘은 곳곳에서 긍정적인 효과를 불러옵니다. 발전설비의 설치에 걸리는 시간이나 비용이 어떻게 다른지, 입지를 확보하는 과정에 얼마나 많은 시간과 비용이 투입되는지, 수요에 맞춰 공급이 어떻게 달라지는지… 에너지전환이 글로벌 트렌드로 자리잡을 수 있었던 것은, 세계 최대 규모의 화석연료 생산국가인 미국 조차 일 평균 재생에너지 발전비중이 17%를 넘어설 수 있던 것은, 나아가 50~60%에 달하는 수준까지 재생 비중을 높일 수 있었던 것은 그저 당위론적인 필요성 때문만이 아니었던 겁니다.

그럼 우리의 전력수급은 어떻게 달라질까요. 어떻게 건강한 전력수급체계를 구축할 수 있을까요. 이에 대해선 다음 주 연재에서 보다 자세히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박상욱 기자 park.lepremier@jtb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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