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정산~백양산 27km를 400번 "스틱 잡기 전, 근력부터 키우세요" [산지컬 100]
극한 산행은 단순히 체력만 좋다고 가능한 것이 아니다. 산을 대하는 올곧은 태도와 이념, 탄탄한 지식과 경험을 두루 갖춰야만 안전히 산행을 마칠 수 있다. 넷플릭스 인기 예능 <피지컬100>에서 피지컬이 뛰어난 이를 탐구했듯, 월간<山>은 '산지컬'이 뛰어난 이들을 만나본다. _ 편집자

금정산에서 백양산으로 이어지는 27km의 산줄기. 부산을 대표하는 장거리 종주 코스인 금백종주다. 부산에서 산 좀 탄다는 사람들이라면 밥 먹듯이 이 길을 완주한다. 거리나 오르내림이 장거리 종주 훈련에 딱 제격이기 때문이다.
부산 준족들이 밥 먹듯이 완주하는 길을, 꽤 과식한 사람이 있다. '돌도사'란 닉네임을 사용하는 이동운씨다. 최근 10년 동안 금백종주만 400번을 했다. 거리로 따지면 1만여 km다. 지구 4분의 1바퀴, 서울에서 부산을 열댓 번 왕복한 급이다. 심지어는 여기에다가 금정산 4대성문종주를 붙여서 43km로 완주한 기록도 종종 보인다. 도대체 왜 이렇게까지 금백종주에 천착한 것일까? 그는 "성에 안 차서"라고 간단히 대답했다. 무슨 말이냐면, 일요일에 늘 백두대간 구간종주를 당일로 다녀왔었는데 이 25km로는 영 몸이 풀린 것 같지 않아서 그 전날인 토요일에 금백종주를 해서 주말마다 꼬박 50km 이상은 걸어야 했었다는 뜻이었다.
"어떻게 하면 그렇게까지 걸을 수 있나요?"
"정신력이죠."
솔직히 좀 따분한 답이었다. 육체적으로는 반드시 한계가 오는데, 그 한계는 육체가 아닌 정신력으로 극복이 가능하다는 말이 이어졌지만 딱히 귀담아 듣지 않았다. 흔한 일체유심조론이라 그냥 가볍게 넘기면 될 것 같았다. 그래서 퉁명스럽게 "정신력은 어떻게 강화해야 할까요?"라고 되물었다. 돌아올 답으로 어떤 극기나 투쟁적 자세, 독기, 임전불퇴 등의 클리셰를 상정하고 있었던 터라 큰 기대감은 없었다. 하지만 돌아오는 말은 뜻밖이었다.
"즐기면 되죠. 재밌게 가면 됩니다. 강한 정신력이란 건 다를 게 없어요. 산을 즐기고, 걷는 걸 즐기는 게 가장 중요합니다."
그게 산을 가는 이유, 또 산꾼들이 산을 길게, 오래 걷는 근본적인 이유다. 그 자체로 한없이 즐거우니까. 이걸 망각한 채 기록을 세우기 위해서, 남들보다 비교우위에 서서 자랑하려는 속물적 목적으로서 육체를 몰아세우고자 정신력을 강조하면 육체가 무너지기 마련이다. 하지만 즐거움에 몸을 던진 자는 끝까지 간다. 그게 이동운씨의 말이다.

허약체질…첫 산 천성산 오르고 3일 탈진
경상남도 합천에서 태어난 이씨는 세 살 때 부산으로 내려와서 지금까지 쭉 부산에서 산, 토박이다. 초등학교 시절에는 부산에서도 동네를 전전한 통에 세 번이나 전학을 해야만 했다. 박정희 대통령 시절에 판자촌을 밀어내는 역사적 소용돌이에 휘말린 탓에 이사를 좀 많이 다녔다. 이사 온 지역에 학교가 한참 지어지고 있어서 먼 곳에 있던 학교를 다니다가 완공되면 편입하는 등 우여곡절이 있었다. 그런 중에 사직초등학교를 1기로 졸업했다.
"허약 체질이었어요. 어린 시절을 산에서 보내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몸이 건강하진 못했습니다. 운동도 잘 못하는 스타일이었고 선천적으로 몸이 약해서 잔병치레가 심했어요. 겨울이 오면 그 따뜻한 부산에서도 감기를 항상 달고 다니던 수준이었고요."
중학교에 들어가면서 몸이 좀 커도 운동 쪽에는 소질이 없어 보였다. 그러다가 체력장을 했는데 다른 종목에선 좀처럼 두각이 없다가 장거리달리기에서 다른 학생들을 깜짝 놀라게 했다. 워낙 학생 수가 많아서 절반씩 나눠서 한 그룹을 먼저 뛰게 했는데 후발 그룹에서 뛰어서 앞 그룹을 따라잡은 것. 단거리는 잘 못 뛰어도 장거리는 꽤 잘한다는 걸 그때 깨달았다.

"그냥 깨달았을 뿐, 등산은 관심이 없었어요. 그리고 나선 일을 시작했죠. 꽤 건실한 기업에서 시설관리 일을 했어요. 주로 보일러 계통이죠. 중간에 다른 기업으로 옮겨서 일하다 지난해 6월에 정년퇴직을 했습니다."
첫 직장에선 등산을 접할 겨를이 없었다. 낚시에 푹 빠져 있었기 때문이다. 눈맛, 찌가 움직이는 손맛, 먹는 입맛까지 3가지 맛에 푹 취했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낚시가 잘 안 됐다. 주변에 고민상담을 하는데 '업보'란 말이 들렸다. 미끼도 죽이고, 물고기도 죽이고 살생을 하는데 복에 겨울 리가 있겠느냐는 말이다. 자연히 낚시와 멀어지게 됐고, 그러던 중 직장을 옮겼는 데 거기에 사내 산악회가 있었다.
"맨 처음 양산 천성산을 올랐습니다. 지금이야 쉬운 산에 속하는 축인데 그땐 저한테 에베레스트와 다름없었어요. 너무 힘들어서 3~4일은 다리가 아예 안 움직여서 일어나지도 못하는 수준이었죠. 그런데 같이 간 저보다 나이 많은 여사님들은 훨씬 더 산뜻하게 오르고, 하산 뒤에도 아무런 데미지가 없는 걸 보니 좀 자존심이 상하더라고요. 그때 제 나이가 40대 초반이었는데 이래선 안 되겠다 싶어서 1주일 뒤에 마음을 단단히 먹고 똑같은 산을 다시 올랐죠. 이번에는 신기하게 또 산이 너무 쉬운 거예요."

그 이후 산악회를 따라서 매주 천성산만 계속 올랐다. 등산은 낚시와는 다른 '맛'이 있었다. 인생의 맛이었다. 산은 올라간 만큼, 딱 그만큼을 볼 수 있게 해줬다. 10%면 10%만, 50%면 50%만큼 정직하게 보여 줬고, 정상에 올라가면 모든 걸 다 보여 줬다.
슬슬 천성산이 지겨워지자 회사 동료 2명과 함께 다른 산을 가볼 궁리를 했다. 나이로 막내인 동료는 '백두대간'이란 게 있으니 우리도 거길 가보자고 했다. 2013년의 일이다.
"부산에 낙동산악회라고 백두대간을 전문으로 가는 곳이 있었어요. 저희 3명이 그곳에 들어가서 36구간으로 대간 완주를 했죠. 사실 첫 구간에서 우리가 엄청 고생했었어요. 저희가 흔히 말하는 '대간꾼'처럼 행동하지 않으니까 다른 팀 사람인 줄 알고 버려졌었거든요."

사건은 이랬다. 버스로 이동한 후 들머리에서 대간꾼들은 갈 길이 멀기에 간단히 행동식이나 빵류를 먹고는 빠르게 출발하는 게 보통이었다. 그런 줄 몰랐던 이씨 일행은 산 밑에서 도시락을 거하게 펴놓고 먹었다. 쌈밥까지 야무지게 먹고 출발하려니 다른 일행들은 이미 다 떠난 후로 길도 모르는 곳을 앞선 사람들을 따라잡으며 가려고 고생깨나 했다.
"그래도 정말 재밌더라고요. 그래서 한 번 완주하고 나서도 계속 백두대간을 타고 싶었어요. 또 저한테 그런 영감을 주신 분도 있었고요."
산악회에서 만난 한 선배가 '돌도사, 너는 대간만 해라'고 조언해 줬다. 그 선배는 7년 동안 주말마다 산에 다니며 쫓기듯, 숙제하듯 1대간 9정맥을 완주했는데, 지금 돌이켜 보니 하나도 모르겠다는 것이었다. 분명 백두대간을 전부 걸었는데 코스마다 어떤 경관적인 특장점이 있는지, 어떤 역사나 문화재가 있는지, 주의할 점은 무엇인지 설명을 하나도 못 하겠다는 것이다. 그러니 이렇게 허무할 바엔 백두대간만 몇 번을 더 걸어서 우리나라 국토에서 대간길 하나는 훤히 꿰는 게 나을 것이란 조언이었다.

이씨는 그 조언을 잘 받아들였다. 백두대간만 8번을 완주했다. 그러자 지금은 머릿속으로 지리산에서부터 설악산까지 대간길을 걸을 수 있는 지경이라고 했다.
"이러한 전문성을 살려서 외국인들을 상대로 가이드를 한 번 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요. 고개나 재마다 텐트사이트를 만들 수 있는 곳, 보급할 곳, 소요경비까지 실제 계획도 세웠죠. 25일 일정으로요. 그런데 결국 못 했습니다. 비법정탐방 구간 때문이죠."
백두대간 완주도 8번을 마지막으로 그만두게 된 것도 결국 법적 한계 때문이었다. 비법정탐방구간이 있는 한 백두대간은 오롯이 탈 수 없거나, 죄스럽게 타는 수밖에 없었다. 사실 그 시절엔 모두가 비법정탐방구간을 공공연하게 다닐 때라 정재계나 연예계의 공인들도 딱히 죄의식 없이 백두대간 완주를 인증하곤 했었기에 윤리적 딜레마는 그리 큰 문제가 아니었다. 지금도 그는 백두대간을 막은 조치를 이해하기 어렵다고 했다. 가령 설악산의 경우 동식물을 보호한다고 철조망을 철저히 쳐서 대간꾼들의 길도 막힌 적이 있는데 그 탓에 설악산 산양이 빠져나갈 구멍이 없어서 떼죽음을 하는 걸 보며 조소를 금할 수 없었다.
"백두대간을 접은 건 결국 사고 때문이죠. 비법정탐방구간은 길이 관리되지 않아서 훨씬 위험하거든요. 다른 팀 사람들이 부상을 입거나 심지어 심정지로 사망하는 사고도 접했죠. 제가 이끄는 팀에서도 작은 사고가 생겼고요. 발목을 접질리는 정도로 경미한 사고였지만 이게 나중엔 큰 사고가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이 스치니 가슴이 섬뜩했어요. 그제야 '아 이제 대간은 그만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빠르지 않아도, 포기하지 않는다
그래서 다른 장거리 코스로 시선을 돌렸다. 역지리국공연산, 역지리태극, 무한태극, 부산15산, 양산환종주, 구미 12산, 옥스팜, 실크로드, 부산 11산 등을 주파했다. 극한 코스들을 섭렵하면서 자신의 장단점을 뚜렷이 알게 됐다. 그는 "남들에 비해 속도가 뛰어나지 않다는 단점은 명확하지만, 대신 포기하지 않고 쉬지 않는 스타일이다"고 했다.
"지금은 갱년기가 와서 땀이 많이 나지만 원래는 물도 적게 마시고, 음식도 가리는 것 없이 먹는 스타일이어서 배낭을 아주 가볍게 하고 다녔어요. 그러니 좀 유리했죠. 남들이 멈춰서 물 한 모금 마실 때 저는 한 걸음 더 갔었거든요. 또 휴식도 남들과 다르게 했어요. 대부분 졸리면 짧게 30분이나 1시간 정도 자고 계속 걷는 게 보통인데, 저는 3시간 통잠을 자고 걷는 방식을 택했어요. 그게 저한테 맞더라고요."
1년에 2차례 정도 이런 극한 코스에 도전했고 나머지 주말은 오로지 금백종주에 쏟아 부었다. 좀더 정확히 말하면 극한 코스에 쏟아 붓기 위해서 금백종주를 쌓아올렸다는 게 맞다. 한창 몸이 좋을 땐 금백종주에 4대성문 종주를 붙인 43km를 10시간 안에 완주하기도 했다. 부산2호선 양산역에서 시작해서 개금역까지 트랭글에 기록을 쌓고 또 쌓았다. 물론 처음부터 금백종주를 완벽하게 다닌 건 아니었다. 그도 서툴 때가 있었다.
"처음엔 좌충우돌했죠. 처음 '금백종주란 것이 있다', '금백종주를 편하게 완주할 정도는 돼야 백두대간을 할 수 있다'는 얘기를 듣고 시작한 게 2012년이에요. 그때 처음 30번 정도는 한 번도 똑같은 길로 간 적이 없어요. 하도 샛길이 많으니까 여기로 빠지고, 저기로 우회하고 하면서 숱하게 시행착오를 겪었죠.

어느 정도 길이 익숙해지고, 특히 2015년 이후 트랭글, 램블러 같은 산행지도 앱이 보편화되면서 GPS를 보고 다닐 수 있게 되자 이제 정해진 길로 잘 다녔죠. 완전히 루틴으로 만들었어요. 아침 7시에 산행을 시작해서 오후 5시에 끝내는 스케줄로 맞췄고, 내려오고 나면 단골 목욕탕에 들러서 씻고 집에 간 뒤, 다음날에 또 산행 한 번 돌고 월요일에 출근하면 몸이 하나도 안 피곤하고 아주 상쾌했죠."
금백종주를 400번쯤 하니 나름의 팁도 생겼다. 한여름이면 금백종주가 아니라 백금종주를 한다. 그렇게 해야 해가 등 뒤에 뜨고, 그늘도 많이 드리워져서 할 만하다. 겨울이면 금백종주를 한다. 그래야 햇빛을 더 많이 받아서 비교적 따뜻하게 잘 다닐 수 있다.
"저는 전 세계에 이런 코스가 없다고 입버릇처럼 얘기해요. 낙동강도 보고, 바다도 보고, 김해평야도 보면서 걸을 수 있잖아요. 종합선물세트 같은 코스죠. 그래서 늘 금정산 고모당에 들르면 산신할머니한테 감사 인사를 드려요."
한편 금정산이 국립공원이 되면서 그의 신나는 금백종주도 새로운 전기를 맞이하게 될 전망이다. 그는 "부산 쪽은 아직 특별한 조치가 없는데, 양산 쪽에는 산불방지를 핑계로 산을 6개월씩 걸어 잠그겠다는 플래카드가 벌써부터 잔뜩 나붙고 있다"며 "자다가도 가고 싶으면 자유롭게 올라갔던 금정산을 뺏기는 것 같다. 금백종주도 다른 종주로 바꿀까 고민 중"이라고 했다.

주말 50km 산행을 버티게 만든 매일 15km 출퇴근
그는 산에 다니는 자세와 안전에 대해 강조했다. 백두대간을 다닐 때면 본인은 물론 대원들이 태극기를 꼭 달았다고 한다. 달라고 시킨 것도 아닌데, 그냥 대간을 다니면 절로 달게 되는 게 태극기란다. 그러면 그는 "태극기를 단 이상 산에선 국가대표다. 산에서 모범을 보여야 한다"는 말을 건넸다고 한다.
"또 하나 강력하게 얘기하는 게 있어요. 등산스틱과 무릎보호대를 가급적 쓰지 말라고 합니다."
일반적인 산행 상식과는 역행하는 얘기. 이씨 스스로 "개똥철학"이라면서 전한 말이다. 하지만 아예 근거가 없는 조언은 아니다.
"스틱이나 보호대를 쓰지 말고 고스란히 다치라는 소리가 아닙니다. 허리와 무릎의 근력부터 키우란 뜻이에요. 제가 옆에서 보니 충분한 근력을 아직 키우지 못했는데 스틱이나 보호대의 도움을 받아서 제법 힘든 코스도 얼추 완주가 되니 몸을 더 만들 생각은 안 하고 자꾸 더 어려운 곳을 찾다가 다치고 사고가 나고 그러더라고요. 근력이 부족하니 스틱을 짚고 몸을 비틀어가면서 바르지 걷지 않으니 무릎과 발목이 뒤틀리고, 부하가 가중돼 다치죠. 스틱이나 보호대는 근력이 충분히 자란 후 이를 유지하기 위한 차원에서만 쓰라고 합니다."

그는 자신에게도 이를 엄격하게 적용한다. 지금도 낙엽이 깊게 쌓인 구간을 산행해야 하는 것이 아니면 스틱이나 무릎보호대를 쓰지 않는다고 했다. 또한, '먼저 허리와 무릎의 근력부터 키우라'는 격언도 철저히 지켰다. 출근하는 길 3km를 40분간 걷고, 퇴근하는 길에는 이 3km에다 뒷산 산길 9km를 얹어 12km를 두 시간 안으로 주파했다.
"또 조언을 하자면, 저체온증을 진짜 조심해야 합니다. 겨울에 밥 먹거나 휴식한다고 열이 식게 놔뒀다가 큰 화를 당할 수 있어요. 제가 가장 좋아하는 선배도 한 번은 자기가 이끈 팀에서 저체온증 사망사고가 났다면서 저한테 절대 조심하라고 조언해 줬습니다. 돌아가신 분을 직접 업고 내려오는데 그리 망연자실하고 죄스러울 수 없었다고 하더라고요."
쓰지 말란 것과 함께 쓰란 것도 있다. 등산화다. 그는 캠프라인의 마나슬루만 신는다. 이것만 신다 보니 겉은 해져도 깔창은 여전히 쓸 만하게 남는 경우가 많아서 늘 양말은 한 켤레, 깔창은 두 개를 놓고 쓴다. 그러니 발바닥에 물집이 잡히는 일도 없고 산행도 편하다. 그는 "요즘 젊은 산꾼들은 트레킹화, 극단적으로는 매우 가벼운 트레일러닝화를 신고 오던데 처음엔 편하다고 날아다니다가 어느 순간 '발목 부러졌다', '접질렸다', '무릎 다쳤다'며 다음 산행에선 자취를 감추는 게 보통"이라며 "느려도 마나슬루"라고 힘줘 말했다.
이처럼 그가 산을 오르는 방식은 엄하고, 단호하다. 그건 그만큼 산을 오르는 게 "즐겁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토록 재밌고 즐겁고 좋은 산을 다쳐서 못 가면 너무 억울하다는 것. 그래서 가장 안전하게 산을 오래 오를 수 있는 자기만의 방법을 터득했을 뿐이다. 그는 "사람마다 차이가 있으니 '이런 방법과 신조로 산을 오를 수도 있다'는 정도로 참고할 뿐, 맹목적으로 따르지 않는 것을 안전 차원에서 권고한다"고 마지막으로 덧붙였다.

월간산 2월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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