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사는지 묻기 위해 집을 나선다 희박한 공기의 설산, 눈표범이 주인인 곳으로 [겨울 히말라야 트레킹]

조진수 네팔·히말라야 전문 사진가 2026. 2. 23. 07: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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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마나슬루 라르케 패스(5,106m)~안나푸르나 쿠춤로 패스(4,900m)~나르마을(4,200m)~캉라(5,320m)~틸리초 호수(5,340m) 횡단 트레킹
비히마을(1,990m)에서 염소먹이 풀을 지고 오는 현지 여인.

세상은 빠르게 변화하고, 사람들은 경쟁에서 뒤처지지 않으려고 달린다. 나 역시 그 대열에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그런데 이따금 왜 달리는지,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 자문할 때가 있다.

그럴 때는 미련 없이 일상을 벗어던지고, 세상 밖으로 나가야 한다. 밖에서 보면 안이 더 잘 보이고, 자신을 객관적으로 분석할 수 있다.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답이 나온다. 그런 의미에서 히말라야는 나에게 세상 밖이다.

빵싱마을 앞에 있는 긴 구름다리.

휴식을 취하거나 한가롭게 생각을 정리하려는 건 아니다. 오히려 치열하게 나를 극한까지 밀어붙이려고 간다. 이번에 마나슬루를 지나 안나푸르나의 5,000m 고개를 몇 군데 넘어 틸리초호수를 횡단하는 트레킹을 다녀왔다. 11월부터 12월까지 날씨가 좋다. 30여 년을 이 시기에 히말라야를 다닌다. 히말라야를 볼 수 있는 최적의 기간이다.

그토록 위험하고 힘이 들 줄은 몰랐다. 한 달 전에 큰 눈이 내린 걸 간과했다. 5,000m대의 북사면은 눈이 많아 운행이 어려웠다. 고생길이 아니라 그 이상이었다. 한 치 앞이 안 보이는 백척간두에 선 기분이었다.

빵싱마을에서 풀을 뜯으러 나가는 염소들.

히말라야의 겨울 산행은 예측대로 흘러가지 않는다. 허벅지까지 쌓인 눈에 갇혀 오도 가도 못하는 상황을 맞이할 수 있다. 돌아서기가 마땅치 않으면 위험을 감수하고 눈 덮인 절벽도 내려가야 한다.

원래는 쿰부 지역의 터치락파를 갈 계획이었다. 해발 5,750m 고개와 얼음의 땅 그로시아에서 보는 설산은 전율 그 자체다. 그러나 고산의 호수가 터지면서 길이 망가져 2년째 못 가고 있다. 아직도 히말의 허락을 기다리고 있다.

일행은 나를 포함해서 8명이다. 벰바 셰르파가 팀을 꾸렸다. 20여 년간 나와 함께 히말라야의 오지를 누빈 베테랑이다. 이제는 여행사 대표이기도 하다. 노련하고 신뢰할 수 있는 사람이다. 포터들도 성실하고 유능하다.

폭포 및 쉼터에서 결혼식 피로연 중인 하객들.

이번 산행은 경비 절감을 위해 인원을 대폭 줄였다. 앞으로는 포터를 구하기도 쉽지 않을 것이다. 네팔의 젊은이들은 외국으로 돈 벌러 가는 걸 선호한다. 임금 차이가 워낙 크다. 장비를 경량화하고, 군더더기는 과감하게 뺐다.

그럼에도 필수 장비는 꼭 가져가야 한다. 히말라야의 지형은 험하고, 날씨는 변화가 크다. 준비가 철저할수록 안전에 가까워진다. 일부 코스는 새로운 루트를 찾아 야영했다. 5,000m급 고개를 네 군데 넘는 강행군이었다.

무엇보다 신의 가호가 있어야 한다. 인간의 의지와 능력을 과신하는 건 금물이다. 타개할 수 없는 상황이 언제든 닥칠 수 있다. 히말의 배려에 감사의 인사를 올리고, 최선을 다해준 스태프에게는 고마움을 전한다.

반잠마을에서 낙엽을 짊어지고 오는 여인들.

11월 24일

마차콜라(869m)에서 트레킹을 시작한다. 카트만두에서 여기까지 차로 8시간쯤 걸린다. 아르켓 전부터 울퉁불퉁한 비포장길이라 꽤 피곤한 여정이다. 로지에는 우리 말고 서양 트레커도 예닐곱 명 묵었다. 그들은 춤밸리로 간단다.

아침 7시30분쯤 자가트를 향해 출발한다. 약간 서늘한 늦가을 날씨라 걷기에 좋다. 그러나 낮에는 재킷이 부담될 정도로 덥다. 귀찮더라도 그때그때 옷을 갈아입는 게 좋다. 그래야 컨디션을 유지할 수 있다.

운동량이 적어서 걱정스럽다. 보통 한 달 이상은 체력 훈련을 하고 가는데 이번에는 부족했다. 천천히 산길을 올라가면서 현지에서 단련하려고 한다. 그래도 힘에 부치면 경험과 정신력으로 버틸 수밖에 없다.

잘 닦인 비포장길을 따라 올라가는데 현지인과 개 세 마리가 내려온다. 이때 녀석들에게 눈길을 주거나 호감을 표하면 곤란해질 수 있다. 옳다구나 하고 개가 따라온다. 녀석들은 붙임성이 좋다. 먹을 걸 주면 아예 일행처럼 행동한다.

남룽마을의 길가에 있는 돌판에 전각한 불화.

그러나 우리는 험한 산길을 오르고, 눈길을 지나야 한다. 심한 추위도 이겨내야 한다. 동행하다가 녀석들을 중도에 버려두고 갈 수는 없다. 그래서 모두 일부러 모른 체 했다. 그럼에도 두 녀석이 따라붙다가 슬그머니 사라진다.

구름다리를 건넜다. 강의 양쪽에 콘크리트 초석을 설치하고, 강철 와이어를 연결한 구조다. 중간에 버팀기둥은 없다. 네팔의 콜라(강)에는 구름다리가 무척 많다. 길이가 100m를 넘는 경우도 제법 있다.

바닥은 각을 주어 튼튼한 강판을 깔아서 안전하다. 다소 흔들리기는 하지만 좌우의 안전망이 높아서 추락 위험은 거의 없다. 주로 사람과 소, 노새, 양들이 이용한다. 차량은 건널 수 없으나 오토바이는 통행이 가능하다.

리미마을의 현지인.

옛길로 접어들었다. 부디간다키 강변의 길은 평탄하지 않고, 오르락내리락한다. 한낮의 햇살까지 더워서 진땀이 난다. 따또파니마을을 지난다. 양철지붕을 덮은 허름한 움막이 있어 들여다보니 작은 탕에 온천수가 흘러넘친다. 유황온천이다.

세수를 해보니 물이 부드럽고 매끄럽다. 피부에 좋다고 알려져 있다. 네팔의 산간에는 온천수가 솟는 곳이 많다. 네팔에는 목욕 문화가 없다. 그저 뜨거운 물에 지나지 않는다. 머리를 감거나 옷을 세탁하는 용도로 쓴다.

오전 11경 툴루둥가마을에서 점심을 먹고 다시 출발한다. 몇 구비를 지나자 또 구름다리가 나타난다. 이곳을 지나 찻길로 올라가니 자가트(1,340m)가 앞에 보인다. 오후 3시경 지친 다리를 이끌고 마을로 들어갔다.

소마을(2,880m)의 현지인.

이곳에서는 체크포스트를 찾아 산행을 신고해야 한다. 특이하게도 일정과 인원에 맞춰 식사비를 미리 받고 대신 식권을 내어준다. 머무는 곳의 로지에 식권을 내고 밥을 먹으란다. 여태 없었던 새로운 제도다.

로지도 많이 변했다. 화장실을 방안에 들이고, 전기가 들어온다. 전자기기 충전은 무료이고, 와이파이도 있다. 네팔 음식과 서양 음식은 주문대로 제공한다. 히말라야의 로지도 이제는 경쟁력이 있어야 살아남는다.

소마을의 현지인.

11월 25일

아침 일찍 출발한다. 마을을 벗어나자 소수력 발전소가 보인다. 전에는 이런 발전소가 드물었다. 그러나 이제는 네팔 전역에 대형 수력발전소가 많이 들어섰다. 물이 풍부한 이점을 잘 활용하고 있다. 전기를 외국에 수출할 정도다.

한산한 구름다리를 건넜다. 예전에는 짐을 실은 노새와 사람들로 북적여서 건너려면 한참 기다려야 했다. 왼쪽에서 세 줄기의 큰 폭포가 변함없이 멋진 풍경을 연출한다. 새로 난 찻길로 올라섰다.

이 길은 계곡의 옛길보다 높아서 전망이 좋다. 빵싱마을까지 이어져 화물차가 다닌다. 도로가 뚫리면 노새의 일자리는 금방 사라진다. 마을도 큰 영향을 받는다. 강 건너 내려다보이는 필림마을은 원래 행정과 상업의 중심지다.

리미마을에서 말을 끌고 나오는 현지 여인.

전에는 반드시 거쳐야 했던 마을이다. 현지인들은 이곳에서 여권을 발급받고, 시장도 본다. 그러나 끝내 찻길이 닿지 않으면 노새처럼 입지가 위태로울 수 있다. 도로의 유무는 생각보다 엄청난 차이를 만들어낸다.

2시간 반을 걸어 빵싱마을에 도착했다. 수백 마리의 염소들이 풀을 찾아 이동하는 모습이 장관이다. 여기서는 아직 노새가 대접을 받는다. 화물차가 싣고 온 쌀과 공산품, 가스 등을 위쪽 마을로 운반한다. 활기가 넘친다.

새로 생긴 긴 구름다리를 건넌다. 정면에서는 라르케 패스로 향하는 도로를 만들고 있다. 착암기로 절벽의 바위를 부수면 떨어져 나온 돌을 포클레인이 강으로 밀어낸다. 바위 굴러 떨어지는 소리가 요란하고, 먼지가 자욱하다.

다리 근처에서 점심을 먹고 길을 재촉한다.

소마을의 사람들.

구름다리를 건너 라르케 패스로 향하는 길에 접어들었다. 조금 더 직진해서 우회전하면 춤밸리로 가는 길이 나온다. 오늘의 목적지 뎅마을(1,860m)은 9km쯤 남았다. 오르락내리락 걸어야 하고, 대략 4시간 거리여서 만만치 않다.

1시간쯤 걷자 또 구름다리가 나온다. 건너편 길은 무너진 곳이 군데군데 있어 다소 위험하다. 그러나 노새들은 이런 길에 익숙하다. 무거운 짐을 지고도 요령껏 잘 피해 다닌다. 이렇게 계곡을 왔다 갔다 하면서 진행한다.

이 지역은 계곡이 깊어 햇살이 거의 들지 않는다. 어둑어둑하면 왠지 마음이 바빠진다. 폐허가 된 집이 두 채 보였다. 마을이 가깝다는 신호라 빈집이어도 반갑다. 일행들의 발걸음이 점점 빨라진다.

뎅마을에 도착했다. 힘든 하루였다. 로지에 짐을 풀고, 피자와 스파게티를 시켰다. 우리 입맛에는 짜게 느껴지나 그럭저럭 먹을 만하다. 이제부터는 계속 고도를 올려야 한다. 체력과 고소에 대한 부담이 슬슬 올라온다.

쉘라마을 뒤편에서 촬영한 마나슬루산군과 구름.

11월 26일

부디간다키 콜라의 세찬 물소리에 잠에서 깼다. 새벽 2시밖에 안 됐다. 산에서는 저녁 8시 전에 취침한다. 마땅히 할 것이 없다. 피곤하므로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난다. 그래서 하루가 길게 느껴진다.

이곳에서 한 달 전에 현지인이 곰의 습격을 받아 크게 다쳤다고 한다. 카트만두로 이송해서 목숨은 건졌다고 하니 다행이다. 이 지역은 정글이 깊어 야생맹수를 만날 수 있어 조심해야 한다.

아침을 먹고 남룽(2,630m)을 향해 출발했다. 구름다리를 건너 오르막길을 오르니 라나마을(1,910m)이 나타난다. 마니스톤이 길게 늘어서 있다. 마니스톤은 티베트어로 불경을 새겨 넣은 돌이다.

주로 자식들이 돌아가신 부모님을 위해 공양한다. 이 지역의 마니스톤은 불경뿐만 아니라 부처님이나 나한상, 보살상, 탑 등을 새겨 넣어 이채롭다. 돈을 받고 전문적으로 제작하는 석공이 따로 있다.

살림이 넉넉한 사람은 탑을 공양하기도 한다. 탑은 격에 따라 명칭이 좀 다르다. 부처님의 사리가 봉안된 탑은 초리덴이다. 큰스님의 사리가 봉안된 탑은 초르덴이다. 부모님을 위해 공양한 탑은 쪼르덴이라고 한다.

리미마을의 초르덴과 뒤에 마나슬루산군이 보인다.

묘사한 부처님을 자세히 살펴보면 손의 방향과 손가락 모양이 각기 다른 걸 알 수 있다. 손이 바닥을 향하거나, 손바닥을 겹쳐 엄지를 붙인 자세도 있다. 이를 수인이라 하는데 부처님과 보살에 따라 손모양이 다르다.

라나마을을 지나 긴 구름다리를 건넌다. 세랑 굼바 방향으로 스린기 히말(7,161m)이 살짝 보인다. 도보로 하루 정도 걸린다고 한다. 뷰가 좋으면 가보려고 했으나 별로라고 하여 포기했다.

비히마을(1,990m)의 마니스톤은 오래되어 돌이끼가 잔뜩 끼어 있다. 강을 끼고 오르락내리락 진행한다. 반룽마을을 지난다. 강가의 절벽에는 거센 물결에 파인 세월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수억 년을 공들인 자연의 조각은 감탄을 자아낸다. 구름다리를 지나 갚마을로 향했다. 양지바른 게스트 하우스에서 점심을 먹었다. 집 앞에는 큰 탑이 있고, 출입문은 곰파(절)를 본떠서 단청을 칠했다. 여기서 남룽까지 4시간쯤 걸린다고 주인이 귀띔한다.

갚마을을 지나 정글을 올라간다. 위쪽의 마을은 프록마을(2,397m)이고, 강 건너편은 착마을이다. 네팔의 산간 마을은 계단식 밭이 있고, 흙과 돌로 만들어진 가옥이 있는 게 보통이다.

마을들은 흙길로 연결된다. 길에는 노새의 배설물이 섞여 있어 먼지가 풀썩이면서 코로 마구 들어와 호흡이 벅차다. 그러다 찻길이 뚫리면 노새는 사라지고, 가옥들은 현대식으로 바뀐다. 피할 수는 없으나 보존과 활용을 모색했으면 싶다.

남룽에 도착했다. 나무로 지은 신축 로지는 깨끗하다. 식당도 깔끔하고, 장작 난로를 지펴서 따뜻하다. 허름한 로지는 경제 논리에 밀려 도태된다. 가능하면 특유의 건물과 멋을 살렸으면 좋겠다.

11월 27일

남룽의 밤은 고요하다. 개도 안 짖고, 물소리도 없다. 뜨거운 물을 채운 보온 물주머니를 껴안고 잤더니 몸이 개운하다. 침낭이 있어도 보조 수단으로 핫팩이나 유단포를 가져가는 게 좋다.

이곳의 로지는 주로 나무로 짓는다. 벽에 틈이 많아 찬바람이 들어온다. 난방 시설은 없다. 침낭에 들어가서 코와 입만 내놓고 자야 한다. 그러다가 잠결에 침낭의 지퍼를 열기라도 하면 오한이 들 정도로 춥다.

아침 날씨는 쌀쌀하다. 응달이나 물기가 있는 곳은 얼어서 미끄럽다. 스태프들은 무거운 짐을 지고 있어 일단 넘어지면 다친다고 봐야 한다. 병원이 멀어서 치료는 어렵다. 그래서 낙상을 조심해야 한다.

반잠마을을 지난다. 마니스톤이 길게 늘어서 있다. 오래된 마니스톤은 대부분 티베트어 불경을 새겨 넣었다. 그러나 최근에 제작한 석판은 불경보다 불화가 더 많다. 마니스톤도 유행을 타는 모양이다.

어김없이 노새의 무리는 올라가고, 또 내려온다. 짐을 지고 올라갈 땐 힘겹고, 짐을 부리고 내려올 땐 홀가분해하며 뛰어간다. 우리 인생도 다를 바 없다. 나는 어떤 짐을 지고 있을까. 올라가는가, 아니면 내려가는가.

리미마을을 지난다. 밭에서 20여 마리의 히말라야 흰꼬리 원숭이들이 감자를 솜씨 있게 캐서 먹는다. 머리와 꼬리는 희고, 덩치가 크다. 아이 두 명이 악을 쓰며 쫓아간다. 녀석들은 겁을 내지 않고 슬그머니 자리를 피한다.

점심은 소마을(2,880m)에서 먹기로 했으나 로지들이 문을 닫았다. 할 수 없이 로마을(3,180m)까지 계속 올라갔다. 늦은 점심을 먹고 쉬알라(3,500m)로 향했다. 정글을 올라가는 길이라 힘이 든다. 오후 4시가 되어서야 도착했다.

로지 주인은 2000년도 초반 우리나라에 와서 포천에서 10년을 일했다고 한다. 상당한 돈을 벌었고, 돌아와서 이 로지를 지었다. 동생들을 잘 가르쳐서 지금은 캐나다와 미국에서 잘살고 있다며 자랑한다. 한국에 대해서 좋은 감정과 추억을 가지고 있다.

그는 이 지역에 눈표범과 곰이 산다고 경고했다. 며칠 전 길에서 마주쳤다고 한다. 눈표범은 체구가 작아도 소를 잡아먹는 맹수다. 곰은 옥수수를 좋아해서 마을로 자주 내려온다. 특히 혼자 있을 때는 조심하라고 일러준다.

우리가 내일 풍젠곰파(5,039m)에 간다니까 그는 그곳이 영험하다고 귀띔해 준다. 티베트인들은 카일라스, 초모랑마(에베레스트), 강풍젠(마나슬루)을 신성시한다. 이 절은 마나슬루 바로 아래 위치한다. 그곳에서 기도하면 카일라스에 간 것과 다름없다고 한다.

마을 뒤쪽이 뷰포인트다. 처음에는 구름이 끼어 있다가 해가 떨어질 무렵에야 마나슬루는 멋진 노을을 드러냈다. 거대하고 붉은 봉황새가 설산 위를 날아가는 듯하다. 사진은 기다림의 연속이다. 끈질기게 기다리면 언젠가 기회는 온다.

<다음 회 계속>

월간산 2월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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