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치의 전쟁에서 국익의 전쟁으로···달라진 국제질서[러·우전쟁 4년]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이후 4년 동안 이 전쟁을 둘러싼 세계 질서와 국제사회 인식은 크게 달라졌다. 이 전쟁은 당초 민주주의 국가인 우크라이나에 대한 권위주의 국가 러시아의 무력 침공으로 규정됐으나,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 2기 출범과 대서양 동맹의 균열 등으로 그 구도가 흔들리고 있다. 이념과 가치에 기반한 연대가 전략적 이해관계 중심으로 재편되면서 전쟁을 둘러싼 셈법은 한층 복잡해졌다.
2022년 2월24일(현지시간)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전면 침공하자 서방 주요 지도자들과 언론은 민주주의에 대한 권위주의의 무력 도전이자 새로운 냉전 구도의 출현으로 판단했다.
미 일간 뉴욕타임스는 이날 ‘푸틴, 2차 냉전을 개시하다’라는 제목의 사설을 내보냈고, 월스트리트저널은 “서방과 러시아 사이의 신냉전이 시작될 것”이라고 보도했다. 영국 가디언은 ‘민주주의의 암흑의 날’이라고 표현했다.
당시 조 바이든 미 대통령은 “이번 공격이 초래할 죽음과 파괴는 오로지 러시아의 책임”이라며 “러시아는 심각한 대가를 치를 것이다. 전 세계 민주주의 국가들이 함께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러·우크라이나 전쟁 1년을 며칠 앞둔 2023년 2월20일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를 예고 없이 깜짝 방문해 “미국이 여기에 있다”라고 전 세계에 알렸다.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와 유럽연합도 미국과 한목소리를 내며 대규모 대러 제재와 군사·재정 지원으로 우크라이나를 지원했다.
그러나 전쟁이 장기화하면서 이해관계의 축이 늘어났다. 지난해 1월 트럼프 행정부 2기 출범 이후 ‘미국 우선주의’를 전면에 내세우면서 연대에는 균열 조짐이 나타났다. 특히 대러 압박을 통한 종전을 추구하던 대서양 동맹이 유례없는 파열음을 내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당선 직후부터 방위비를 충분히 부담하지 않는 나토 회원국을 강하게 비판하며 국내총생산(GDP)의 5% 수준까지 국방비를 늘릴 것을 요구했다. 그는 분담금을 내지 않는 국가에 대해서는 러시아의 공격을 부추기겠다는 취지의 발언을 했고, 적게 내는 국가들을 “도둑”에 비유하는 등 거친 표현으로 압박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나토 회원국 덴마크의 자치령인 그린란드에 대한 영토 야욕을 드러내면서 균열은 더욱 커졌다.

지난해 8월 트럼프 대통령이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을 알래스카로 초청해 손을 맞잡은 장면은 상징성이 컸다. 러시아에 우호적이라는 평가를 받아온 트럼프 대통령의 외교 기조가 드러난 장면으로 읽혔기 때문이다.
싱크탱크 유럽정책센터의 폴 테일러 연구원은 지난 17일 보고서에서 “나토에서 여전히 지배적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미국이 원하지 않는 사안은 동맹 차원에서 추진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그는 특히 트럼프 대통령의 재선 및 푸틴 대통령과의 개인적 관계가 맞물리면서 전후 우크라이나에 대한 안전보장을 나토 틀 안에서 계획·이행하기는 사실상 어려워졌다고 분석했다.

북한군의 러시아 지원은 전쟁의 지리적 범위를 아시아로까지 확장시켰다. 1만명이 넘는 북한군이 쿠르스크 등에 투입되면서 북·러 군사 협력은 상호방위조약에 준하는 수준으로 강화됐다. 6·25 전쟁 이후 장기간 실전 경험이 없었던 북한군은 무인기(드론) 운용 등 현대전을 익히며 전술적 적응력을 높이고 있다.
전쟁은 인도·브라질·남아프리카공화국 등 ‘글로벌 사우스’(비서구권·개발도상국)가 강대국 사이에서 전략적 입지를 넓히는 계기도 됐다. 이들 국가는 서방의 대러 제재에 동참하지 않으면서도 미국과는 기술 협력을, 러시아와는 자원 거래를 지속하는 ‘전략적 모호성’을 극대화하고 있다.
누르자 노브 호주국립대 교수는 17일 출간된 ‘이스트아시아포럼’ 기고문에서 “러시아 영향권에 있는 중앙아시아 국가들은 전쟁과 관련해 중립을 유지하면서 러시아와의 교역 확대 혜택을 누리고, 동시에 우크라이나와의 관계도 강화하는 등 경제적 실리를 추구하는 독자적 생존 전략을 구축했다”고 분석했다. 러·우크라이나 전쟁이 각국의 안보 이해와 국내 정치, 전략적 계산이 교차하는 복합적 분쟁으로 변하면서 종전 해법을 찾는 일도 한층 까다로워진 것으로 평가된다.
박은경 기자 yama@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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