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언스카페] 열받은 뒤영벌, 공기로 식힌다…날개가 냉각 기류 생성

이영완 기자 2026. 2. 23. 0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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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중서 정지 비행 중 체온 30도 상승
날개가 만든 하강 기류로 5도 낮춰
이동 중에는 보폭 늘려 과열 방지
봄에 호랑버들 꽃을 찾은 뒤영벌. 공중 정지 비행 중 날갯짓이 만든 하강 기류가 체온 급상승을 막는다./Bumblebee Conservation Trust

봄이 되면 벌이 가장 바쁘다. 사방에서 피어나는 꽃을 하나라도 놓칠세라 날갯짓이 갈수록 빨라진다. 그래도 비행 엔진 과열로 문제가 생기는 일은 없다. 자연이 만든 냉각장치가 가동하기 때문이다.

미국 와이오밍대 동물생리학과의 조던 글래스(Jordan Glass) 박사 연구진은 “뒤영벌이 공중에서 정지 비행할 때 하강 기류가 발생해 날개 근육에서 나는 열을 바로 식힌다”고 지난 18일 국제 학술지 ‘영국 왕립학회보 생명과학’에 발표했다.

뒤영벌은 꿀벌과 마찬가지로 작물의 꽃가루를 옮기는 데 쓰는 이로운 곤충이다. 꿀벌은 이름대로 꿀을 모으지만, 뒤영벌은 애벌레를 먹일 꽃가루만 찾는다. 원래는 고추나 가지처럼 꿀 없이 꽃가루만 나오는 작물의 꽃가루받이에 썼지만, 최근 꿀벌 개체 수가 급감하면서 과수 농사에도 많이 투입된다.

◇정지 비행 중 체온 급상승, 바람으로 극복

글래스 박사는 뒤영벌이 꽃 앞에 있을 때 엄청난 열이 발생한다는 점에 주목했다. 뒤영벌은 초당 130~240회의 빠른 날갯짓으로 공중에서 거의 멈춘 듯 비행할 수 있다. 이러면 날개 근육에서 엄청난 열이 나 체온이 주변 공기보다 섭씨 30~35도나 올라간다. 연구진은 실험을 통해 뒤영벌이 이런 치명적인 상황을 극복하는 비결을 찾아냈다. 바로 열을 식히는 바람이었다.

연구진은 인위적으로 바람을 불어주는 풍동(風洞) 장치에서 초당 1500 장면을 촬영하는 고속 카메라로 북미대륙에 사는 동부뒤영벌(학명 Bombus impatiens)의 비행을 분석했다. 공중에 떠 있는 뒤영벌은 초당 1.22m 속도의 하강 기류를 생성했다. 풍동 장치에 드라이아이스 증기를 넣었더니 뒤영벌 위에서 공기가 깔때기 모양으로 좁아졌다가 난류가 아래로 밀려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다음에는 하강 기류가 실제로 냉각 효과를 내는지 확인했다. 연구진은 막 안락사시킨 뒤영벌 18마리를 실험 장치에 넣고 열풍기로 50도까지 가열했다. 그런 다음 살아 있는 뒤영벌이 공중에 떠 있을 때와 같은 속도로 공기를 분사했을 때 얼마나 빨리 냉각되는지 측정했다. 하강 기류는 뒤영벌의 체온을 5도나 낮췄다.

이번 연구 결과는 단순히 호기심을 해소한 차원에 그치지 않는다. 세계식량기구(FAO)에 따르면 세계 100대 농작물 중 71종이 꽃가루받이를 벌에 의존하고 있다. 벌의 안전은 인간의 생존 문제와 직결되는 셈이다. 글래스 박사는 “실험에서 측정된 냉각 효과가 없다면 공중에 떠 있는 뒤영벌은 2분 이내에 과열로 추락할 것”이라며 “온도가 뒤영벌의 비행에 미치는 영향을 이해하면 지구 온난화 속에서 곤충의 생존 능력을 더 정확히 예측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미국 애리조나 사막의 선인장 꽃에 몰린 꿀벌들. 기온이 올라가면 체온 상승을 막기 위해 날갯짓 횟수를 줄이고 진폭은 늘려 비행 효율을 높인다./미 애리조나 주립대

◇날갯짓 방식 바꿔 과열 방지하기도

뒤영벌의 날개에서 발생하는 냉각 효과를 정밀하게 측정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그럼에도 여전히 의문점이 남아 있다. 예를 들어 전진 비행 중 냉각 효과의 규모는 실험실에서 측정하기가 공중에 떠 있을 때보다 어렵다. 인도 타타 기초연구소의 산제이 사네(Sanjay Sane) 박사는 하강 기류의 냉각 효과는 공중 정지 비행 중에만 의미가 있다고 의심했다. 글래스 박사는 사막에 사는 꿀벌에서 이동 중에도 몸을 식히는 방법에 대한 단서를 찾았다.

글래스 박사는 2024년 ‘미국립과학원회보(PNAS)’에 사막에 사는 꿀벌은 기온이 올라가면 비행 방식을 조정해 체온 상승을 막는다고 발표했다. 날개를 더 크게 휘저어 원하는 곳까지 가는 데 필요한 날갯짓 수를 줄이는 것이다. 사람으로 치면 보폭을 늘리는 것과 같다. 연구진은 이러한 비행 방식 덕분에 외부 기온이 높을 때도 체온을 유지할 수 있다고 밝혔다.

벌에도 수랭식 냉각 장치가 있다. 몸에서 수분을 방출해 열을 식히는 것이다. 이는 쇠똥구리가 한낮에 달궈진 땅을 이동할 때 자주 소똥 위에 올라가는 것과 같은 원리다. 소똥에 있는 수분이 증발하면서 체온을 낮출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막에서는 수분을 마음대로 쓸 수 없다. 꿀벌이 일정량 이상의 수분을 잃으면 탈수 상태에 빠지거나 기능 상실 상태가 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사막에 사는 꿀벌은 40도까지 기온이 올라가도 집에 가져오는 꿀의 양이 다르지 않았다. 뭔가 다른 냉각 기술이 있는 셈이다.

연구진은 풍동 장치 온도를 25도와 40도로 달리하면서 양봉에 쓰는 유럽 꿀벌(Apis mellifera)이 나는 모습을 고속 카메라로 촬영했다. 꿀벌은 기온이 높아지면 날갯짓 횟수를 줄이는 대신 날개를 더 크고 넓게 휘둘렀다. 글래스 박사는 “날갯짓 빈도를 줄이고 진폭을 키워 비행 효율을 높이는 것”이라며 “이를 통해 수분을 증발시켜 몸을 식힐 필요성이 줄어든다”고 설명했다.

일본 꿀벌들이 장수말벌을 둘러싸고 열 공격을 하는 모습. 꿀벌이 비행 근육을 진동하면 안쪽 온도가 47도까지 올라가 장수말벌을 익혀 죽일 수 있다./일본 다마가와대

◇날개 근육서 나는 열, 무기로도 사용

벌의 날개 근육에서 발생하는 열은 무조건 없애야 하는 대상이 아니다. 때론 집을 지키는 무기가 된다. 동아시아 토종 꿀벌(Apis cerana)은 몸길이가 40㎜나 되는 거대한 장수말벌(Vespa mandarinia)을 만나면 수십, 수백 마리가 둘러싸 체온으로 익혀 죽인다. 이른바 ‘열 덩어리 공격(Heat balling)’이다.

일본 도쿄대 이학부의 구보 타케오(Takeo Kubo) 교수 연구진은 2012년 국제 학술지 ‘플로스 원’에 꿀벌들이 장수말벌을 둘러싸고 열 공격을 하는 데 관여하는 신경회로를 발견했다고 발표했다. 연구진에 따르면 일본 꿀벌 500마리 이상이 덩어리를 이루고 비행 근육을 진동하면 안쪽 온도가 47도까지 올라가 30~60분 만에 일본 장수말벌이 죽는다.

꿀벌의 치사 온도는 48~50도이지만 장수말벌은 그보다 낮은 44~46도에서 죽는다. 덕분에 열 덩어리 공격에서 꿀벌은 살아남고 말벌만 죽는다. 연구진은 “열 덩어리 공격을 유발하는 신경 회로가 유럽 꿀벌에서는 관찰되지 않는다”며 “동아시아에 서식하는 장수말벌에 잡아먹히지 않으려고 진화한 행동”이라고 설명했다.

국내 양봉 농가에서 장수말벌 피해를 계속 입는 것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한국 토종 꿀벌은 열 덩어리 공격을 알지만, 양봉용 유럽 꿀벌은 장수말벌을 만난 적이 없어 그런 무기를 개발하지 못했다.

참고 자료

Proceedings of the Royal Society B: Biological Sciences(2026), DOI: https://doi.org/10.1098/rspb.2025.2166

PNAS(2024), DOI: https://doi.org/10.1073/pnas.2311025121

PLOS ONE(2012), DOI: https://doi.org/10.1371/journal.pone.0032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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