빠른 AI, 느린 경제정책[마은성의 경제 돋보기]

한경비즈니스외고 2026. 2. 23. 0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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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한국의 AI 풍경은 '속도' 그 자체다.

우리는 아직 AI가 성장잠재력을 얼마나 끌어올릴지, 고용과 임금 구조를 어떻게 바꿀지, 분배를 어디에서 악화(혹은 개선)시킬지, 그리고 세수·사회보험·국가채무 경로에 어떤 영향을 줄지에 대해 '정책에 바로 쓸 수 있는' 근거를 충분히 축적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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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산업 뒷받침하기 위해선 고용·생산성 정량화 필요해
재정 전망에 AI시나리오 포함하고, 변화할 고용·조세 데이터 마련해야
마은성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



요즘 한국의 AI 풍경은 ‘속도’ 그 자체다. 민간에서는 반도체·클라우드·모델 경쟁이 숨 가쁘게 전개되고, 로봇은 더 이상 전시장 소품이 아니라 공장과 서비스 현장으로 빠르게 들어오고 있다. 이에 발맞춘 정부의 과학기술 분야에 대한 대대적 투자도 환영할 만하다. 정부는 2026년 예산 계획에서 AI 분야에 10조1000억원을 투입하겠다고 밝혔고, 고성능 GPU 1만5000장 확보 같은 인프라 확충도 포함했다. 2026년 정부 전체 R&D 예산 역시 35조5000억원(전년 대비 19.9% 증가)으로 확정됐다.

문제는 AI 투자는 빠른데 이를 뒷받침할 경제정책은 아직 느리다는 데 있다. 기술의 가속에 비해 AI의 경제적 파급효과를 정량적으로 측정하고 정책으로 번역하는 체계가 뒤따르지 못한다. 우리는 아직 AI가 성장잠재력을 얼마나 끌어올릴지, 고용과 임금 구조를 어떻게 바꿀지, 분배를 어디에서 악화(혹은 개선)시킬지, 그리고 세수·사회보험·국가채무 경로에 어떤 영향을 줄지에 대해 ‘정책에 바로 쓸 수 있는’ 근거를 충분히 축적하지 못했다. 결국 기술은 ‘가능성’으로 전진하는데 경제정책은 ‘근거’와 ‘합의’가 부족해 뒤처지는 구조가 된다. 더구나 초저출산·초고령화로 노동력 부족과 재정 부담이 동시에 커지는 한국에서는 작은 정책 지체도 더 큰 비용으로 이어질 수 있어 더욱 정교하고 신속한 정책 설계가 절실하다.

해외는 이 간극을 오래전부터 메우려 해왔다. 대런 아세모글루 등을 비롯한 경제학자들은 미국과 유럽을 대상으로 로봇과 루틴 편향적 기술 진보가 고용구조, 임금 및 생산성에 미치는 영향을 정량적으로 측정해 왔고, 더 중요한 점은 이런 연구가 학술적으로만 머물지 않고 정책으로 ‘번역’되는 경로가 제도화되고 있다는 것이다.

미국은 AI 도입이 고용과 임금에 미치는 영향을 통계·행정자료로 지속적으로 점검하고, 그 결과를 바탕으로 노동전환 지원을 체계화하려는 방향을 공식화했다. 영국은 AI 확산으로 벌어질 수 있는 역량 격차를 근거 검토로 정리한 뒤 전 국민 업스킬 프로그램과 역량 기준 마련으로 이어가고 있다. 독일은 기술 대체 위험이 큰 직무의 재직자가 더 쉽게 직업훈련 지원을 받도록 제도를 설계해 충격 전망을 예산 배분의 규칙으로 연결했다.

물론 한국도 움직이고 있다. 정부는 AI 대응 일자리정책 로드맵 추진과 AI 인재양성 확대 등 여러 대응을 시작했다. 그러나 아직 정책 설계를 떠받칠 정량적 측정 체계가 약하다. 정책은 ‘좋은 의도’만으로는 효율적으로 작동하지 않는다. AI로 인해 무엇이 얼마나 늘고 무엇이 얼마나 줄며, 그 결과 누가 이익을 보고 누가 비용을 치르는지를 숫자로 확인할 때에야 정책의 우선순위와 예산 배분이 정교해지고 실행 가능한 대안이 나온다. 즉 정량화가 선행돼야 정책이 효율적이 되고 그래야 정책이 실제로 나온다.

이를 위해 첫째, 중기 거시 전망과 재정 전망에 AI 시나리오를 명시적으로 포함해야 한다. 둘째, AI로 대체·보완될 영역을 산업 단위가 아니라 업무 단위까지 식별하고 충격을 흡수할 고용안전망과 이동을 촉진할 재교육 인프라를 패키지로 설계해야 한다. 셋째, AI가 세수 기반과 사회보험 기여 기반을 어떻게 바꾸는지부터 계산해 조세 및 재정의 중장기 추계를 업데이트해야 한다. 결국 측정이 앞서야 정책도 속도를 낼 수 있다. 속도 경쟁의 승부는 기술이 아니라 그 기술을 사회가 감당할 수 있게 만드는 정책 역량에서 갈린다.

마은성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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