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에선 상상도 못할 일”…취미가 일상이 된 부부의 놀이터 [전원생활 I 家家호호 ]

이수정 기자 2026. 2. 23.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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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여주 ‘여여가’

이 기사는 전원의 꿈 일구는 생활정보지 월간 ‘전원생활’ 2월호 기사입니다.

은퇴 후의 삶은 얼마나 능동적일 수 있을까. 김성영·안언이 씨 부부는 경기 여주 당남리마을에서 마치 어린 시절로 돌아간 듯 의무와 규율에서 벗어나 순수한 놀이의 시간을 보내고 있다. 서예, 술 빚기, 사진 찍기, 자전거 라이딩까지. 두 사람에게 ‘여여가’는 취미가 일상이 되는 즐거운 놀이터다.
사계절 내내 환한 햇살이 드리우는 집
판판한 평야가 드넓게 펼쳐진 경기 여주. 양쪽으로 논밭이 펼쳐진 시골길을 따라 여주버스터미널에서 차로 15분 남짓을 달리면 당남리마을에 닿는다. 마을 입구에 들어서자 멀리 갈 것도 없이 김성영(63)·안언이(58) 씨 부부의 아담한 집 한 채가 보였다. 마침 아내 안씨가 외출하고 돌아온 것인지 마당 앞에 차를 세우곤 기자를 맞았다. 꽃과 풀들이 잠을 자는 겨울의 마당은 삭막하기 마련이건만, 가림막 하나 없이 훤히 트인 앞마당엔 볕이 내려앉아 그늘 한 점 없이 맑은 풍경이다. 현관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서자, 마당에서 봤던 양양한 햇살이 그대로 이어져 집 안 공기에 온기가 감돌았다.
김성영(63)·안언이(58) 씨 부부의 경기 여주 ‘여여가’

“집이 환하죠? 처마를 놓지 않고 커튼도 달지 않았어요. 오후에는 해가 부엌이 있는 집 안 끝까지 들어오는데 참 좋더라고요. 아파트에선 상상도 못 했을 일이죠.”

이웃들은 장마철 빗물이나 사생활 침해를 걱정하지만, 부부는 아직 그 불편을 실감하지 못했다고 말한다. 창문에 빗물 튀는 소리도 좋고, 다니는 사람도 많지 않기 때문이다.

며칠 전 자신이 직접 빚은 가양주라며 서재에 놓아둔 술독을 열어 보여주는 남편 김씨의 얼굴엔 기분 좋은 여유가 묻어 있다. 두 사람이 함께 보내기에 모자람 없을 117㎡(35평) 규모의 집 안 곳곳엔 취미가 일상이 된 부부의 삶이 무늬처럼 새겨져 있다. 거실과 방엔 김씨가 쓴 크고 작은 서예 작품이 걸려 있고, 2층 다락으로 올라가는 계단 벽면엔 안씨가 남편과 자전거를 타고 산과 들을 다니며 카메라 렌즈에 담은 풍경 사진이 걸려 있다.

중년은 취미가 생활이 될 시기라 생각하며 준비성 좋게 10여 년 전부터 일 외에 활력이 되어줄 활동을 차근차근 준비해온 시간들이 두 사람에겐 이제 자연스러운 일상이 됐다. 3년 전 이를 도모할 최적의 놀이터인 전원주택도 마련했기에 부부에겐 별다른 걱정이 없는 요즘이다.

도시를 떠나 탁 트인 평야가 있는 시골로
포근한 집 안 공기만큼이나 푸근한 미소가 아름다운 두 사람은 5년 전 처음 당남리마을을 찾았다. 서울시청에서 20여 년을 공무원으로 근무해온 김씨의 오랜 꿈은 은퇴 후 시골에 집을 짓고 사는 소박한 삶. 두 아들이 서울에서 자리를 잡고, 김씨의 은퇴 시기가 가까워지면서 마침내 시골에 돌아가겠다는 계획을 실행에 옮겼다.

“저는 경남 산청, 아내는 경남 양산이 고향이에요. 시골에서 나고 자라서인지 나이가 들고 도시에서 사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시골이 그리워지더라고요. 처음엔 고향이 있는 경남 지역으로 땅을 찾아봤지만, 서울에 사는 아이들이 오가기엔 부담이 커 경기도권으로 알아보게 됐죠.”

땅은 언덕이 아닌 평지를 고집했다.

“언덕 위에 있는 집은 조망은 좋지만 나이가 들면 생활이 불편할 거라고 생각했어요. 한곳에서 오래 살기 위해선 생활에 불편이 적은 평지가 좋겠더라고요. 그러다 보니 평지가 많은 여주 쪽으로 알아보게 됐죠. 여긴 원래는 농지로 쓰는 땅이었어요. 근처에 축사나 퇴비장도 없고, 저랑 아내가 자전거 라이딩이 취미인데 몇 분 거리에 자전거 길이 있는 걸 보고, 딱 좋겠다 싶었어요.”

하지만 매입한 땅에 곧장 집을 짓진 않았다. 1년간은 서울과 여주를 오가며 10년 전부터 주말농장에서 배워온 농사법으로 밭을 일궜다. 초보 귀촌인으로서 마을 이웃들과 서서히 안면을 트는 준비 기간이기도 했다.

유년 시절의 동심을 소환하는 설계
김씨는 설계를 맡길 건축사를 알아보던 차, 품건축주식회사의 집 짓기 특강을 듣게 되면서 김용만 대표를 만났다. 환경친화적인 주택을 지향하고, 시골에서 전원생활을 꿈꾸는 이들과 훗날 한마을에 살며 주택 공동체를 이루고 싶다는 김 대표의 꿈에 자신의 꿈이 맞닿아 있음을 느낀 김씨는 그에게 설계를 맡기기로 결심한다.

시골 전원주택에 대한 부부의 막연한 상상은 설계 상담을 통해 점차 구체화됐다. 김 대표는 다양한 취미생활을 가진 부부의 일상을 고려해 ‘시골에서 나고 자랐던 부부의 유년 시절의 동심을 소환하는 집’을 제안했다. 집 안팎으로 유연하게 활용 수 있는 공간을 충분히 설계해 부부가 다채로운 일상을 보낼 수 있게 한 것.

가로로 긴 슬라이딩 창 아래로 좌식 공간이 놓인 서재. 바닥엔 가공하지 않은 자연 황토로 만든 황암토타일을 깔았다.

바깥 햇살을 좋아하는 아내 안씨를 위해 1층 서재엔 실내 마루를 설치하고 창밖으로 서정적인 시골 풍경을 오롯이 감상할 수 있는 좌식 공간을 만들었다. 밭에서 흙 만지기를 좋아하고, 한 달에 꼭 한 번은 직접 술을 빚는 남편 김씨를 위해 앞마당과 뒷마당에 마련한 마루 공간은 비좁은 아파트 베란다에 비할 바 없이 넉넉하다.

2층 다락방에 자리한 서예실.

2층 다락 공간은 널찍한 평수만큼이나 쓰임이 많다. 짐을 보관하는 창고이자 아지트 같은 공간이다. 나무 계단을 중심으로 오른쪽엔 주말이면 부부가 차려준 집밥을 먹으러 내려오는 두 아들이 푹 쉬어갈 방을 마련했다. 왼쪽엔 김씨가 누군가의 방해도 받지 않고 서예 작업에 몰입할 수 있는 서예실을 꾸몄다.

약 4개월간의 공사를 마치고 여린 연둣빛 이파리가 짙어지기 시작할 6월에 부부는 김 대표와 마을 이웃 등을 초대해 집들이를 했다. 마당에서 부부가 준비한 음식을 나눠 먹고, 조그만 축하 공연을 곁들인 그날은 모두가 부부의 새 시작을 축하하는 자리였다.

“연고가 없는 낯선 시골에서 정주하게 된 거라 걱정이 많았는데, 집들이를 한 이후 마음이 한결 놓였어요. 다들 저흴 응원해주고, 환대해주니 든든하더라고요.”

비로소 시골에서 찾은 여여(如如)의 시간
‘여여가(如如家)’라는 집 이름엔 여주에 살면서는 주변의 반응에 일희일비하지 않고 스스로 평안해지면 좋겠다는 부부의 바람이 담겼다. 이곳에 들어와 산 지 어느덧 두 해가 지나고, 거실 TV 탁자엔 이제 세 번째 신년 탁상 달력이 놓였다. 한 달에 두세 차례 지인을 만나거나, 일주일에 한 번 10년 넘게 다닌 서예 교습소를 찾는 날 외엔 대부분 집에서 시간을 보내는 김씨는 그렇게 바랐던 주변에 메이지 않는 자유로운 일상을 얻었다.

“서울에 살 때도 평정심을 가지려고 노력했죠. 하지만 잘 되진 않더라고요. 직장에선 의무감으로 맺어진 관계가 많고, 이해관계도 복잡하게 얽혀 있곤 하니까요. 시골에 내려와 살고부터는 인간관계가 훨씬 단순하고 순수해졌어요. 바깥 소음이 없는 것뿐 아니라, 마음에도 소음이 사라진 모양이에요.”

시골살이는 은퇴 이후의 삶을 더 풍성하게 만들고 있다.

현관에서 1층 서재까지 이어진 복도. 이 복도를 통해 거실에서 서재, 침실까지 1층의 모든 공간이 연결된다.

 “도시에선 은퇴하고 나면 일상이 산이나 도서관가는 게 전부가 되곤 하잖아요. 하지만 시골에 살다 보니 은퇴 후 삶이 이전보다도 다채로워요. 농번기에는 인근 농가에 일손도 품앗이하고, 겨울철에는 특용작물 연구 기관에서 짬짬이 아르바이트하면서 용돈벌이도 해요. 낮에는 각자 좋아하는 일 하고, 저녁엔 운동 삼아 같이 자전거 타고 나가면 무료할 틈이 없어요.”

물론 시골살이가 처음부터 좋기만 한 건 아니었다. 인근엔 마트도 없고 배달 음식도 시킬 수 없어 음식을 해 먹는 일도 더 많아졌고, 대중교통도 넉넉지 않아 이동이 여간 불편한 게 아니었다. 많은 이들이 그런 이유로 시골살이를 단념하지만, 부부에겐 그런 불편을 감수할 만큼 시골에서 얻은 일상의 평화가 소중하게 다가왔다. 부부는 봄이 오면 장거리로 자전거 라이딩을 가볼 계획이다.

“아내랑 취미생활을 함께하면서 서로 의지가 되더라고요. 앞으로도 서로를 버팀목 삼아 시골에서 즐겁게 세월을 보내고 싶어요.”

김성영·안언이 씨 부부.

대지면적 695㎡(210.23평)

연면적 117.72㎡(35.61평) 

건축구조 경량목구조외장재 백색 고벽돌타일

내장재 친환경 벽지, 3중유리 시스템창호

[Mini Interview] 품건축주식회사 김용만 대표
Q사방이 트여 있는 땅에 주택을 지을 때 사생활을 지키는 방법은?

A 도로나 땅보다 부지의 높이가 높아야 합니다. ‘여여가’의 경우 땅에서 방바닥까지 50㎝ 높이 차이를 두고 건물을 올렸습니다. 마당 가장자리에 담장을 쌓을 수도 있지만 담장 대신 생울타리를 활용해 자연과의 조화를 도모하는 것도 좋습니다.

Q농지를 집을 짓는 부지로 활용할 때 확인할 부분은?

A 농지였다고 해서 특별히 주의점 할 점이 있다기보단 주변과의 관계성 차원에서 몇 가지 고려해야 합니다. 인근에 축사·퇴비장이 있는지 사전에 확인해야 합니다. 또 농지는 대개 사방이 트여 있는 입지라 일조는 좋지만 바람이 강해 이를 대비해야 합니다.

Q 농지를 주택용 땅으로 용도변경 시 행정적으로 주의할 점은?

A 우선 건축인허가와 개발행위허가가 다르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건축인허가는 집을 짓는 행위에 대한 허가이며 개발행위허가는 땅의 모양을 바꾸는 일에 대한 허가입니다. 농지에 집을 지을 시, 땅의 모양을 바꾸는 형질변경과 전답을 대지로 바꾸기 위한 개발행위허가, 그리고 건축인허가까지 세 가지 행정절차가 동시에 진행되어야 합니다.

이수정 기자 I 사진 고승범(사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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