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의 한자와 한글 현판, 그리고 태극기 [최수문 선임기자의 문화수도에서]
문자와 언어 혼동하기 때문으로 해석돼
문화유산은 원래대로 복원 원칙 중요
‘태극’처럼 한자도 공유 유산 인식돼야

‘태극기’는 우리의 자랑스러운 국기다. 태극은 유교(유학)가 주류든 아니든 동아시아에서 광범위하게 사용됐고 우리나라에서도 마찬가지다. 헌데, 그동안 중국과 관련해 교류를 해온 지인에게 들은 말이 있다. 과거 중국 현지에서 행사를 할 때 태극기를 걸어놓으면 중국인들이 때로 항의를 했다고 한다. “태극은 중국 것인데 왜 한국이 이를 국기에 사용하나”라는 것이다. 그에게 뭐라고 대답했느냐고 물어보니 대부분의 경우 얼버무렸다고 한다.
다행인지 최근에는 그렇게 따지는 사람이 없다고 한다. ‘대한민국의 태극기’라는 사실이 중국인들에게 익숙해졌기도 하고 또 공유라는 개념을 이제야 깨달은 것일 수도 있다. 역사상으로 보면 특정 문양에 ‘태극’이라는 이름을 붙인 것은 고대 중국인들인 모양이다. 그리고 중국인들이 거기에 음양과 유학에 관한 개념을 적용했다. 하지만 본래의 태극 문양 자체는 한국을 비롯해 각국에서 널리 사용됐다. 참고로 현재 공식적인 몽골과 티베트(망명정부) 국기에도 태극 모양이 들어가 있다. (우리 태극기를 구성하는 태극·팔괘와는 달리 이들 국가에는 태극만 있다.) 이를테면 ‘십자가’ 모양을 각국이 국기로 사용하고 있지만 이를 우리들만의 것이라며 따지는 사람은 아직 본 적이 없다.
동양 문화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는 태극과 태극기를 사용하면서 대한민국은 그 상징성을 분명하게 내세울 수 있게 됐다. 동양 전통에서는 근본 없는, 유럽에서 건너온 ‘별’ 모양을 국기에 사용하는 중화인민공화국과는 차원이 다른 셈이다.


태극기 이야기를 꺼낸 것은 최근 다시 논란이 되고 있는 경복궁의 광화문 한글 현판(편액) 때문이다. 최휘영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은 지난달 20일 이재명 대통령이 주재한 국무회의에서 광화문 현판의 한자에 더해 한글 추가 병기를 추진하겠다는 내용을 보고했고 이어 최근 언론 간담회에서도 이에 대한 공론화 필요성을 제기했다. 앞서 윤석열 정부 때인 2024년에도 문체부가 현재의 한자 현판을 한글 현판으로 바꾸자고 제안했다가 흐지부지된 바 있다. 한글 현판 문제가 2년도 안 돼 또 부각된 것이다.

이번에는 한자 현판을 그대로 두고 한글 현판을 추가하자고 한 점이 조금 다르기는 하다. 문체부는 ‘광화문 한글 현판’의 필요 이유로 “현대사가 살아 숨 쉬는 역동적 공간인 광화문에 현재와 미래 가치를 담은 한글 현판으로 살아 있는 국가상징 공간화하고, 또 한자 현판으로 인한 외국인의 문화적 오해를 해소하고 독창적인 한글로 대한민국의 차별화된 정체성과 품격을 전 세계에 홍보하며, 올해 훈민정음 반포 580주년과 한글날 선포 100주년을 맞아 세종의 자주정신을 계승하기 위해”라고 설명했다.
모두 좋은 의미이기는 하다. 다만 대략 정리하면 한글 현판 이야기가 자꾸 나오는 것은 우리의 핵심 광장 앞에 한자로 된 현판이 있고 이는 중국 글자라는 인식에서 비롯된 것이다. 하지만 오히려 한자가 중국 글자라는 개념 자체가 문제이지 않을까 한다. 문자와 언어를, 즉 ‘한자’와 ‘중국어’를 혼동하기 때문이 아닌가 한다. 한자는 중국을 비롯해 한국과 일본 등 많은 나라에서 사용하고 있다. 그나마 최근 한글 전용을 하고 있는 대한민국과 달리 일본은 원래부터 한자 위주다.

만약 광화문 한자 현판을 보고 오해하는 중국인이나 아니면 다른 외국인이 있다면 이는 그들의 지적 능력에 문제가 있다는 의미일 뿐 우리의 문제가 아니다. 현재 광화문에는 태극기의 주요 구성 요소인 ‘팔괘’ 문양도 있다. 경복궁은 조선 말 고종 때 중건된 상태를 기준으로 현재 복원작업이 이뤄지고 있고 광화문 현판도 그에 따른 과정이다. 광화문 현판을 수정한다는 것은 경복궁을 포함한 전체 문화유산(문화재) 복원 계획에 중대한 변경이 가해지는 것이다.
한편으로는 누구도 일본 궁궐의 한자 현판을 바꾸자는 이야기를 하지 않을 듯하다. 영어나 프랑스어 등 로마자(라틴문자)를 쓰는 많은 나라들이 이탈리아 문자가 아닌, 자기들만의 독자적인 문자를 만들어야 한다고 고집하지 않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를테면 지난해 말 교육부의 대통령 업무보고에서 한국고전번역원 원장이 “한자 교육을 확대해야 한다”고 주장한 데 대해 이 대통령도 공감을 표시한 바 있다.


광화문 현판 논의와 관련해서 중요한 것은 전체 경복궁의 복원 문제다. 정부는 2045년까지 경복궁을 시대에 맞게 복원한다는 계획을 세워두고 있기는 하다. 일단 확정된 2차 복원계획(전체 5단계) 2단계 사업이 끝나는 2032년까지는 원래 건물의 약 40%가 다시 세워진다. (1990~2010년 1차 복원 사업 기간에 25%가 완료됐다.) 물론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 조선 시대 경복궁이 지금도 필요하냐는 의문은 여전하다.
가장 문제는 경복궁의 전면 부분이 아닐까 한다. 경복궁 광화문 월대와 함께 현판은 우여곡절을 거쳐 지난 2024년 복원돼 지금과 같은 상태가 됐다. 하지만 광화문을 정면으로 볼 때 오른쪽과 왼쪽에 있는 ‘동십자각’과 ‘서십자각’은 제자리를 찾지 못하고 있다. 일제 강점기에 훼손된 채로, 동십자각은 경복궁의 담장과 잘려 섬으로 남아 있고 서십자각은 아예 없어진 채로 인도에 표지석 하나만 덩그러니 있다. 경복궁을 바라보면 좌우 팔이 잘린 불구(不具)의 모습인 셈이다. 광화문 앞을 지나갈 때마다 가슴이 아픈 것은 필자만의 생각일까.
현재 계획상으로는 경복궁 복원 5단계 마지막인 2045년까지 이들 동·서십자각도 복원한다는 생각이지만 막대한 비용이나 도로망 재정비 문제에서 성사 여부가 확실치는 않다. 진짜로 광화문의 상징성을 찾겠다면 광화문 한글 현판 추가가 아니라 동·서십자각의 복원이 먼저가 아닌가 한다.

한 가지 덧붙이고 싶은 것은 지난달 국무회의에서 문체부가 두개 현판의 병기 사례로 중국 베이징 자금성(쯔진청)을 제시한 것의 비현실성이다. 문체부는 다른 나라의 병기 사례로 “자금성의 현판에 한자와 만주어가 함께 있다”고 했지만 정확히는 ‘한자’와 ‘만주문자’가 있는 것이다. 원래는 한자 현판만 있었지만 만주인들이 중국을 정복하면서 자신들의 지배를 명확하게 하기 위해 하나의 현판에 한자와 만주문자를 더했다.
나중에 신해혁명으로 청나라 만주제국이 붕괴하면서 새 현판을 만들어 한자 단독으로 복귀했지만 일부에서는 문화유산으로서 한자·만주문자 현판이 그대로 남아 있다. 이를 우리의 한자 현판과 한글 현판 병기와 비교하는 것이 잘 이해가 되지 않는다.

최수문 선임기자 chsm@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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