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팡 사태 휘둘리는 韓, 로비정책 개선해야[이태규 특파원의 워싱턴 인사이드]

워싱턴=이태규 특파원 2026. 2. 23. 0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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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팡, 워싱턴DC 전방위 로비에
美하원, 23일 로저스 소환, 밴스도 언급
韓정부 로비 약발 좀처럼 안 보여
유력 로비업체 철저히 활용해야
김범석(왼쪽) 쿠팡 의장이 지난해 1월 17일(현지 시간) 미국 워싱턴DC 콘래드호텔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의 장남인 도널드 트럼프 주니어와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워싱턴특파원단


한국에서 ‘로비’라고 하면 거부감부터 드는 게 사실이다. 정책 입안자들이 특정인에게 돈을 받고 그들을 대변하는 정책을 만들면 안 된다는 것은 한국에서는 상식이다. 워싱턴DC에 파견 나온 한국 기업 주재원들은 한국 본사에 로비 예산을 이야기하면 본사에서 안 좋은 인식부터 갖고 바라본다고 분위기를 전하기도 한다.

하지만 미국에서는 180도 다르다. 외국 정부·기업의 로비 활동은 투명하게 신고만 하면 얼마든지 가능하다. 로비 금액으로 많은 액수를 지출하고 유력한 로비 업체를 고용해 잘만 활용하면 자신의 목소리를 미국 정부·의회에 효과적으로 전달해 정책 변화를 합법적으로 이끌어낼 수 있다.

로비 이야기를 꺼낸 것은 지난해 하반기부터 쿠팡이라는 한 기업에 한국이 휘둘리고 있는 것 같아서다. 2021년 미국에 로비 활동 등록을 한 쿠팡은 2024년 지출액이 330만 달러(약 48억 원)를 넘겼다. 지난해 1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취임식에도 100만 달러를 기부했으며 김범석 쿠팡 의장은 취임식에 직접 참석해 트럼프 대통령의 장남 도널드 트럼프 주니어, 마코 루비오 국무부 장관, 하워드 러트닉 상무부 장관과 사진을 찍으며 친분을 과시하기도 했다.

그리고 실제 효과도 나타나고 있다. 김민석 국무총리가 워싱턴DC를 찾아 J D 밴스 부통령을 만났는데 밴스 부통령이 쿠팡 문제를 언급했다. 백악관 고위 관계자는 한국 언론에 “한국 내 정치적 동기로 인한 표적화, 특히 종교인이나 미국 기업을 대상으로 한 사례에 대한 보도에 여전히 우려하고 있다”며 쿠팡을 암시했다.

미 의회도 마찬가지다. 최근 미 하원 법사위원회 대변인은 성명에서 “외국 정부들이 혁신적인 미국 기업들을 표적으로 삼고 있다. 유럽에서 이미 그 사례를 봤고 이제 한국에서도 쿠팡을 제재해 국내 경쟁 업체에 유리하게 만드는 것을 보고 있다”며 “의회는 이런 의혹을 조사해 차별적 법 집행을 막고 미국의 이익을 보호하는 법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밝히기도 했다. 미 하원 법사위는 23일(현지 시간) 해롤드 로저스 쿠팡 한국법인 임시대표를 미 의회로 소환해 비공개 증언을 청취할 예정이다. 이 자리에 지난 6년 치 한국 정부와 나눈 대화 내역을 제출하라며 우리 정부의 쿠팡에 대한 조사 관련 ‘현미경 검증’도 예고했다.

상황이 이렇게까지 흘러가고 있지만 한국 정부의 로비력은 좀처럼 약발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 물론 당국자들이야 할 말은 많겠지만 우리 정부의 대미 로비 현실을 바라보는 관전자들의 평가는 후하지 않다. 워싱턴DC 소재 한 로펌 관계자는 “한국 정부는 로비 업체를 쓰면서도 해당 업체에 미 정부·의회 관계자와의 미팅 일정만 잡아달라고 한다”며 “총리까지 로비 업체와 직접 만나 미국 측 상대방에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 작전 회의를 하는 다른 나라와 너무 다르다”고 꼬집었다. 그는 “한국 정부 관계자들은 그냥 로비 업체가 약속만 잡아주면 자신이 상대하겠다고 한다”며 “로비 업체로서는 단순히 미팅만 잡아주면 되는 반면 수임료는 다른 나라와 똑같이 받을 수 있어서 한국 정부와의 계약을 선호하는 상황”이라고 분위기를 전했다.

물론 예산과 인력에 한계가 있는 것은 사실이다. 주미 대사관의 의회, 홍보 관련 자문 회사 고용 예산은 2024년 17억 9300만 원으로 쿠팡이 같은 해 지출한 금액에 크게 못 미쳤다. 공공 외교 분야의 주미 대사관 인력도 일본에 비해 절반 수준인 것으로 알려졌다.

예산은 늘릴 수 있다. 대신 미국 대통령과 행정부·의회의 유력 인사에게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제대로 된 로비 업체를 고용해야 한다. 돈을 지불한 만큼 미국 측에 어떻게 대화하면 되는지 끈질기게 활용해야 한다. 국회도 전문성을 바탕으로 로비 예산이 제대로 쓰이고 있는지 철저히 검증해야 할 것이다. 쿠팡 사태가 준 교훈 중 하나는 이제 우리도 로비라는 미국 내 엄연한 정책 활동을 양지로 끌어올려 제대로 해볼 때가 됐다는 것이다.

이태규 특파원의 워싱턴 인사이드


워싱턴=이태규 특파원 classic@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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