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정부 ‘무역 관련법 짜깁기’…관세 부과 새 근거 만든다

정유진 기자 2026. 2. 22.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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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2조·301조, 안보 위협·미국 기업 차별·권리 침해 품목에 부과
보고서 등 요건 마련에 시간 소요…기존 협정 ‘파기’ 국가 없을 듯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가 국제비상경제권한법(IEEPA)에 근거해 전 세계에 부과한 ‘상호관세’가 무효라는 미 연방대법원의 판결은 관세 정책을 종식한 것이 아니라 “새로운 장을 연 것뿐”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IEEPA를 대체할 수 있는 즉각적이고 광범위한 관세 수단은 없지만 트럼프 행정부가 여러 법 조항을 짜깁기해 기존 관세와 비슷한 효과를 내려 할 것이기 때문이다. 안보 협력 분야에서 여전히 절대적인 미국의 영향력과 통상 보복 조치 등을 고려할 때 이번 판결에도 불구하고 기존의 무역 협정을 파기하려는 국가는 없을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내다봤다.

트럼프 대통령이 21일(현지시간) 전 세계에 부과하겠다고 밝힌 15% ‘글로벌 관세’는 무역법 122조를 발동한 것이다. 이 법은 국제수지 불균형을 개선하기 위해 대통령이 최대 15%의 관세를 부과할 수 있도록 했지만 의회의 연장 승인이 없으면 최장 적용 기간이 150일로 제한된다.

이 때문에 트럼프 행정부는 IEEPA를 장기적으로 대체할 관세 수단으로 무역확장법 232조, 무역법 301조 등의 조합을 고려 중인 것으로 보인다. 232조는 국가안보에 위협이 되는 수입 품목에, 301조는 미국 기업에 차별적이거나 미국의 권리를 침해한다고 판단할 경우 해당 수입 품목에 관세를 부과할 수 있도록 한다. 둘 다 품목별 관세지만 품목을 확대하면 IEEPA와 유사한 효과를 낼 수 있다. 현재 미국이 수입 철강·알루미늄·자동차에 물리는 관세는 232조에 근거하고 있다.

다만 232·301조를 실행하기 위해서는 조사보고서 작성 등 절차적 요건을 갖춰야 하기 때문에 기존 관세를 대체하기까지 시간이 소요된다. 또한 트럼프 대통령의 신규 관세에도 법적인 문제가 뒤따를 수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의 무역적자 상황이 122조가 규정한 ‘근본적인 국제 지급 문제’에 해당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법률가들 사이에선 그렇게 보기 어렵다는 의견이 존재하며 글로벌 관세 역시 소송에 휘말릴 수 있다고 월스트리트저널이 전했다.

연방대법원 판결로 상호관세는 즉각 무효가 됐지만 미국과 체결한 무역 협정을 번복하려는 움직임은 거의 없을 것으로 전망된다. 일단 미국이 301조 조사에 착수하는 것만으로도 상대국에는 큰 위협이 된다. 무역 협정을 철회하려 할 경우 미국이 232조에 따라 부과 중인 품목관세 세율을 대폭 상향 조정할 가능성도 있다.

한국의 경우 관세·투자 합의가 안보 분야 합의와 연동돼 더욱 쉽지 않은 상황이다. 빅터 차 미 전략국제문제연구소 한국석좌는 한국이 지난해 맺은 한·미 무역 협정을 파기한다면 “조선 및 핵잠수함 사업 등이 위태로워질 수 있다”고 내다봤다.

파이낸셜타임스는 “방위·안보 분야에서 미국의 영향력이 여전히 절대적인 데다 트럼프 행정부가 통상 분야에서 보복 수단을 지니고 있다는 점도 염두에 둬야 할 대목”이라면서 “연방대법원 판결과 별개로 트럼프 행정부는 여전히 협상의 지렛대를 쥐고 있다”고 지적했다. 미 싱크탱크 애틀랜틱카운슬의 조시 립스키는 “각국이 협상해야 할 무역 협정은 더욱 복잡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수백조원 규모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되는 관세 환급 소송은 기업에 부담이 될 것으로 보인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관세 환급 요구액은 1750억달러(약 254조원)에 이를 것으로 추산된다.

연방대법원은 이번 판결에서 징수된 관세의 환급 여부를 명확하게 언급하지 않았다. 이는 향후 하급 법원의 심리에 혼란을 가져올 가능성이 크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20일 기자회견에서 관세 환급과 관련해 “앞으로 5년 동안 법정에 서게 될 것”이라고 말하며 쉽게 돌려줄 뜻이 없음을 내비쳤다.

워싱턴 | 정유진 특파원 sogun77@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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