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규관의 전환의 상상력]인간마저 ‘쓰레기’로 만들겠다는 AI
인공지능(AI)을 단적으로 정의한다면, 그것은 인간이 자신의 자아를 데이터로 활용해 환영(할루시네이션)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이는 단순히 AI의 부작용이 아니라 본질이라고 해야 맞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데이터인데 인터넷을 통해서 엄청나게 축적된 데이터가 없었다면 현재의 AI는 불가능했을 것이다. 2010년 제프리 힌턴이 드디어 기계에 학습을 성공시킨 것도 인터넷상의 데이터 때문이었음은 이제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물론 20세기 내내 누적된 기술적 진보나 근대자본주의 문명이 폭발시킨 미디어 환경도 큰 역할을 했을 것이다. 따라서 AI는 어느 날 갑자기 튀어나온 것이 아니라 근대자본주의 문명이 ‘끝내’ 산출한 결과물이다.
AI의 본질을 인식함에 있어서 거창하게 근대문명 전체를 호출해야 하는 것은 이것이 결국 자연으로부터 일탈의 극점이기 때문이다. 자연을 인간 ‘바깥’의 여러 사물과 생명체들의 총합으로 인식하기 시작한 것도 근대적 세계관이 자리를 잡아가는 과정과 겹친다. 예를 들면 헤겔은 세계사를 논하면서 정신이 자연으로부터 독립한 정도에 따라 문명에 차등을 줬다. 동양에 대한 편견과 폄하도, 흑인에 대한 인종차별에 가까운 발언도 그 기준은 자연에서 벗어난 의식의 정도였다.
헤겔은 한때 친구 셸링과 함께 자연철학에 몰두했지만 점점 셸링의 생명철학을 비판하면서 정신의 우위를 강조하기 시작했다. 하이데거는 존재(피시스)와 언어(로고스)가 하나였던 고대 그리스 철학이 드디어 헤겔에 의해 웅장하고 완성된 모습으로 몰락했다고 비판한 적이 있는데 과연 헤겔은 주체(자아)와 객체(자연)를 완전히 분리한 다음 변증법을 통해 동일성을 꾀했던 것이다.
인간 기억·기대·예측까지 상품화
아무튼 서구의 근대문명이 자연을 철저하게 대상화한 것은 역사적 사실이고 그것이 야기한 결과가 지금 우리가 처한 실존적 상태다. AI는 이제 자연을 넘어 인간 존재 자체를 대상화하고 있는 것이다. 왜? 인간을 조작하고 지배하려고. 그러면 무엇이 생기나? 자본의 속성이 그렇듯 (불변자본이자 상품인) AI는 인간 자체를 조작, 지배하면서 이윤을 꾀할 뿐이다. 즉 AI는 인간의 기억, 언어, 감정, 행동, 기대, 예측까지 모두 상품화하려는 자본의 기획에 다름 아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AI엔 결정적으로 몸이 없다는 말이 있었다. 이것이 AI가 살아 있는 인간과 결정적으로 다른 점이라고 했지만 이것도 옛말이 되었다. 뇌나 다른 장기에 칩을 심어서 지금 당장 몸의 감각으로 얻은 느낌들, 이른바 생체 정보들, 의식의 흐름이나 감정 상태를 데이터화할 수 있는 단계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결국 인간을 포함한 살아 있는 생명체들이 AI에 몸을 빼앗기고 빈껍데기가 되는 것은 시간문제라고 할 수 있다.
문제는 이런 불경스럽고 구토가 나올 만한 상황에 사람들이 신기해하고 환호성을 지른다는 점이다. 그런데 경악을 경이로 둔갑시키려는 이런 심리는, ‘캘리포니아 세계관’에 찌든 AI 담론 업자들이나 주류 미디어들이 지금껏 퍼뜨린 살수 효과일 수도 있다. 물론 현 정부의 AI 정책도 큰 역할을 했다. 도대체 차분함이나 깊이 있는 숙의를 모른다는 점에서 우리 사회는 거대한 GPU 같다.
지금껏 신자유주의가 오랜 전통과 지혜, 땅과 물과 공기 같은 생명의 바탕들, 또는 오랜 정신적 유산들을 가차 없이 상품 진열대에 올렸다면 이제는 인간 존재 자체를 분해해서 상품화하고 나아가 인간을 소비 외에는 절대적으로 무능력한 ‘쓰레기’로 만들려는 지점까지 왔음을 우리는 AI를 통해서 알 수 있다.
요약하면 근대자본주의는 지금껏 자연을 수탈, 소비해서 지구 생태계를 위험하게 만들었고, 이제는 인간 존재 자체를 수탈, 소비해 심각한 상황에 빠뜨리려고 시도 중이다. 근대 민주주의가 크게 흔들리면서 등장한 사회적 범죄인 극우주의도, 쓰레기가 썩으며 가스를 뿜어내듯 존재의 무기력증이 발산하는 검은 생명력 때문일지 모른다.
AI가 무엇인지 대화 나눠야
지그문트 바우만은 기술진보와 경제성장이 물질 쓰레기뿐만이 아니라 인간에게서 ‘영원성’이라는 광휘를 삭제함으로써 인간마저 ‘쓰레기’로 만들었다고 비판하며, “무한성만이 온전히 그리고 진실로 모든 것을 포용한다”고 강조했다. 무한성은 “쓰레기라는 관념”을 모른다는 것이다. 즉 바우만에 의하면 ‘쓰레기화’는 상품 경제가 무한성과 영원성을 파괴하면서 만들어낸 현상에 다름 아니다. 그런데 영원성이란 근대자본주의의 상품에 갇힌 시간에서 벗어난 ‘존재의 근원’에 대한 상상력 혹은 소망 아닐까?
빅테크 자본과 AI 담론 업자들이 싫어하는 것이 바로 이것인데, 그래서 AI 시대에 살아남으려면 노동 가치 대신 자본 가치를 숭배하라는 천박한 말들이 서슴없이 횡행하는 것이다. 지금은 AI가 과연 우리에게 무엇인지 곁에 있는 친구들과 긴밀한 대화를 나누는 것이 절대 필요한 시절이다. 대화는 기계가 아니라 사람하고 하는 것이고, 동시에 자기 자신과 하는 것이다.

황규관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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